[구티에레스 신부] 4월 22일(부활 제4주일) 요한 10,11-18

오늘의 복음 말씀은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생각해 볼 때에 잊혀지지 않는 인상을 남긴다.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는 데 사용되었던 가장 초기 이미지들 가운데 하나는 착한 목자였다.

상호적인 앎

보통 때처럼, 예수님은 일상생활에 관한 비유를 근거로 한다. 그분의 청중은 농촌생활의 비유에 익숙하고 경험에 의하여 목자와 양들 사이의 매우 가까운 결속을 알고 있다. 목자는 그의 양을 알고 있어 심지어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성경에 의하면, 아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목자는 그분의 양을 사랑하고 양들도 그를 사랑한다. 요한 복음 10장 14절에서 사용된 표현은 거의 계약의 관계와 같다: “나는 너희들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상호적인 사랑은 주님과 그분의 백성을 일치시킨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 일치의 모형은 아들인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관계다. 이 깊은 결속으로 인해 주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다.

고용된 사람들은 매우 다르게 행동한다. 그들은 자기 이익 때문에 양들과 함께 있다. 사랑은 그들의 동기가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험 앞에서 도망가 버린다. “그들은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요한 10,13) 그들은 자신들의 삯을 돈이나 명예, 자기중심감이라고 여긴다. 목자인 것처럼 위장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사회적 명성을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그런 것을 얻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동기들은 강력한 결속을 만들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돌볼 따름이지, 양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과 혜택을 추구하는 것이며, 섬겨야 할 백성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매우 심하게 대한다.(“그들은 양들에게 관심이 없다.”, 요한 10,13) 그리고 조금이라도 우리가 이런 태도에 합류하면 엄하게 꾸짖는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은 형제자매들과 끝없는 연대를 맺었던 그분을 따르라고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특히 가장 소외되고 착취된 이들, 가장 약한 이들과 연대하기를 청한다.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우리 자신들을 “하느님의 자녀들”(1요한 3,1)이라고, 예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한 목자', 피터 브뤼헐. (1616)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자기의 생명을 바치기

이러한 연대는 우리들의 목숨을 바치는 경우까지 갈 수 있다.(요한 10,15) 그러나 그것은 기꺼이 바치는 선물이요, 온전한 자유의지로, 형식적인 의무감이 아니라 받은 무상의 사랑에 대한 투신으로 하는 행위다. 아무도 예수님의 생명을 앗아가지 않는다; 그분이 스스로 내어놓는 것이다. 그분의 죽음, 십자가의 처형은 어떤 운명의 결과가 아니라, 자유로운 결정의 결과다.(요한 10,18) 매일매일, 예수님은 사랑, 평화, 정의의 나라를 선포하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억압받는 이들과 무시받는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다. 그래서 그분은 죽임을 당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려고 왔으나,(10,18) 특권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그분을 거부했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의 핵심이다. 직업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기 때문에 목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형제자매들의 목자들이다. 우리가 자유롭게 선택하여 그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 그들의 고통과 희망, 그들의 한계와 투쟁에 대한 결단은 매일의 선택이며 오해와 적대를 받는 끊임없는 위험에 처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용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사도 4,20)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