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2014년 5월, 대한문 앞에 세월호 희생자들 위한 노란 리본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지금여기 자료사진

세월이 4년 흘렀습니다

- 닐숨 박춘식

 

목탁은 파도를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추모예배는 노랑 리본을 움켜잡습니다

*레퀴엠(requiem)은 하늘을 끌어당깁니다

 

기다리던 용오름 대신

산더미 같은 쇳덩어리가 추악하게 나타납니다

이제 여기서, 녹슨 배를 마지막 눈물로 녹인 다음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는 사다리를 세웁니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내려오고

엄마 아빠는 도시락 들고 올라갑니다

 

평화의 인사로 아이들을 껴안는 제의(祭衣)-

구원과 감사의 뜨거운 찬송가-

풍경 호흡으로, 아제 아제 바라 아제-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4월 16일 월요일)

 

*레퀴엠(requiem)은 천주교 위령 미사 때 드리는 라틴어 음악입니다

큰 응어리였던 세월호는 아픔에서 상처로, 그 다음은 상처에서 위안으로 변화하리라 여깁니다. 그동안 중요한 비밀이 나타나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품에 깊이 안으며, 모든 것을 정리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월호를 바라볼 때, 이런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지 훌쩍 떠나야 하는지, 저울질하신 분이 많이 계셨으리라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국민을 개똥처럼 보면서 돈을 철저하게 숭배하고 있는 이 땅의 정치까들은, 뭍에 올라온 세월호를 보고 ‘저 고철을 모모 기업에 신철(伸鐵)이라면서 팔아 크루즈 여행하는 것도 좋겠는데’라고 상상하리라 여겨집니다. 애국가를 기도하듯 불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구절의 새로운 의미를 나누면서, 세월호의 쓰라린 아픔을 아늑한 아픔으로 내내 간직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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