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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려면 다섯 관문을 거쳐야 합니다[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 김용대]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 요한 타울러, 사회와연대, 2017, 145-150쪽.

그 뒤에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요한 5,1)

성경(요한 5,1-14)에는 예수님께서 축제 때가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다섯 주랑이 달려 있는 치유의 연못을 방문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따금 주님의 천사가 그 못에 내려와 물을 출렁거리게 하였는데, 물이 출렁거린 다음 맨 먼저 못에 내려가는 이는 무슨 질병에 걸렸더라도 건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세주께서는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그러자 그 사람은 자신이 건강하게 된 줄도 모르고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습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습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우리는 다섯 주랑을, 흘러내리는 주님의 소중한 피로 씻게 되면 죄의 중병으로부터 치유되어 구원받게 된다고 여기고 있는 ‘주님의 다섯 개의 거룩한 상처’를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서 매우 중요할 뿐더러 영적으로 병든 모든 영혼에 필요한 ‘다섯 개의 덕’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 관문은 ‘진정한 겸손’입니다. 이 겸손의 덕으로 사람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과 모든 피조물의 손 아래로 머리를 굽히고, 원인이 무엇이든, 역경을 맞든 번창하든, 슬프든 기쁘든 모두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총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하느님 앞에서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결코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치유의 연못의 두 번째 관문은 ‘내면생활에 집중하면서, 즉 묵상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순진하고 선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이 덕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표징을 기다리지도 않고 제멋대로 하므로 오로지 과시하기 위하여, 자신이 육감의 영향을 받고 있고 자기만족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채로, 가르치고 강론하려고 바깥으로 뛰쳐나갑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묵상을 게을리하고 세상 것들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은 결코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외면의 일을 하려는 사람은 그 동기를 알아내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렇게 하면서 외면의 일을 하게 되면 안팎으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신중하지 못한 행동은 불안을 낳게 마련인데 내면에서 하느님의 인도와 충고를 받지 않고 쾌락과 덧없는 것들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관문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것이 아니거나 하느님으로부터 오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멀리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내적 외적으로 지은 모든 죄를 갖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선하심을 굳게 믿고, 진심으로 하느님만 생각하려고 하고, 사랑으로 영원히 하느님께 매달리려 하고, 전심전력으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때문에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틀림없이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되며, 열심히 노력할수록 더 완전하게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네 번째 관문은 ‘기쁘게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난에는 외적인 상황 때문에 생기는 ‘외적 가난’이 있고, 참된 가난인 ‘내적인 가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참된 친구가 되려면 ‘외적 가난’은 필요 없고 ‘내적 가난’만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내적 가난’의 덕을 보시고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느님만 가치 있게 여기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난하게 되면 하느님께서 갖게 해 주신 것만 갖게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 가난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2코린 6,10)

다섯 번째 관문은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말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영광스러운 모든 선물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영적인 깨달음의 은총을 내려 주시어 하느님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인도해 주시면 행운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며, 영적으로 더 많은 것을 알려고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운이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서 얻게 된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생각입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서의 사람으로 살기. (이미지 출처 = Unsplash)

‘하느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하느님을 본받고 사는 것’을 말하며 그래야만 ‘하느님의 모습으로서의 사람(Capax Dei)’이 되어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들어 있다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여 먼저 병을 치유해야만 하느님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감기라고 할 정도로 현대인들은 많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데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격장애(또는 성격장애, personality disorder)라는 정신질환은 습관, 성격, 사고방식 등이 사회적 기준에서 극단적으로 벗어나서 사회생활에 문제를 일으키는 장애를 말합니다. 병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인간의 격을 갖추기 어렵게 만드는 병입니다. 본래 정신질환은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항상 증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씩 증세를 보이며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남들이 더 문제라고 생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知不知 上 不知知 病 夫唯病病 是以 不病 聖人 不病 以其病病 是以 不病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은 지혜지만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 다만 병을 병으로 알면 그 때문에 병을 앓지 않는다. 성인(聖人)이 병을 앓지 않는 것은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을 앓지 않는다.”

인격장애는 여러 가지 증세를 보이지만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증세는 다음과 같습니다. 권력과 지위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멸하는 태도를 보이며 채워지지 않는 애정 욕구와 어린아이와 같은 의존 욕구로 인해 자신의 요구만을 들어주기 원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늘 자신이 주목 받아야 하는 존재여야 하므로, 자신이 주역이 아니라 조역의 위치에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거나,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돌발행동 등으로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만듭니다.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칭찬을 바랍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남에게 의존하려는 욕구가 매우 강해서 자신이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을 남에게 맡겨 버리고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서 하는 역할에 만족합니다.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신경을 쓰며, 만약 이런 관계가 깨지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두려워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보호나 돌봄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과도하여 지나치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혼자 있을 때면 무력감을 느낍니다. 쓸모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방식을 따르지 않으면 일을 함께 하지 못하거나 맡기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인색합니다.

그런데 모든 종교에서는 사랑하지 못하는 것을 인격장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면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추(老醜)를 보이면서 살지 말아야 한다'(We live in deeds)

필립 제임스 베일리(Philip James Bailey, 1816-1902) / 후고(後考) 옮김

 

철들지 않아 노추를 보이면서 살지 말아야 한다.

숨만 쉬고 살려고 하지 말고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시계만 보고 살지 말고 깨달음을 얻고 살아야 한다.

심장 박동 수로 나이를 계산해야 한다.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숭고하게 느끼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가장 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심장이 가장 활발하게 뛰는 사람이 가장 오래 산다.

오래 살 생각만 하지 말고 한 시간만 살더라도

다른 사람의 혈압을 높이고 살지 말아야 한다.

죽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

그러나 죽어야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로 갈 수 있게 된다.

죽어야만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죽지 않으면 영광스럽게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어야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Festus" 중에서)

 

김용대(후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박사.
본명은 후고입니다만 호도 후고(後考)입니다. 항상 뒷북을 친다는 뜻입니다.
20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묵상을 하고 글을 써 왔습니다.
컴퓨터 전공 서적을 여러 권, 묵상집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징검다리"를 쓰고, 요한 타울러 신부의 강론집을 번역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는 진리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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