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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상업화와 연대성의 원리 1[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의료계와 문재인 케어

최근 제40대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출과 그에 관련된 의사 집단의 행보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당선인이 건강한 토론과 협상을 이끌 시민적 자질을 갖추었느냐는 의문에서부터, 선출 과정에서 보인 난맥상과 회장의 대표성 문제까지 어느 하나 쉽게 넘어갈 일은 아니다. 게다가 새 회장의 선출과 집단행동 예고 과정에서 이른바 ‘문재인 케어’에 대한 반감이 막말과 원색적인 비난을 통해서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이 논의가 저열한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의 진흙탕으로 흐를 가능성이 다분한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토론에 필요한 기본 개념들을 정리해 볼 터인데, 사회교리의 원리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의료계에 누적된 불만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보험의 도입과 2000년의 의약분업 사태, 그리고 오늘의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에 이르기까지 관통하고 있는 요지는, 원가에 못 미치는 저수가 정책이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 왔으며, ‘문재인 케어’는 그러한 현실을 더욱 악화시켜 결과적으로 의료의 질을 떨어뜨리고 환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데 있다.

여기에 덧붙여 의대생 시절부터 시작되는, 아니 의대에 진학을 준비하는 과정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학습과 노동의 양에 비추어 의사들이 현재 사회로부터 받고 있는 보상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따라온다. 사회는 의사들에게 적절한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보장하고 의사들은 사회의 의료 요구에 도덕적, 헌신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사회계약론의 관점에서 볼 때, 현행 한국의 의료 상황은 의사들에게 불공정하며, 문재인 케어는 이런 불공정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에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정부이고, 따라서 정부는 의료 시장에 대한 불공정한 개입을 거두어 의사들이 적절한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시장의 메커니즘에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의학과 의료는 의사가 독점적으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대상인가?

하지만 의학이나 의료가 여타 지식이나 기술처럼 상업화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또 의학과 의료가 과연 의사들이 독점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특정한 지식과 기술에 해당하는가를 물어보면, 그 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힘들게 공부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지만, 의학과 의료 자체가 의사 집단만의 노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사회적 협력과 희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의학을 가능케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헬라 세포주(HeLa Cell line)의 발견만 해도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헬라 세포주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간 세포를 이용한 실험과 연구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인간의 세포는 배양 접시에서 적절한 조건만 갖추어 주면 무한정 배양하거나 증식시킬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까닭에 연구자들은 세포에 대한 실험 자체보다 세포의 생존율을 높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할 지경이었다. 생리학, 병리학, 세포생물학, 면역학 등 의학 및 관련 학문의 연구에 있어서 인간 세포 실험은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인간 세포를 배양하는 첫째 관문조차도 채 넘지 못한 것이 현실이었다.

바로 그때 등장한 인물이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 1920-51)다. 그의 삶은 기구했다. 네 살 때 어머니를 잃고 할아버지 집에 맡겨진 랙스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를 마치고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었다. 힘겨운 노동 속에 성장기를 보내면서 함께 자라던 사촌의 아이를 가지게 된 랙스는 남편과 함께 다섯 자녀를 키웠다. 고통스런 일상의 무게에 허덕이다 어느 날 복통과 구역질로 병원에 가야 했지만, 인종차별이 엄존했던 1951년의 메릴랜드 주에서 가난한 흑인 여성을 받아 주는 곳은 존스홉킨스 대학병원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연구 중심의 병원으로 출발했던 존스홉킨스는 연구에 필요하다면 환자의 피부색을 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랙스는 8개월의 투병생활 끝에 서른셋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는 최초로 실험실에서 배양, 증식하는 데 성공했고, 이 세포주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가 의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그런데 랙스의 장례식이 있던 날, 존스홉킨스의 세포 생물학자 조지 가이(George Gey) 박사는 의학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소식을 발표한다. 최초로 인간 세포를 실험실에서(in vitro) 배양, 증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따서 헬라 세포주(Hela Cell Line)라 명명된 이 불멸의 인간 세포는 동물실험에 머물던 의학 연구를 인간 세포에 대한 연구로 옮겨 갈 수 있게 했으며, 이에 따라 의학과 관련 학문들이 비약적으로 발전되었다. 가난과 무학의 서러움 속에 투병하다 숨져 간 헨리에타 랙스의 세포 조직이 수없는 생명을 살리고 의학의 도약을 가능하게 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다. 제약회사들과 병원들이 이 세포주로 인해서 얻게 된 금전적 이익은 도무지 얼마나 될지 추정하기도 어려울 만큼 컸다.

그럼에도 헨리에타 랙스와 그의 가족들은 어떠한 경제적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곤궁한 삶을 견뎌야 했다. 그뿐 아니라 세포의 채취와 이용, 그리고 상업적 활용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고, 동의과정 또한 당연히 없었다. 훗날 헨리에타 랙스가 남긴 유일한 딸 데보라는 이렇게 묻는다. ‘엄마 세포가 의학의 발전에 그렇게 큰일을 했다는데, 왜 우리 가족은 마음 놓고 병원에 갈 수도 없는 것인가?’

의학 연구의 기반이 되는 데이터들과 자료들은 결코 책상에서 물리 공식을 풀어냄으로써 얻어 낸 것이 아니다. 어느 실험실에서 화학 물질들을 조작함으로써 얻어진 것도 아니다. 의학은 질병과 통증에 신음하던 환자들의 고통스런 삶과 죽음을 데이터의 원천으로 삼는다. 오늘날 병원에서 생검을 통해 채취된 환자의 세포들부터 수술실에서 새로운 수술법의 적용을 받는 환자의 몸, 그리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했던 환자들의 사연까지 모두가 의학 연구와 의료 발전의 도구로 사용된다. 최근 등장한 인공 지능의사 Dr. Watson이 사용하고 있는 빅데이터는 누군가의 소중한 신체 정보이며 누군가가 겪었던 고통의 기록이다. 의학은 그런 점에서 특정한 집단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수 없는 공공의 학문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내가 공부하고 내가 연마해서 얻은 지식과 술기 능력이니 그것을 이용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을 권리도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주장해서는 곤란하다는 뜻이다. 의학과 사회는 그런 면에서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

3. 연대성의 원리

사회교리가 말하는 연대성의 원리는 쉽게 말해서 인간은 누구나 서로에게 빚지고 있다는 것이다. 빚지고 있는 만큼 서로에게 책임이 있으며, 내가 가진 내 소유물에 대해서 절대적인 소유권을 주장하기보다는 자기가 가진 바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리에 비추어 볼 때, 초고령화 사회로 향해 가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전체의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보다 효과적으로 의료자원을 배분하고자 하는 정부의 시도가 쉽사리 폄훼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어떤 정책이든 반드시 그로 인해 혜택을 얻는 편과 잃는 편이 있게 마련이니, 정부의 의료정책도 그 가운데 적절한 균형을 찾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검토되고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학과 의료가 특정 집단의 독점적인 소유물로서 시장에 나와야 한다는 관점은 사회교리의 연대성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의협의 시위 과정에서 보는 현수막에는 한국 의료의 장래에 대한 우려와 보건의료의 향상을 위한다는 구호가 등장한다. 그 구호가 호소력을 얻자면, 먼저 의학과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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