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  십자가의 길에 함께한 여인들, 부활의 첫 증거자가 된 여인들 

"십자가의 길에 함께한 여인들", 어느 해의 "여성을 위한 십자가의 길" 표지.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성금요일, 주님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날 부활을 바라본다.

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가면서 구원사의 핵심을 이루는 주님 수난과 부활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시간의 흐름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따라가게 된다. 전날 해가 지고 난 뒤, 저녁부터 시작되는 유대인의 하루로 보면 제자들과 하신 최후의 만찬부터 게쎄마니 동산에서의 기도, 그리고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과 십자가의 길, 십자가에 못박히고 돌아가시기까지 그리스도의 수난이 하루, 이제 인간으로서의 모든 고통이 끝나고 무덤에 안치되어 평안히 머무신 하루, 그리고 부활....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는 것이 구원사의 중심이며 신앙의 근원이지만, 성삼일이 자리 잡기까지 그리고 그 의미가 오늘날의 형태로 남기까지도 변화가 있었다. 초대교회에서는 하루, 주님 수난하시고 돌아가신 날을 특별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부활을 경축했다. 4세기 들어서서 암브로시오 성인이 성삼일의 개념을 언급하고, 제자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신학적으로 그 의미를 심화했다. 고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이 부활과 함께 당연히 구원사 안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며 그래서 성삼일이 하나의 관통하는 전례라고 이해되었다.

"누가 저 돌을 굴려 치울까?", 레시 보르크마이어, 메쉐데. (2000) (이미지 출처 = 2000-2001 독일 여성사목과 수녀원들 공동프로젝트 포스터)

하지만 황제권과 교황권이 나뉘어 싸우고, 동서 교회가 나뉘고, 이슬람의 침공에 대항하는 십자군 전쟁까지, 격변기 중세의 혼란과 고통 속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주님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지닌 성삼일보다, 한편으론 사랑으로 인간이 되어 오셔서 수난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묵상에 더욱 집중하며 부활 또한 독립적으로 강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활을 둘러싼 이중의 성삼일을 경축하게 되었다. 곧 성목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수난의 성삼일과 부활주일부터 부활 화요일까지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의 성삼일이다. 16세기 트리엔트공의회까지도 부활 8부 축일에서 월요일과 화요일은 공식휴일이며 다른 날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독일에선 아직 성금요일과 부활 월요일이 국정공휴일인데, 원래 휴일이었던 부활 화요일이 휴일에서 제외된 것은 19세기 후반 계몽주의와 세속화의 흐름에 따른 것이었다. 20세기 초 전례(개혁)운동이 일어나면서 고대로부터 이어오던 원래 성삼일의 의미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커졌고, 이를 바탕으로 비오 12세가 1951년 부활전례를, 그리고 1955년과 56년 성주간 전례를 확정하면서 오늘날 성삼일 전례가 정해졌다.

성삼일 판화.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죽음이 없는 부활은 없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성삼일 전례에서 깊이 되새겨지는 의미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보여 주고 전해 주신 분의 길. 그 사랑에 기대어 죽어야 하는 것들을 마주 대할 때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리라는 희망을 심어 주신 길. 

'첫 눈에는/ 완전한 부서짐. 좌절.// 밀고하고, 부정하고, 떠나가고/ 심문받고, 선고받고, 처형된다// 하지만 그 길에도/ 만남이 있고/ 그리고, 죽음 안에/ 눈에 보이는 모든 허상들에 반해/ 영원으로 이어 주는 신뢰가 있다.//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지고/ 무덤은 비어 있다.“ 가비 파버 요도시의 시, "십자가". 십자가의 길이다. 오늘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보여 주는 길의 생생한 모습이다.

열두 제자만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성서에서 그 십자가의 길에 끝까지 울면서 예수를 따르고 작은 무엇으로라도 그를 도왔던 이들, 휘장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두려운 순간들까지도 죽음의 순간까지, 그리고 그 이후 무덤에 안장하기까지 끝까지 머물러 그와 함께했다고 밝히는 이들은 여인들이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위한 그 길을 가신 분의 사랑, 함께했던 시간에 느끼고 깨달았던 그 사랑에 응답해서 고통과 좌절,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던,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이끌림에 따랐던 이들....

최후의 만찬, 십자가 수난, 부활 이콘. (이미지 제공 = 박유미)

그리고 돌아가신 분의 주검에도 마지막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발라 드릴 향료를 들고 무덤을 찾은 이들도 여인들이었다. "무덤을 막은 그 무거운 돌을 누가 굴려내 줄까?“(마르 16,3) 무덤을 향하며 세 여인이 나눈 대화다. 사실 그 돌을 굴려 내고 안에 들어갈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고, 대책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은 무조건 향료를 사서 무덤을 향한다. 어떻게든 들어가서 그분께 향료를 발라 드리겠다는 마음뿐이다. 무덤에 도착해서 그들은 돌이 굴려 치워져 있고 그 안에 한 젊은이가 전하는 말을 듣는다. 주님은 부활하셨고,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래아에 가 계실 것이라고.  그렇게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첫 증거자가 되었다.

여인들의 이런 사랑과 헌신은 초대교회의 큰 힘이었다. 험한 박해시대에 많은 이들이 '사도들의 사도' 막달레나 마리아처럼 또한 많은 이들이 여성 부제로 활동하며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하는 데에 생을 바쳤다. 박해가 지나고 교회의 위계가 정립되면서 점차 여성들의 직분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선교의 일선에는 여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도생활 안에서 성직의 수행이 이어지고 있었다.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십자가의 길에 함께한 여인들.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새천년을 맞으면서 독일 여성 사목자들과 여성 수도자들은 이 부분에 집중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의 사랑처럼 강한 사랑의 움직임. 부활체험을 막는 나와 주변, 사회와 문화, 종교 등 안에서 밀어낼 수 없을 것 무거운 돌을 밀쳐 내고 나아갈 수 있는 부활의 힘을 나누고자 하였다. 베들레헴 인근의 1000킬로그램 가까운 무거운 돌로 무덤을 막았던 돌을 형상화하고 독일 각지 30여 군데 이상, 6200여 킬로미터를 움직여 다니며 지역 여성단체와 다른 그리스도교 교회와 함께 모임을 가졌다. 

"누가 무덤의 돌을 굴려 치울 수 있을까?"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베들레헴 인근의 돌. (사진 제공 = 박유미)

이 무거운 돌처럼 완고하게 가로막힌 것들을 나누고, 하소연하고 고발하고 기도하며 공동의 행동을 계획하고 행했다. 특히 중동에서 팔레스티나와 이스라엘 여성들, 그리고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교를 믿는 여성들의 상호이해를 도모하는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헌신" 단체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기도와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수도자들은 영적 대화를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였다. 원래 계획에 들어 있던 것처럼 2000년 부활 월요일에 시작된 이 움직임은 한 해로 마치지 않고 중세 여성 신비주의의 중심지였던 마그데부르크의 헤프타 수녀원에 돌은 세워 두었지만, Funcity라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서 막힌 돌이 굴러가도록 하는 나눔과 기도를 계속한다.

"누가 무덤을 가로막은 돌을 굴려 치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주저앉기보다 믿음으로 행하고 움직이는 사랑의 힘. 그렇게 우리에게 전해 주는 부활의 의미들이,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신앙의 여성 선조들의 힘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세계 인권과 평화의 흐름 안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부활을 향하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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