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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정의를 생각하는 자연대리소송[시사비평 - 박병상]

경칩이 지났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벌써 알을 낳는 개구리가 있다. 북방산 개구리가 물이 고인 논에 알 덩어리를 펼쳐 놓았고 두꺼비도 작은 염주처럼 이어진 알 덩어리를 호수 가장자리의 풀숲에 무수히 붙여 놓았다. 도롱뇽도 깨었다.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산간 계곡의 돌 틈이나 물이 깨끗한 논에 꼬투리 같은 알 덩어리를 볼 수 있지만 금개구리와 맹꽁이는 아직 동면 중이겠지.

천성산의 도롱뇽은 이 시간 잘 살고 있을까? 경부고속전철은 천성산을 18킬로미터 가까운 터널로 뚫고 지나간다. 이후 천성산 계곡은 많은 물을 잃었다. 도롱뇽은 알 낳을 곳을 잃었다. 천성산 내원사에 기거하던 지율 스님은 행동에 나섰다. 터전 잃는 도롱뇽을 대신해 2003년 철도시설공사에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우리 법원은 기각했다. 공사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도롱뇽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언도한 것이다.

터널이 뚫린다고 그 위의 습지가 모두 바싹 마르는 건 아니다. 도롱뇽 일부는 여전히 알을 낳지만 터널 전보다 현저히 줄었는데, 사람의 개발로 터전을 잃는 자연의 생명은 천성산 도롱뇽만이 아니다. 산과 인접한 저수지 주변의 많은 아스팔트 도로는 두꺼비 사체로 이맘때 처참하다. 야심한 시각, 제가 태어난 호수를 기억하고 도로를 건너다 그만 로드킬 당한 것이다. 올챙이에서 변태에 성공한 어린 두꺼비들도 안심할 수 없다. 4월 중순 비 내리는 밤이면 몰살을 파하지 못한다. 아스팔트 가득 필사적으로 건너다 그만.

철도시설공사는 도롱뇽을 위해 노선을 바꿀 용의가 없었지만, 관심과 비용이 더 들어가겠지만 대안은 있었다. 도롱뇽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 지율 스님은 당시 주류 언론에 끔찍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국가발전을 방해하는 불순세력 취급받았지만 스님의 감성과 자연 대리 소송은 많은 사람의 자연관을 바꾸게 만들었다. 개발에 앞서 도롱뇽과 같은 자연의 이웃을 먼저 살피는 계기로 이어졌다.

천성산에 터널이 뚫린 뒤 도롱뇽은 알 낳을 곳을 잃었다. (사진 출처 = ko.wikipedia.org)

기업은 사람이 아니지만 소송이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가? 법인이라고 한다. 물론 기업이 소송을 제기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 대리하는데, 우리 법은 아직도 자연의 이웃에게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 고집한다. 이른바 ‘당사자 적격’인데, 이미 대부분의 터전을 잃은 도롱뇽이나 두꺼비의 생존권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다. 결국 사람이 지켜 주어야 한다. 도롱뇽이나 두꺼비가 사라진 세상에서 사람의 삶이 편안할 리 없지 않은가.

우리와 달리 많은 나라는 자연의 이웃에게 당사자 자격을 부여한다. 미국 법원은 1979년 하와이의 희귀 새 빠리야의 법률적 지위를 인정해 서식지 파괴 가능성이 있는 개발행위를 중단하라고 판결한 적 있다. 물론 사람이 대신했기에 ‘자연대리소송’이라 했는데, 일본은 자연대리소송으로 ‘우는토끼’의 생존권을 지켰고 미국은 점박이 올빼미를 비롯해 여러 생물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지만 우리는 변화한 많은 나라의 법 감정을 귀담지 않았다.

1998년 낙동강의 재두루미를 대신한 환경단체의 소송을 기각했던 법원은 2000년 어린이날 새만금 간척으로 자신이 누려야 할 자연 자산이 사라지는 데 항의한 미래세대의 소송도 버젓이 기각했다. 한데 촛불 이후 우리 법원이 바뀌었나? 2003년까지 이어진 쓰라린 경험이 약이 되었는지,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PNR)와 산양소송 변호사모임, ‘원고’ 산양의 생존권 위해 소송하겠다고 벼르는 게 아닌가.

설악산을 쉽게 오르게 할 케이블카는 관광객을 필요 이상으로 부르겠지만 산양의 터전을 더욱 교란할 게 틀림없다. 관광객이 늘면 주변 지역은 돈벌이가 개선되겠지만 산양은 목숨을 위협받는다. 사통오달 등산로가 수많은 등산객을 안내하면서 터전을 잠식당한 설악산의 산양은 명맥만 남았다. 산양에 비해 사람은 이미 설악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고작 몇 푼 늘어날 돈벌이를 위해 자연의 이웃은 사라져야 하는가? 경제정의와 사회정의를 외치면서 왜 생태정의를 살피지 못하는가? 생태정의는 사람의 생존과 직결하는데.

경칩이 지나면 시끄럽던 개구리들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과 수십 년 만이다. 개구리 보려면 관광버스로 1박2일 떠나야 하는 요즘, 도시는 미세먼지와 아토피가 극성이다. 자연을 잃은 청소년의 감성은 메마르고 경쟁과 불안으로 눈에 핏발이 선다. 자연의 이웃에게 당사자 적격을 허용한 국가들이 우리보다 먼저 경험하고 고민한 건 무엇일까? 미세먼지에 뒤덮인 경칩을 맞아, 우리 법 감정의 변화를 기대하고 싶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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