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하늘 (이미지 출처 = Pixabay)

송치문 공소회장

- 닐숨 박춘식

 

박해 끝나고 몇 년 후 - 산골 어느 공소의 냉담교우가 사경을 헤맵니다 - 공소의 송치문 회장이 황급히 달려와 기도하며 걱정 - 사십 리 되는 성당에 병자성사 청하는 시간이 서너 시간 - 어떡하나 - 고해성사, 아이고 신부님, 고해 - 헉헉 애원하는 처절한 모습 - 다급 초조 - 예수 마리아 요셉 - 어떡하나 - 그 순간 성모님과 요셉 성인께서 암시하셨는지 - 송 회장은 환자에게 - 자네가 지은 죄를 나에게 다 말해주면 - 장례 마치고 곧바로 성당 가서 - 자네 죄를 신부님에게 내가 대신 고백할 터이니 - 하느님께 맹세코 절대 비밀 지키겠네 - 그러자 - 그 교우가 밝은 얼굴로 끅끅, 20년 동안 지은 죄를 다 고백하고는 - 휴우 - 숨을 내쉬며 평온하게 눈을 감습니다

 

그 순간 방문을, 탕탕, 발로 차는 악마가 소름 돋는 고함을 칩니다

!! 송치문 이 죽일 놈, 내가 저놈을 지옥에 데려가려고

!! 꼭 20년 동안 공들여 놓은 것을, 이놈, 네가 빼앗아가다니

마당에 있던 사람들도 덜덜 무섭도록 고함치며 도망갑니다

악마는 뒷산을 넘어가며 뼈를 찢는 괴성으로 이를 부드득 갑니다

!! 송치문 이놈, 송-치-문-이-놈,,, 때-려-죽-일-놈,,,

 

장례 다음날 성당에 간 송 회장 - 고해소에서 사연을 다 말하고 냉담 교우의 죄를 낱낱이 고백합니다 - 고해신부도 긴장된 목소리로 사죄경을 외운 다음 - 회장에게 단단히 일러줍니다 - 그분의 죄는 죽을 때까지 비밀 지켜야 한다고 - 두 번 세 번 다짐받습니다 - 신부님, 천주님에게 비밀 맹세를 열 번 스무 번 드렸습니다 - 송 회장은 울컥 치밀어 오르는 천주님의 은총을 - 뜨겁게 삼키고 또 삼킵니다 - 성모님, 꺼억 - 요셉 성인님, 감사합니다 꺼억 꺼억,,,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2월 26일 월요일)

 

어릴 때, 아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때 너무 무서워 아직도 ‘송치문’이라는 그 회장 이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다시금 두렵게 다가옵니다. 신앙인으로 죽는 순간에는 꼭 성모님과 예수님 양부이신 요셉 성인을 부르시라고, 송치문 이야기를 시로 다듬어 올렸습니다. 며칠 후 시작되는 3월은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이고,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이고, 요셉 성인을 각별하게 부르며 자신과 가족들의 선종(善終)을 위하여 기도 많이 바치는 달입니다. 죽는 순간에 성가를 듣거나 또는 임종을 위한 기도를 듣게 되면 가장 행복한 죽음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을 보면 눈은 감고 있거나 힘없이 가늘게 열려 있습니다. 먹고 말하던 입은 무겁게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귀는 쟁쟁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계속 들려 주면 가장 좋다고 여겨집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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