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잡설 - 김지환]

오늘부터 매월 1-2회 김지환 씨의 세상잡설을 연재합니다. 한 편집 노동자가 바라보는 세상,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칼럼을 맡아 주신 김지환 씨에게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서울대 재편? 서울대 폐지?

하나은행이 신입 행원을 채용하며 임원 면접이 끝난 뒤 점수를 ‘조작’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위스콘신대 출신 7명은 합격시켰으나 한양대, 가톨릭대, 동국대, 명지대, 숭실대, 건국대 출신 7명은 불합격시킨 의혹을 보여주는 구체적 자료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공개했다. 심 의원은 “불합격 통보를 받고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취업준비 전선에 뛰어들었을 7명의 청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저민다”면서, 이 사태를 “고질적인 학벌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조작 범죄”로 규정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월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권력시대, 어떻게 열 것인가: 입시지옥 해방, 교육혁명의 시작’ 토론회에서 서울대를 개편해 프랑스처럼 국공립대학교 통합캠퍼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대한민국은 엄연한 학벌 사회이며, 그 정점에는 서울대가 존재한다고 했다. 교육격차와 학벌문제가 심각한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심각한 불평등을 일으킨다고 지적하면서, 학벌특권 철폐와 보편적 교육복지 등을 제기했다. 서울대와 다른 국공립대학을 파리 1대학, 2대학 식으로 개편하고 교육과정 공유, 학사관리 및 학점 교류, 학위 공동 수여 등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사실상 서울대를 폐지하는 것이다, 어차피 다른 명문대학이 서울대의 역할을 한다 등 논란이 많은 대목이다. 사실 박 시장은 대권을 준비하던 2017년 초에도 서울대 개혁안을 내놓은 바 있다.

박원순 시장은 2011년 보궐선거에서 학력을 위조했다는 네거티브에 시달린 당사자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마이뉴스> 2011년 10월 15일자에 실린 한인섭 교수의 “박원순 ‘학력’, 내가 아는 진실: 서울대 입학 80일 만에 감옥에 끌려간 열아홉 청년의 그 후”가 소상히 해명해 준다.

“이게 무슨 ‘고의적 학력위조’라고 네거티브 공격을 받을 것인가. 다만 일부 저서에 ‘서울법대’란 것을 쓰도록 방치해 둔 무심함(불찰)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서울법대 타이틀을 쓸 만한 ‘채권’은 갖고 있다. 이걸 무슨 ‘학력조작’이라 밀어붙이는 것은 가당찮다.”

한인섭 교수의 글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박 시장이 명확하게 대처하지 못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참으로 서울대와 관련된 복잡미묘한 문제가 많은데, 박 시장의 주장에 공감하며 응원하고자 한다.

서울대 정문.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새로운 지대, 떡볶이 장사를 해도 서울대를 나와야 더 잘돼!

‘지대’란 좁게는 토지 사용에 대한 대가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토지뿐 아니라 어떤 생산요소든 공급이 고정되면 그것에 지급되는 보수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지대를 기반으로 한 지대추구행위는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지 않고서 비생산적 방식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노력이며, 더 넓게 보면 기득권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면서 얻는 초과이익을 가리킨다. 학벌은 취업과 사회적 성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지대’로 작용한다.

나는 아직도 1998년에 상영된 “여고괴담”의 충격적인 대사를 잊지 못한다. “야, 떡볶이 집을 해도 서울대를 나와야 더 잘된다.” 영화를 보면서 자기 ‘인생의 봄’을 대책 없이 미루고, 경쟁에 내몰려 학벌이라는 지대를 추구해야만 하는 학교라는 공간과 입시제도는 괴담보다 더 끔찍한 상황임을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중고등학교 시절 바짝 공부해 학벌이라는 지대를 획득하는 것은 확실히 남는 장사다. 그나마 예전에는 가끔이나마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나오듯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는 그 기회마저 점점 닫혀간다.

특히 현 수시입학 제도는 문을 더욱 좁혀간다. 개인적으로 썩 좋아하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얼마 전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이 교육정책 토론회에서 대학 수시입학 제도가 부유층 학생에게 유리하다고 발표한 내용에는 동의한다. 수시입학 제도가 대학에 들어가는 다양한 방법을 구현하는 것 같지만, 사실 부모의 재력으로 환원되는 정보력과 정성의 문제다. 학교의 교사도 일반 학부형도 감당 못할 때가 많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대학에 들어가냐는 방식이 아니라, 굳이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떳떳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겠다. 아울러 블라인드 채용 등은 지대추구 행위를 완화하는 장치 중 하나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은 미미해 보인다.

학벌, 신봉건주의와 뿌리 깊은 적폐

한때 혁명가였던 이름 무거운 한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이 나라는 좌우를 넘어 서울대가 이끌어가는 나라라고 토로한다. 나는 한국 사회가 학벌 카스트를 기반으로 한 신봉건제 사회라고 생각한다. 기득권 세력은 학벌을 매개로 한국 사회 전체를 자신들의 장원으로 생각하며 자본과 사회적 지위 등을 분할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지지율이 급하락했을 때, ‘학벌없는사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초대되었다. 그때 참석해 노무현 후보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대통령 되면 서울대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관료는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지고, 서울대 개혁 논의는 미미했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도 학벌 사회의 한 피해자라 생각한다. 당시 40명만 뽑았던 사법고시를 통과했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로 늘 무시를 당했다. ‘검사들과 대화’에서 대통령의 학번을 운운했던 인간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실 그런 무시는 이른바 운동권 출신 진영에서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좌우를 넘어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이유로 작용했으리라 본다.

그 사람이 대학에 들어갔는가, 어느 대학 출신인가에 따라 상당히 많은 것이 분배되는 방식이 훗날 그 사람이 어떠한 노력을 했는가를 초월하는 구조야말로 폭력 중의 폭력이고, 적폐 중의 적폐다. 우리는 그에 따른 부작용을 항상 목도한다. 그 좋다고 하는 학교들을 나와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해대는 막말과 수준 낮은 행위 등. 어처구니없는 정권에서 부역하다 지금 줄줄이 감옥에 들어가는 이들을 잘 살펴보라.

하여튼 박원순 시장이 서울대 문제를 비롯해 학벌사회 개혁을 강력하게 제대로 추진한다면, 차기 대통령감이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 개혁은 개혁 중에서 가장 힘든 개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한다면, 한국 사회는 엄청난 비약을 경험할 것이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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