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선지자의 계곡을 따라 시나이 산을 오르는 순례자들 (사진 제공 = 수해)

기어올랐던 시나이 산

- 닐숨 박춘식

 

오른쪽 팔뚝을 한 뼘 앞으로 밀고

왼쪽 정강이를 당겨 올렸습니다

이어 왼쪽 팔꿈치를 윽윽 들고

오른쪽 무릎을 끌어 바위 위에 놓았습니다

십여 년 전, 시나이산 정상 20미터 아래

엎드린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시나이 산은 종교 1번지’임을 동의하며*

저의 신앙 기점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태양이 하느님의 눈빛으로 솟을 때

억센 바위들과 자갈 모래언덕이 납작 엎드려

울부짖는 소리를 보고 들었습니다

 

제 마음이 속에서 뒤틀리고

죽음의 공포가 제 위로 떨어집니다(시편 55,5)

그럴 때마다

시나이 산은 저를 번쩍 끌어당깁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2월 5일 월요일)

* 차동엽 신부의 신앙강좌에서 들은 내용

 

나이 들수록 기억 안에서 부끄러움을 자주 만나기도 하지만, 어떤 기억에서는 ‘아 그때 그 순간’하며 다시금 새로운 기운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 새로운 힘을 주는 기억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신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즉 평생 잊지 못하는 신앙적인 추억을 만들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골프 가방을 트렁크에 넣는 사제 모습보다, 마당 빗자루를 들고 환하게 웃는 사제의 모습이 신자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주리라고 상상해 봅니다. 이보다 더 진한 감동의 기억은 부모로부터 받아야 함을 이 기회에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꽃을 바라볼 때,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가 환하게 핀 꽃송이를 살포시 만지면서 “천주님이 우예 요렇게 이뿐 꽃을 만들었는고?” 하시던 기억이 자주 나타납니다. 부모들의 가장 강한 신앙교육은, 부모가 기도를 드리는 모습, 하느님을 부르던 간절한 얼굴, ‘예수 마리아 요셉’을 애인처럼 중얼거리던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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