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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1. 1987년 그 이후

'1987' 영화를 보았다. “종철아 아버지는 할 말이 없데이..” 당시 신문의 헤드라인으로 뽑혀 나왔던 그 말씀이 화면 위에서 재현되는 그 대목부터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87에서 93년까지, 폭압적인 군사정권의 단말마와 거리의 함성이 맞부딪치던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여러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물었다.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을까.

2. 참교육 세대에서 헬리콥터 마더로

1986년 1월 15일 새벽이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유서를 남기고 전교 1등을 달리던 S사대부중 3학년 여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여파는 엄청났다.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꿈틀대던 교육운동은 이 학생의 죽음이 기폭제가 되어 전교협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훗날 전교조라는 결실을 맺게 된다. 아무튼 그렇게 참교육의 기치 아래 처음 사회를 만났던 그때의 중고등학생들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19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이 지금의 학부모들이다. 개국 이래 최초의 고학력 전업 주부가 된 일부 학모님은 ‘헬리콥터 마더’가 되어 극심한 경쟁의 군불을 마음껏 지피고 계신다. 직장인들은 받아서는 안 될 돈을 받아 그것으로 사랑스런 자녀의 교육비에 보탠다. 전례 없는 사교육 열풍과 스펙 쌓기 경쟁은 최소한 학부모의 방조와 암묵적 지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외치던 아이들이 더욱 노련하고 치밀하게 아이들을 옥죄는 학부모로 성장해서 방조와 암묵적 지지를 뛰어넘는 적극적 교육 소비자로 활동하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갈등과 문제조차도 좌시하지 않고 행여나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까 개입하는 극성 학부모는 최초의 참교육 세대이기도 하다.

영화 '1987'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CJ엔터테인먼트)

3. 백두에서 글로벌리제이션으로

1987년, 많은 대학생들이 노학연대로, 농활로, 공부방으로 달려갔다. 지역의 빈곤과 불균형에 눈을 뜬 학생들은 80년대에 이르러서 왜곡된 사회구조가 국제적 차원에서 비롯했음을 의식하면서 민족주의적 각성과 통일 운동에까지 관심을 넓혀 나갔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걸개그림과 구호가 대학들을 뒤덮었다. 성당의 여름 캠프에서도 우리말 쓰기가 번져 나가고, 포크댄스를 해방춤이 대체하는가 하면, 곳곳에 전통 찻집이 들어서기도 했다.

바로 그 대학생들이 지금의 중년이 되었다. 동아리 모꼬지로 대학의 첫문을 열었던 그 학생들이 ‘팩트’를 따지고 ‘솔루션’을 제시하며, 일회용 커피 잔에 프랜차이즈 회사 커피를 즐기는 그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다.

더 이상 유교적 구체제의 억압적 관습에 묶일 수 없다고 저항하는 이 용감한 세대는 병들고 늙은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내고 제사상 차리기를 거부하지만, 동시에 반려견과 반려묘의 영양 상태를 염려해서 특수 사료를 사 먹이고 옷을 사 입히는 자상하고 어진 세대이기도 하다. 그들은 한국의 교육 현실에 절망하여 국제적 차원에서 자녀들의 견문을 넓혀 주려 최선을 다하고, 그리하여 각국의 맛집을 전전하며 셀피를 찍어 대는 저 화려한 세대의 부모가 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국제화된 자녀들은 이제 저 촌스럽고 가난하며 예의도 모르는 북녘의 동포를 조소하면서 거지들에게는 대화가 아니라 정신을 차리도록 제재와 응징이 필요하다고 기개를 떨친다.

4.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1987에서 2018년까지, 30여 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구체제의 모순과 억압이 온존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도 일리 있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변화했고 향상되었음을 주장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참 많이 변했고, 발전도 했다. 그러나 진정으로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타인의 희생쯤이야 아랑곳없는 협량함, 과정의 미추를 따지지 않고 집요하게 효용과 성과를 올리려는 욕망 같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사회교리가 궁극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고, 세상 사람들이 사람이 되신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는 일이다. 사회 변화의 중심에서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자성해야 할 대목은 여기다. 더 이상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매김되지 못하는 현실의 안타까움보다 더 큰 것은, 지난 40년의 변화 속에서 저 끈적끈적한 욕망들을 거룩함에 대한 갈망으로 치환하거나 승화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이 시대의 곤경과 환난 가운데에서 인간 세계를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나은 사회 계획, 더 나은 경제 계획, 더 위대한 이상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한 가지만을 알립니다. 그것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십니다.” ("두캣" 315항)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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