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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 앞에서 화내지 말자[부엌데기 밥상 통신 - 52]

아침나절 절 운동 시간, 다나의 방해 없이 절을 하려고 밥상에 고구마 접시를 내놓았다. 계획대로 다나는 얌전히 고구마 접시 앞으로 접근했고 다울 다랑이와 나는 절을 시작했는데, 다울이가 자꾸 다나 쪽을 살피느라 절에 집중하지 못하는 거다.

"어, 다나가 고구마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데.... 다나야! 고구마 찌르지 마라."

"야, 절할 때는 절하는 데 마음을 모아라. 다나는 내비 두고...."

"다나가 숟가락으로 이거 저거 찔러 놓으면 내가 못 먹게 되잖아."

"괜찮아. 솥에 또 있으니까 걱정 마. 얼른 절이나 하자."

그렇게 타일렀지만 다울이는 계속해서 다나를 향한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그뿐인가. 절을 다 끝마치고 밥상 앞에 앉은 다음에도 여전히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다나 때문에 이게 뭐야" 하며 짜증을 냈다.

순간, 나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하고 격분하여 소리쳤다.

"야, 이 밴댕이 소갈딱지야! 엄마가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자꾸 그럴래? 밥상 앞에 두고 인상 쓰는 거 정말 보기 싫어. 동생이 어리니까 그렇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속 좁게 굴어. 그렇게 까칠하게 굴 거면 차라리 너 혼자 나가서 살아!"

한 번만 얘기했으면 되는데, 자꾸 다그치듯 잔소리를 되풀이했더니 다울이가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그쯤해서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우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또 잔소리를 했다. 그러자 다울이가 "그래, 나 나갈 거야!"하며 뛰쳐나갔다.

앗, 다울이가 저렇게 세게 나올 줄이야. 나는 몹시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밖에 비도 오는데 멀리 가지는 않겠지. 잠깐 나갔다가 금방 돌아오겠지. 불안함을 외면한 채 억지로 고구마를 입 안에 집어 넣었는데 무슨 맛인지 맛도 느낄 수가 없었다. '찾으러 나가 봐야 할까? 아니야, 저 놈의 성질머리를 이번 기회에 잡아야지! 그래도 그렇지 무슨 일 나면 어쩌려고.... 설마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 나도 내가 어째야 좋을지 모르는 그 상황에서 다랑이가 말했다.

"엄마, 빨리 나가서 형아 찾아 보자. 형아 안 오면 어떡해. 비 맞으면 추울 텐데."

나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다나를 들쳐 업고 우산을 든 채 집을 나섰다.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멀리 가지는 않았겠지 싶어서 일단 집 둘레부터 살피기로 했다. 수돗가, 사랑방, 창고, 닭장....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에도 다울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쯤되니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대체 어디로 갔을까? 마을 어귀 동각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게 아닐까? 허둥지둥 동각까지 가 봤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아, 이럴 수가!

까칠하고 까다로운 구석이 있긴 해도 알고 보면 다정다감한 다울이. 첫째라고 만날 이해하고 양보하라고 하니 제 딴에는 많이 힘이 들 게다. ⓒ정청라

"엄마, 형아가 멀리멀리 떠나다가 길 잃어버린 거 아니야?"

"아니야. 금방 돌아올 거야."

다랑이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비는 속절없이 쏟아지고, 나는 다울이가 듣고 있기를 바라며 목 놓아 소리쳤다.

"다울아, 어디 있니!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집에 돌아올 때까지 몇 번이나 외치고 또 외치고.... 하지만 다울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허탈한 심정으로 집에 들어가서 신랑에게 전화를 했다.(신랑은 화순읍에 볼일을 보기 위해 나가 있는 참이었다.)

"다울이가 집을 나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요."

나는 자초지종을 얘기하다가 흐느끼며 울어 버렸다. 다울이만 잘못한 줄 알았는데 내가 더 잘못했다는 걸 깨닫고 흘리는 참회의 눈물.... 다울이가 까칠하게 굴 때 혼내기보다 따듯하게 안아 줄 걸 하는 뒤늦은 후회....

그런데 전화를 끊고 얼마 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다울이였다. 이쯤해서 돌아와 주어 얼마나 고마운지! 자존심 따위 내세우지 않고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다울이를 꼭 안아 주었다. 다울이도 눈물을 흘리며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얼굴은 눈물 콧물 범벅인데다 몸은 빗물에 흠뻑 젖어 안쓰럽고 불쌍한 내 새끼!

서둘러 물기를 닦아 주고 젖은 옷을 벗게 하고 안방 아랫목에서 쉬게 했다. 손발이 몹시 차서 이러다가 감기 걸릴까 싶어 열심히 주물러 주고, 따듯한 꿀차도 타 주었다.

"엄마, 나 이제 고구마 절대 안 먹을래."

"왜, 고구마가 싫어졌어?"

"아니 먹고 싶기는 한데 아까 고구마 때문에 엄마 속상하게 했잖아. 그러니까 이제 안 먹으려구...."

들어 보니 고구마가 먹고 싶다는 얘기였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고 하지 왜 말을 빙빙 돌려서 하냐'라고 말하려다가 그 말을 꿀꺽 삼켰다. 대신에 고구마를 갖다 주며 다시 미안하다고 했다.

난로 앞에서 올망졸망 고구마를 먹는 아이들. ⓒ정청라

"엄마가 아까 너무 심하게 화를 내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응, 엄마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엄마 말대로 일찍 따로 나기 하려고 산에 가서 집 지을 데 찾아다녔어."

"그래서 찾았어?"

"아니, 찾다가 너무 무서워서 돌아왔어. 근데 돌아오니까 집이 너무 낯설더라. 엄마도 내 엄마 아닌 거 같고...."

"그래, 네 마음 알 것 같아. 배고플 텐데 어서 고구마 먹어."

고구마를 먹고 나니 다울이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우린 그제야 아침부터 생쇼를 했다며 부끄러움이 묻어 있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돌아보니 우습기 짝이 없지만, 큰 교훈을 남긴 사건이었다.

오늘의 교훈은? 밥상 앞에서 화내지 말자!

+ 다울이의 일기

(읽기 쉽게 맞춤법과 띄어쓰기만 정리를 했습니다.)

오늘 절을 하고 있었다. 그때 다나가 고구마를 이거 먹다가 저거 먹다가 했다. 난 화가 나서 다나를 혼냈다. 그래도 다나가 계속 그렇게 하자 나는 다나를 절하면서 혼냈다. 절하고 나서도 혼냈다. 그러자 엄마가 날 혼냈다.

너, 일찍 따로 나기 해!

난 그래서 울었다. 그래서 말했다.

나 나갈 거야!

그래, 나가는 게 좋겠다!

엄마가 말했다.

난 밖에 수돗가에서 엄마 나빠 엄마 죽어 라고 말했다. 화 괴물이 나를 삼킨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화를 가라앉히려고 산으로 갔다. 집 지을 곳을 찾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가다가 멧돼지 똥을 발견했다. 새 내장 같은 것이 섞여 있었다. 난 잠깐 흥미를 가졌지만 곧 다시 길을 떠났다. 그러다가 무서워져서 그냥 가기로 마음먹었다. 비가 오고 있었다. 난 산을 내려가면서도 집 지을 곳을 찾았다. 너무 추웠다. 콧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가다가 다울아! 라고 부르는 엄마 소리에 기운이 났다. 뛰다시피 집으로 갔다.

가서 엄마와 나는 서로 사과했고 엄마는 내 젖은 옷을 벗으라고 했고 나는 조끼만 벗었다. 엄마와 나 사이가 다시 좋아져서 다행이다. 

다울이 일기. ⓒ정청라
 
 

정청라
산골 아낙이며 전남지역 녹색당원이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이 늘 얼굴이며 옷에 검댕을 묻히고 사는 산골 아줌마. 따로 장 볼 필요 없이 신 신고 밖에 나가면 먹을 게 지천인 낙원에서, 타고난 게으름과 씨름하며 산다.(게으른 자 먹지도 말라 했으니!) 군말 없이 내가 차려 주는 밥상에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나날이 부엌데기 근육에 살이 붙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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