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들도 주민들과 다를 바 없이 당하고 치이고...그래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인터뷰 정리] 성모의 트라피스트수녀원 장 요세파 수녀

 

        1년 8개월 동안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마산시 구산면 수정마을 앞에 마산시가 유치하려고 하는 STX조선기자재공장 유치를 반대해 온 성모의 트라피스트 관상수녀원 원장인 장 요세파 수녀는 국가권력과 공무원, 경찰들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다. 지난 6월 5일 수정만에 대한 산업단지계획심의 과정과 8일 경남도청 등에서 보여준 김태호 도지사와 황철곤 마산시장, 경찰과 공무원들의 행태는 부조리와 관료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6일째 주민들과 함께 마산교구청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수녀들 사이에서 장 요세파 원장 수녀를 만나 그동안 느낀 심경과 생각을 듣고 정리했다.

 

▲ 신문도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는 트라피스트수녀원. 그러나 수정마을 주민들과 만나면서 신문 안에서도 하느님을 뜻을 헤아리는 지혜를 터득해 간다. (사진.한상봉)

수정만 STX조선기자재 공장유치 반대운동을 하면서, 저는 우리 시대가 사람의 생명이 고귀하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한 시대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권력과 돈 가진 사람들은 사람 눈에서 피눈물이 나도 내 주머니에 돈만 들어오면 거리낌 없이 뭐든지 할 기세였지요.  

우리를 가로막는 경찰들이 말하더군요. "이건 관공서에서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 민중의 요청을 단 하나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그래도 자신들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민주주의의 후퇴에 경찰이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자신들 입장만 중요하고 가난한 사람들 피눈물 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투잖아요.

지난 8일에 경남도청에서 경찰이 막아서자 우리 할머니들이 웃통을 벗고 밀고 들어가려고 하자, 어느 경찰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기 서 있는 전경들 불쌍하지도 않아요?"라고. 그래서 제가 그 사람에게 말했어요. "저 경찰은 불쌍하고 생존권을 빼앗기는 주민들은 안 불쌍하냐"고 말입니다. 다들 자기 편이나 자기 집단에 이익이 되면 다른 것은 문제되지 않는 것처럼 말하는 것입니다.

하소연 할 방법 없는 사람들, 몸으로 밖에..

할머니들이 왜 옷을 벗었겠어요. 그분들도 창피한 줄 모르는 것 아니거든요. 그렇게 안 하면 모든 걸 다 빼앗기고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그렇게라도 하는 거죠. 그렇게 몸으로 할 수밖에 있나요?

이 상황에서 수도자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김태호 도지사. 그 사람이 이번에 박연차 게이트랑 연루된 모양이던데... 면담하다 말이 안 통해서 그 사람한테 그랬죠.  공무원은 대기업의 기생이라고. 우리 고발하라고. 고발하면 할 말 많다고. 도지사도 대기업의 기생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암말 못하더라고요. 덕분에 난짝 경찰에 들려나왔지만.  

▲ 마산교구청 구석방에 농성에 필요한 물품을 쌓아두고 있다. 창고 같은 그 구석에서 요세파 수녀를 만났다. 요세파 수녀는 소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수도자였다, 세상과 또한 하느님과. (사진/한상봉)

수녀들도 그들처럼..

우리 사회에선 가난한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어요. 하소연 해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요. 그동안 탄원서를 10군데도 넘게 넣어봤어요. 그 사람들 눈 하나 꿈쩍하지 않더군요. 수정마을 문제는 쌔고 쌘 문제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는 거죠. 용산참사처럼 몇 사람 죽어나가는 정도는 되야 관심을 가질까 말까 라는 거죠.  

여기서 우리 수녀들은 제3자가 아니라 당사자라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수정마을 주민들과 다를 바 없죠.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다. 지난 8일 경남도청에 갔을 때 저희들도 주민들처럼 전경들을 때리고 밀치고 했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수녀들 가운데 집회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죠. 그런데 경찰이나 공무원들한테 자꾸 당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우리 입장을 전달할 방법이 없더라고요. 주민들처럼 당하는 사람들 입장이 돼버린 거죠.

지금와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더 크게 배운 것은 수녀들이 주민들처럼 똑같이 당하고, 그 수모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들을 여기에 불러들인 뜻이 아니까, 생각합니다. 저들이 아파할 때 우리도 함께 아파함으로써, 저들이 당할 때 우리도 함께 당함으로써, 하느님의 아픔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전달된다는 느낌입니다. 하느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것, 저희들이 겪는 고통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 트라피스트 수녀원은 기껏해야 28명밖에 안 되는 작은 공동체입니다. 깔멜수도원처럼 큰 곳도 있는데, 하필이면 시골구석에 있는 이 작은 공동체를 하느님은 자칫 집단 난민이 될 수도 있는 수정마을 주민들 속으로 불러들인 것입니다.

▲ 농성장의 든든한 젊은 언니, 요세파 수녀. 매번 지는 싸룸을 하면서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하느님의 사람들이 거기 있으므로.(사진/한상봉)

사람 취급 못 받는, 그러나 보석 같은 사람들

도지사나 마산시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만 그렇게 안 할 뿐이지,  이 사람들은 여기 주민들을 없어도 되는 사람들이라고 치부하는 것 같아요. 다들 70 노인네들인데...쓸모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죠. 우리가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 한다는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보러 다녔는데... 교수라는 그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 아세요? 수녀님들이 안 왔으면 듣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주민들은 사람 취급을 안하는 거죠.

수녀들이나 주민들도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1년 8개월 동안 지내면서 주민들 사이에도 갈등이 많았고, 수녀들도 마찬가지죠. 주민들도 내놓지 않고 받으려고만 드는 그런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그 사람들은 천사가 아닙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서정적인 풍경화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런 엄혹한 가난 속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분들과 함께 있다 보면 감동적일 때도 많았죠. 할머니들이 열무 세 단 가지고 마산시장에 나가 팔아요. 그러면 6천 원 벌어요. 거기서 5천 원 저금하고 1천 원으로 하루 살아요.  하루 종일 홍합을 까봐야 2만5천 원 벌어요. 그런데도 유치를 찬성하면 보상금으로 준다는 1200만원을 거절하는 겁니다. 120세대가 그렇게 돈을 거절했어요. 왜? 그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 회삿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진 할머니들이 악다구니로 경찰과 싸우는 걸 보면, 이분들이 얼마나 생명력이 있는 지 느끼면서 보석 같은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 세상 모든 곳이 수도원이다. 어디서나 그분을 만날 수 있으므로.(사진/한상봉)

착각 없이 부족한 그대로  

몸으로 그분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남의 아픔을 느끼고 계시구나, 말 한 마디만 해도 느껴져요. 이건 헛말이 아닙니다. 수녀들은 이런 경험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보상을 받은 셈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우리 행동에 대해 양 극단의 평가가 있어요. 한편에선 우리가 복음화를 가로막는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저희가 살아있는 복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뭐라 하든 다 통과시키기로 했어요. 그런 평가들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수녀들이 댓가없이 아무 우월감 없이 자신을 내어놓을 수 있는 것, 여기 천막에 기쁘게 앉아 있는 게 중요하죠.

사실 저희는 주민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많이 느껴요. 만약  차이가 있다면 우리 수녀들이 그들보다 좀 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덜 원색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죠. 그렇지만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기는 다 마찬가지죠. 여기서 이렇게 뒹굴다 보면, 좀 사람이 변할만도 한데, 사실 수녀들도 좀체로 변하지 않는 걸 봐요. 저도 물론이고요. 그러면서 이 난리 속에서도 부대끼며 버티고 있는 자신을 보면, 이 안에도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구나,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주시는 분이고, 그러니 우리가 부족한대로 그냥 기쁘게 뭐든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이제 다시 힘내야 해요, 우리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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