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기도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러니까 디지도록

- 닐숨 박춘식

 

? 왜 저는 맨날 같은 자리입니까

? 작은 거라도 원하는 대로 되어야지요

? 저에게는 왜 기적이 나타나지 않습니까

 

묵묵무언의 산수(傘壽)께서 두루마리를 주며

벽에 걸어 아침 읽고, 저녁에도 보라고 하셨는데

- 원하는 대로 안 되면 매우 정상(正常)이다

- 원하는 대로 되는 경우 그것은 기적이다

- 원하는 것보다 더 얻으려면 디져야 하느니라

 

그러니까 기도를 디지도록 바치란 뜻인지

새해 덕담에 화들짝, 두루마리를 꾹 쥐고

땅바닥 보다가 머리를 하늘로 무겁게 듭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8년 1월 8일 월요일)

 

‘뒈지다’는 ‘죽는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며, ‘디지다’는 ‘뒈지다(죽다)’를 뜻하는 경상도 방언입니다. 경상도 사람들이 권력으로 사람을 많이 지기고(죽이고) 추잡스러운 일을 하여, 뉴스에서 지방색이 나타나면 ‘주님 용서하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발음하기 좋은 ‘디지도록’ 무엇을 한다는 말은 방언으로 여겨지기보다 표현이 실감 난다는 사람도 가끔 있습니다. 50년 전, 어느 사제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사제 생활에 흥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여 고민하다가, 시험 삼아 한 달 동안 기도를 디지도록 했더니 글쎄 20년 또는 30년 냉담한 신자들이 고백소에 여럿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아, 주님....’하고 감동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제의 겸손과 기도는 냉담자를 회개시키는구나! 하고 놀랐던 기억이 솟아났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사제들이 디지도록 기도하고 겸손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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