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규 신부] 1월 7일(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

동방박사들이 자기 고장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은 마지막 날 시온에서의 구원이 모든 민족들과 함께 어우러질 잔치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헤로데 임금이 동방박사를 만나게 되는 건 불편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헤로데의 권력의지는 베들레헴의 아기를 향하는 별빛의 의미를 애써 찾으려 했다. 그 찾음은 수용이 아닌 거부의 몸부림이었고, 헤로데에게 별빛은 밝히 드러나야 할 게 아니라 어둠 속에 철저히 제거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오늘 복음은 정확히 빛으로 오는 예수와 세속의 어둠에 갇힌 헤로데의 대립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헤로데는 ‘남몰래’ 동방박사들을 불러 별에 대해 묻지만 동방박사들은 저 이방인의 땅에서부터 온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공적으로’ 별을 쫓아왔다. 헤로데는 별이 가리키는 아기를 없애려 하지만,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라는 선물을 내놓는다. 이사야는 마지막 날 시온을 향해 모든 민족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보화를 들고 올 것이라는 희망을 노래한 적 있다.(이사 60,6) 동방박사가 아기에게 선물을 내어 놓고 경배한 후 자기 고장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은 마지막 날 시온에서의 구원이 모든 민족들과 함께 어우러질 잔치라는 사실을 상징한다. 이러한 마태오 복음의 보편 구원에 대한 외침은 그 마지막에까지 유지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

주님 공현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의 신념과 이념이 다양한 만큼, 딱 그만큼, 우리의 삶이 더 풍요로워지는지, 아니면 다양한 만큼, 딱 그만큼, 단절과 갈등이 득세하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다양성의 존중 정도는 한 사회의 시민의식의 수준과 상응한다. 간혹,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제 신념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이들의 행태가 다시 찾아온 민주주의의 시작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인민이 주인되는 세상은 획일적인 가르침과 영웅의 탄생이 아닌, 다름에 대한 존중 위에 펼쳐지는 격렬한 논쟁으로 성장한다. 동쪽, 낯선 곳에서 나타나는 이방인과 함께할 마음이 민주주의 본질이고, 주님 공현의 핵심이다.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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