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임대" 서비스업의 발달을 보며

(윌리엄 그림)

2014년에 야후 재팬은 “야후 엔딩”(Yahoo Ending)을 도입했다. 야후의 회원이 죽으면 그의 계정과 그가 쓴 글들은 지워지고, 당사자가 미리 준비해 뒀던 고별 메시지가 가족과 친지들에게 보내져 그의 죽음과 마지막 생각을 알린다. 여기에는 또한 장례 준비는 물론 장례 진행을 도울 상조회사와의 계약에 대한 조언도 포함된다.

아마존 재팬은 한 발 더 나가서, 승려 배달(obosan-bin)이라는 것까지 홈페이지에서 돈을 받고 해 준다. 최저가는 3만 5000엔(약 33만 원)인데 집에서 하는 간단한 예식이다. 고객이 이것을 신청하면 불교 승려가 와서 해 준다. 홈페이지에 실린 광고에 따르면, 주문을 하면 “보통 1-3주 안에 배송”된다.

가장 비싼 것은 약 60만 원으로, 묘지에서 하는 2차 서비스가 포함되며, 불교 관습에 맞춰, 죽은 뒤에 쓰는 이름도 준다. 관, 밤샘, 장례식과 화장까지 포함하는 일반 장례의 2000만 원과 크게 비교된다. 물론 이 온라인 주문에는 승려의 서비스 말고는 아무것도 포함되지 않지만, 승려 자체도 원래는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이것만 해도 크게 절약된다. 특히 지켜야 할 제삿날 많은 이에게 그렇다.

아시아의 많은 이들에게, 종교는 어떤 신이나 신념체계에 영적 또는 정서적으로 결합된 것이라기보다는 우선 전통 예식의 문제다. 심지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이들 상당수에게도 이는 해당되며, 또한 아시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부 일본 가톨릭 가정에서는 미사에 참석하고 본당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할머니가 해야 할 의무로서, 할머니는 불교 관습에서 그런 것처럼, 종교적 의무에 가족을 대표해 나가는 것이다. 할머니가 죽으면, 며느리가 가족 대표의 역할을 넘겨받을 것이다.

종교가 신앙이라기보다는 관습적 예식이라는 것은 일본인들이 교회 스타일 결혼식을 하고(대개는 교회에서 하는 것이 아니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신도(神道) 예식을 베풀고, 각자 종교의 가르침에 매이지 않은 채 불교식 장례를 치르는 사실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실제로, 일본인의 70퍼센트는 자신이 비종교적이라고 보지만, 대부분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수는 여전히 그런 예식들을 치른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절이나 다른 종교에 소속되지 않고도 (그 종교의) 예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기업들이 찾고 있는 것은 놀랍지 않다. 기업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대신에 돈을 받을 신용카드 번호만 받으면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

2014년에 야후 재팬은 "야후 엔딩"(Yahoo Ending)을 도입했다. ©Yahoo

이와 비슷한 일이 일본에서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도 일어나고 있다. 인도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제 “임대 사제”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지난 1992년에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뒤 여러 나라에서 마치 렌트카 서비스처럼 실행되고 있다.

사제는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사제들도 아마 교회법에 제한을 받기도 하고, 너무 일이 많기도 하고, 가끔은 너무 게으르기도 해서 사목활동이나 성사집전을 해 달라는 신자들의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제품을 받았지만 지금은 현직에 있지 않은 이들이 영적, 예식적 직무를 해 준다. 이들 상당수는 혼인하기 위해 사제직을 떠났다.

일부 고객들은 집에 갇혀 사는 부모들에게 사목방문이 있기를 바라지만 올 수 있거나 와 줄 생각이 있는 사제나 다른 사목일꾼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 중에는 결혼을 계획하고 있지만 교회법이나 관습이 장애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 짝들이 아마도 더 많은 것 같다. 사제, 또는 다른 신자들과 다툰 끝에 어떤 본당에 나가지 않기로 한 신자들도 있다. 대부분은 더 이상 교회와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거나 최소한만 관계하고 있을 듯하고, 그럼에도 여러 향수나 문화적 이유, 가족 관계 등 때문에 “교회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한다.

종교 예식의 상업화와 그 바탕에 깔린 신앙의 평범화를 애도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중요한 지점을 표시하고자 할 때 여전히 종교 예식에 눈길을 준다는 사실에는 제법 의미가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무언가를 듣고 싶어 할 때, 비록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종교 관습과 상징들이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말해 준다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서 가르치던 한 불교학자가 지적했듯, 가장 헌신적인 공산주의자들조차도 자기 임종 자리에서 “자본론”을 읽어 달라고 하지는 않는다.

비록 “사제 임대” 서비스가 분명히 어떤 요구에 응해 주기는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런 예식들의 바탕에 깔린 신앙 기초를 더 명확하고 더 매력 있게 그려 보여 줘야 한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이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들이 원래 바라던 바를 얻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무슨 종교에 속한 성직자든 간에 다 일종의 기능직으로 볼 것이다. 우리 (성직자) 자신이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식들을 필요로 하기 전에 우리가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에 진실로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러기 전에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기능적 예식들로) 자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그리고 진짜로 필요로 하는 바에 못 미치는 것으로, 진짜로 이미 그들에게 주어진 바에 못 미치는 것으로 자신들의 필요를 채우게 될 것이다.

(윌리엄 그림 신부는 <아시아가톨릭뉴스>의 발행인이며, 도쿄에 있다.)

기사 원문: https://www.ucanews.com/news/retailing-religious-rituals/7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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