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욱 선생의 학교]

"에이 x발 x 같은 게...."

바로 몇 주 전 우리 학교 5학년 남자아이가 어머니뻘되는 영어 전담 교사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한 말이다. 아이가 영어 시간에 당연히 해야 할 학습 활동에 참여하지 않자 왜 하지 않느냐고 물어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안 그래도 육아 휴직에서 돌아와 학교에 적응하는 중이던 교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큰아이랑 동갑이라서 나름 더 정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아이에게서, 더군다나 얼굴 앞에 대고 쌍욕을 들었으니 말이다. 며칠을 잠도 못 자고 고민하던 영어 교사는 결국 이 문제를 담임에게 알렸고 담임교사와 영어 교사, 해당 아이 셋이서 함께 이야기 나누며 아이가 정식으로 사과하면서 이 사건은 대충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만약 아이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부모가 나서거나 관리자들이 그냥 넘어가자 한다면?

인간도 동물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때로는 어떠한 인간성이 아닌 단순한 정글과도 같은 법칙이 지배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바로 단순한 힘 말이다. 약육강식의 그 처절한 원리가 학교에도 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남 교사와 여 교사를 다르게 대한다. 더군다나 남 교사가 좀 무섭거나 덩치가 크거나 하면 아이들은 어느새 순한 양처럼 변해서 더욱 말을 잘 듣는다. 그러나 연약한 여자이거나, 본인들보다 작거나, 젊어서 마냥 잘해 주거나, 요령이 없거나, 화를 안내거나, 목소리가 작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교사를 깔보고 무시하기 시작한다. 예전에는 그냥 교사의 지시를 잘 안 따르거나 과제물을 안 해 오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저렇게 대놓고 욕을 하는 행동까지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다. 어찌 보면 저것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뉴스를 보면 중, 고등학생은 물론이고 초등학생까지도 교사를 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교사가 이런 일을 당해도 사실상 어찌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교권보호위원회라는 것이 제도적으로 존재하기는 하지만 언어폭력이나 신체 폭력을 당하고도 제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 것이 교사로서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마냥 인식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은 심각한 심리적, 신체적 상해를 입고도 그저 가슴앓이를 할 뿐이다. 더군다나 학교 폭력과 마찬가지로 교권보호위원회에서 내리는 처분이라는 것이 초등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교사의 교권은 고사하고 인간으로서 인권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데 반해, 아이들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규정을 강화하여 혼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한 언론 보도(‘교사가 자기 성추행 학생 뺨 때려도 아동학대?’, <조선일보>, 2017.12.11.)에 의하면 2014년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교사가 아동 학대로 5만 원 이상 벌금형만 받아도 바로 해임되거나 10년간 교직에서 일하지 못 하도록 되어 있다. 내용만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아동 학대의 기준이 모호하고 적용 범위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같은 보도에 의하면 아동복지법상 ‘정서 학대’는 ‘아동의 정신건강이나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는데 웬만한 교사의 훈육도 학대로 고소, 고발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영남권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무려 4년 전에 친구와 다툰 아이를 교실 벽에 세워 둔 것이 학대라며 학부모로부터 합의금 수백만 원을 요구받았을 정도니 목소리라도 높이거나 몸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뒤로 잠시 내보내기만 해도 ‘아동 학대’로 처벌을 받아 교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충분히 일어나는 것이다. 한 변호사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 ‘벌금형만 받아도 교사를 교육 현장에서 배제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지만 어떤 결론이 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물론 나도 학창시절 정말 많이도 맞으면서 지냈다. 고등학생 수학 시간 때는 누군가 내쉰 한숨을 내가 한 것으로 오해받고 다짜고짜 따귀를 여섯 대나 맞은 적도 있다. 결국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이비인후과 진료까지 받았고 이 일을 항의하러 학교를 오신 우리 아버지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경험도 있다. (나중에 보니 그 교사가 교장까지 되었다.) 최근까지 학생들의 인권은 그 존재마저 부정당해 온 것도 사실이다. 나도 또한 일부 교사들의 일탈 행위나 학생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를 교권이라고 포장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만 인간이면 당연히 주어지는 권리, 교권이 아닌 인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십여 년을 아이들을 가르쳐 온 나도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정말 무엇으로, 언제 한 일로, 누구에게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겠고 어떠한 말과 행동이 아동 학대로 몰릴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권을 짓밟혔을 때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른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비참한 현실인가?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말 모르겠다.

결국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생존을 선택한다. 괜히 나서거나 끼어들었다가 험한 꼴을 당하느니 교사로서 당연한 지도와 훈육을 포기하고 그냥 학교에서 하라는 일이나 하고 교과 내용만 건조하게 가르치다가 때가 되면 월급이나 받는 철저한 직업인으로서 생존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대지 말고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그냥 무관심하게 있다가 행정적 일만 처리해 주고 때가 되면 다른 학교로 가면 된다. 지금과 같은 현실 속에서는 이렇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학교 영어 교사도 애초에 수업 시간에 아이가 학습 활동을 하든 말든 무관심했더라면 그렇게 쌍욕을 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가 교사의 인권을 경시하거나 무시한 대가를 엉뚱하게 아이들이 치르게 되는 것이다.

교사들도 부족한 인간들인 만큼 부적절한 지도나 훈육은 마땅히 감시받고 제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권마저 유린당하거나 싸우는 아이를 뒤로 나가게 하는 것조차 아동 학대로 처벌받도록 하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격이다. 교사의 잘못을 호되게 처벌하는 것만큼 교사의 정당한 지도와 가르침은 보호받고 보장되어야 한다. 당신이 교사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채성욱 교사(루도비코) 

2003년부터 인천과 경기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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