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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창과 인간에 대한 신뢰[사회교리 렌즈에 비친 세상 - 박용욱]
깨진 유리. (이미지 출처 = Pixabay)

1. 깨진 유리창 이론

지하철 입구에 누군가 다 마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버리고 간다. 단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그 컵을 치우지 않고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 얼마 가지 않아 컵 쓰레기가 산을 이룬다. 담배도 그렇다. 한 사람이 금연 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제지하지 않으면 슬금슬금 흡연자들이 모여든다. ‘깨진 유리창’ 이론을 실증하는 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한다는 이 이론은 미국의 범죄심리학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처음으로 소개했다. 그리고 이 이론에 근거하여 켈링은 뉴욕 지하철에서 일어나는 흉악범죄를 줄이기 위해서 지하철을 도배하다시피 했던 낙서(그래피티라고 부르는)를 지우자고 제안한다. 범죄예방에도 부족한 인력을 낙서 지우는 데 투입하는 것은 인력 낭비라고 여긴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교통국장은 무려 5년에 걸쳐 무질서의 상징 같았던 그래피티들을 깡그리 지워 내고 말았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낙서를 지우는 것만으로도 뉴욕 지하철의 중범죄 사건이 무려 75퍼센트나 줄었던 것이다.

2. 우리 시대의 깨진 유리창들

우리 사회가 그동안 막힘 없는 소통과 투명한 의사결정에 인색했던 탓인지,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에 어떻게든 균열을 내고 싶어 하는 바람이 커서인지 아무튼 깨진 유리창이 하나 발견되면 득달같이 쇄도하는 비난과 저주를 목격한다. 어떤 근거로 그런 주장이 등장하는지를 따져 보는 지성은 마비되고, 누군가가 “저 사람은 욕해도 된다!”고 손가락질을 하는 즉시 융단 폭격이 쏟아진다. 사실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전후 맥락이 어떠한지 따져 보지 않는다.

혹 반론이 제기되거나 손가락질을 당하는 피해자가 항변을 하게 되면 갖은 음모론과 갑을 관계, 강자 대 약자, 기득권과 소외의 프레임으로 단순화시켜서 그 입을 막는다. 최근 교통사고를 내고도 무책임했다며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받았던 한 연예인이 그랬고, 33년 경력의 베테랑 운전기사도 그 때문에 목숨을 스스로 버릴 생각까지 했단다. 깨진 유리창으로 황소바람이 불어오니 당할 재간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제도의 개선도 의식의 고양도 그 무엇도 이루어 내지 못한 채 인간에 대한 불신과 씁쓸한 소회만 남기는 것은 아닐까.

3. 사회교리는 사회이론과 어떻게 다른가

가톨릭 사회교리가 여타 변혁적 사회이론과 크게 구별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안에 내재된 하느님의 모상에 대한 근본적 신뢰가 아닐까 싶다. 구원의 보편성은 그 어떤 예외도 없이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근본적 지위를 지닌다는 표현과 맞물려 있다. 그렇기에 가톨릭 신앙은 사람이 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모든 사람에게서 회심의 가능성과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한다. 제도 만능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개개인의 회심과 실천을 끝까지 믿는 이 태도는 전투적 자세와 공격적 언어로 적을 섬멸하겠다는 호기로운 도전과는 길을 달리한다.

사회교리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전제로 한다. 인간은 깨진 유리창 하나를 보고 몰려와서 침을 뱉는 격정의 순간을 겪기도 하지만, 차분히 뒤돌아서서 그 의미를 곱씹고 새로운 초석을 쌓아 갈 수 있는 신비로운 존재다. 전례력으로 이미 시작된 새해와 일반 달력으로 묵은 해가 교차하는 이 시점에, ‘인간에 대한 신뢰’가 지난날의 성찰과 새해 설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기를 바란다. 은총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다운 모습을 회복하게 하는 핵심 열쇠이고, 우리는 그 은총에 협력하도록 불리웠다.

박용욱 신부(미카엘)

대구대교구 사제. 포항 효자, 이동 성당 주임을 거쳐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간호대학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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