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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의 사람사는 이야기]GIVE WAY

 

   

이민생활 10 여 년이 지나는 동안 참 많이도 주변이 바뀌어 가고 있다. 낯 설고 물 설고 언어마저 생소한 땅에 와 정착한다는 게 어디 그리 순탄 하기만 한 일인가. 감수성이 예민한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아이들도 나름대로 힘들었을 생활을 잘 엮어 온 것 같다.

현지 대학을 졸업하고 어엿한 1.5세대 코리안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로 성장하여 세상에 나오는 모습들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적어도 2중언어의 사용을 익히고 나온 터라 기본적 바탕이 있어 가능성들이 많아 보인다.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처럼 이제 각기 자기 일들을 찾아 자기 영역을 넓혀갈 시간이 된 것이다. 부모 된 마음은 그마저도 고마울 뿐이다. 자녀들과 혹은 부모님까지 모신 분들에게 있어서 이민 1세대의 생활은 더없는 질곡의 세월로 이어져 온 듯하다.


우선순위, 노인복지

수 년 동안 형님, 형수님처럼 지내오고 있는 분의 생활을 보면 항상 내 앞에 거울로 다가온다. 6-7년 음식점을 운영해 오다 보니 쉴 새 없이 살 수밖에. 자녀 둘에 노모를 모시고 사는 가정이었다. 연로하신 할머니께서 어느 날부터 치매 현상이 나타나고 정도가 심해지면서 겪는 그 어려움 이라니… 일하다 잠깐 낮에 집에 들러 홀로 누워 계신 할머니의 대소변도 받아내고 씻긴 뒤 점심을 차려 주고 나오곤 했다. 일 끝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면 몸은 피곤한데 온 방이 볼 수도 없는 상태로 엉망이니 그 치닥거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티 카운슬 직원이 이 사실을 이웃집 연락으로 알게 되었다. 몸이 아파 힘든 할머니를 그렇게 혼자 있게 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쩔 거냐며 경고를 주었다. 집안 사정을 파악한 뒤 국가 시설 양로원으로 결국엔 모셔가게 되었다.

처음엔 그럴 수 없다며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반대를 하고서 버틸 수밖에… 국가 지원 양로원 직원들이 때에 맞게 식사 챙겨 주고, 대 소변도 받아내고, 잠자리 챙겨주는 모습과 편의 시설을 둘러 본 뒤에야 한국식 부모님 모시는 방식을 어렵게 내려놓게 되었다. 고맙기도 하다가도 걱정도 될 수밖에… 초기엔 어머니께서 적응이 안 되어 힘들기도 했다. 국가에서 무료로 잘 돌 봐 주면서 현지인 노인을 만나 차츰 바디랭기지로 조금씩 의사 표현도 하며 적응을 하게 됐다. 그런 뒤 음식점 일에 좀 더 집중하여 일하게 되고 결국은 수입이 늘어난 만큼 세금도 더 내게 되고… 그 돈이 어려운 국가 양로원 시설 운영 자금이 된다고 생각하니 자발적인 마음이 더 생기게 되었다.

나라가 크게 잘 사는 게 아닌데도 우선순위를 두는 노인 복지 혜택이 고마울 뿐이었다. 시티 카운슬 복지 파트 직원의 마음을 들어 보니 ‘힘들고 어려운 상대방 입장에서 내 일처럼’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역시 좋다고 했다. 생활 전선에 뛰어 들어 숨가쁘게 생활하는 중에 제대로 돌볼 시간을 내드리지 못해 항상 죄송한 마음이었다. 먼발치서 지켜보는 어머니를 몸과 맘 다 불편한 채로 맡아 수발을 다 들어 주다니, 그것도 상대방 입장에서 내일처럼…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한결 같은 그 마음

화요일 저녁, 각자 그 날 일들을 마치고 키위 성당에 모여 성경 공부(요한 복음)를 하면서 나누는 묵상 속에도 가슴에 감동을 주는 생활 이야기들이 그 날의 노곤한 심신을 풀어주기도 한다. 대형 마켓 푸드 코트에서 일해오고 있는 한 형제의 얘기도 그랬다.

지난 2002년 축구 월드컵 대회 때 일이란다. 이른 아침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쉬지 않고 하루 수요량 20마리 분량 쇠고기를 알맞은 크기로 자르고 포장해서 상품 진열대에 배열하는 일이었는데… 처음에 그 무거운 통고기를 들어 내리고 자르고 올리고 포장하다 보면 육체적으로 무척 힘이 들고 고단해진단다. 거기에 안전을 우선으로 해야 하는 일이기에 신경도 많이 쓸 수밖에… 작업 준비 복장으로 막 일에 임하려는데 마침 매니저가 다가와 “오늘 아침 시간, 당신 나라 코리아와 스위스가 빅 게임을 치르잖아. 궁금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어? 집에 가서 보고 싶은 TV 생중계 보고 오지. 내가 대신 그 일을 해놓을 테니까” 하며 어깨를 툭 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고마운 마음으로 덕분에 TV 생중계를 보고 오니 매니저가 직접 그 일을 다 해놓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더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찡한 감동에 가슴이 먹먹해지며 새로운 다짐이 일었단다. ‘나도 저런 모습의 매니저가 되어야지’ 외국사람 직원에게도 한 사람 한 사람 그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한결 같은 그 마음 씀씀이라니…

‘상대방 입장에서 내일처럼’ 그렇게 일하기가 말처럼 어디 그리 쉬운가. 머리로는 알아도 행동이 바로 못 따르는 우리네 일상사 속에 숨은 보물은 이렇게 감동과 여운을 준다. 선진국이 국민 소득만 높다고 되는 게 아닌 성 싶다. 실용성, 효율성, 합리성, 성공 마인드, 부가가치, 업무실적 등의 개선 변화도 필요하겠지만, 그 핵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잃지 않는 마음이 기본인 것 같다. 함께 사는 세상엔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먼저 자리를 내어 주는 배려(GIVE WAY)가 우리네 마음에 여유를 준다. 빌딩 앞, 쇼핑 몰, 관공서, 병원, 관광지 등의 주차 공간이 차들로 꽉 차고 넘쳐도 제일 좋은 곳에 몸이 불편한 이들 전용 주차 공간은 꼭 한 두 개 씩 비어있다. 남겨진 자리다.

신호등 없는 횡단 보도에서 차량들이 주욱 밀린 채로 줄을 서게 돼도, 길 건너는 사람이 여유있게 지나가도록 기다려 주는 GIVE WAY 운전자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뉴질랜드 도로에 가장 많이 쓰인 글씨, GIVE WAY. 처음엔 적응이 잘 안 되어 혼선도 빚었지만 요즘은 그 자연스런 흐름에 함께 흐르다 보니 세상사 모든 일이 다 똑 같은 방식으로 닮아가는 것 같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려니…

상대방 입장에서 내 일처럼, GIVE WAY 하며 운전하는 이 시간도 ‘그림자는 늘 고향을 향해 드리워져 있다’. 빠알갛게 추억의 색깔로 물들어 가는 이곳 5월의 가을 단풍 기운을 드리워진 그림자에 실려 보내고 싶다.

/백동흠 2008-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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