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장 언론인 간담회 일문일답

김희중 대주교(천주교 광주대교구장)가 12월 21일 교구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성탄 메시지를 발표하고 사회,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2017년 광주대교구장 주님 성탄 대축일 메시지의 주제는 ‘생명’이다. 간담회에서 김 대주교는 낙태죄 존폐 문제에 대해 ‘모든 인간 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고 지난 11월 21일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가 밝힌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어 고의적 자살, 노동자들이 단순한 이윤추구의 도구로 취급되는 조건 등 인간의 존엄함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창조주의 영예를 극도로 모욕하는 것”이라는 “사목헌장” 27항을 인용하며, 김 대주교는 “인간의 생명은 인간 존중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인간 삶의 모든 영역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8년 세계평화의 날 담화에서 강조한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연대와 형제애를 강조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와 인간 생명 존중은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주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어떠한 일이든 모두 시도해 봐야 한다”고 부연 설명했다. 김 대주교는 자신도 베트남전에 참전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체험했다면서, “어떤 경우든지 전쟁을 말하는 사람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라고 강력하게 규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 대주교는 사회복지와 사회사목, 5.18특별법, 양심수 석방, 적폐청산 등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김 대주교는 2014년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됐으며,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장 역할도 맡고 있다.

김희중 대주교 ⓒ강한 기자

다음은 김 대주교와의 일문일답이다.

- 성탄 메시지에서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에 관해 말했는데,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다. 가톨릭교회는 남북관계에 대해 어떤 구체적 계획을 갖고 있나? 난관에 빠진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김 - 북한이 왜 저렇게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핵 개발에 매달리는가? 그것은 전쟁을 위해서라기보다 대화를 요구하는 적극적 표현이 아니겠는가? 대화를 하되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겠나?

북한도 전쟁을 일으키면 미국은 상처 입지만 북한은 멸망할 수 있음을 잘 알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섣불리 전쟁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대화의 전제조건을 다는 것은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 포기 선언을 미리 하면 대화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핵 포기를 위해 대화하자’고 해 놓고 ‘핵 포기를 해야 대화한다’고 하면 대화를 하나마나다. 자기에게 유리하게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으로 끌고 간다면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이해관계가 상충될 때, 서로 타협, 양보하고, 밀고 당기며, 최대 공통분모를 찾는 게 대화의 목표다. 자기 목표만 고집하면 대화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화에 있어서 항상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은 틀림’이라는 등식은 접어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것은 다른 것일 뿐이고, 그것을 조화롭게 할 방법이 없는가 찾아보는 게 대화의 목적이다. 획일적인 목표를 정해 놓고 끌고 가려 하는 것은 진정한 대화의 자세가 아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 일단 남북 당국자들이 직접 만나는 것이 남북한에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분위기 형성이 필요할 텐데 종교인, 민간인들이 먼저 북측과 관계 맺으면서 신뢰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는 교황청 관계 인사들에게도 중국과의 관계에서 가장 기본적 조건이 ‘신뢰’라고 말했다. 남북한관계, 북미관계에서도 가장 중요한 게 신뢰다. 일방적 신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 간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 신뢰는 정치인의 정치적 계산, 복선을 깔고 말할 때는 잘 형성되지 않는다. 민간인과 종교인이 정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서로 교류, 협력할 때 신뢰가 벽돌 한 장씩 쌓아 올리는 것처럼 형성되는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북한과 인도주의적 교류를 하고 있다.

신뢰가 있으면 상대방의 사소한 실수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신뢰가 없으면 아주 지엽적인 문제 하나로도 산통이 깨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북측에서도 신뢰 관계가 형성되도록 좀 더 대승적 차원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 적폐청산이 추진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전 정권 죽이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생각 갖고 있나?

김 - 우리가 적폐청산으로 거론하고 있는 내용들이 터무니없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적폐로 지적되는 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이고, 국부가 유출된 경우도 있고, 젊은이들이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를 공평하게 보상 받을 수 없기에 ‘헬조선’이라고 말하는데, 그런 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이 적폐청산이다.

다만, 우리가 적폐청산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만 청산하고 말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있더라도 똑같은 유혹을 받지 않도록 아예 법과 제도로 보완해서 나아가는 것이 적폐청산의 열매 하나가 아니겠나 생각한다.

꼭 어떤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중심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책임을 묻지 말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 불황이 계속되면서 서민들의 어려운 삶에 종교가 어떻게 도움과 위로를 줄 것인가 하는 사회사목, 사회봉사가 중요한 화두 같다. 내년 지역에서의 사회복지, 사회봉사와 관련해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무엇을 중시할 것인가? 김 대주교는 주교회의 의장도 맡고 있으니, 전국 교회 차원의 사회사목 관심사에 대해서도 말해 달라.

김 - 우리 교구는 사회복지 시설과 관련해 박애주의적인 것뿐 아니라, 복음의 정신과 교회의 가치를 실천하자는 의도가 많다. 어떤 인간적 계산도 하지 않으며, 선교를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 자체의 소중함 때문에, 소중한 존재가 존엄성을 존중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이루면 좋겠다는 차원에서 사회복지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뿐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가진 분들도 똑같은 존엄을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나눔’으로 생각한다. 가톨릭의 사랑 실천은 나눔으로 표현하고 싶다. 내가 가진 게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 나에게 맡겨 주신 것을 주인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나눔을 실천하고자 한다.

특히 장애인,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고 있는 가정에 가톨릭 신자들이 시간을 할애해 도와주는 것도 필요하다. 장애 가진 아이의 부모님들 소원은 ‘자녀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가정의 고통과 어려움을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차원에서도 신자들에게 강조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그분들과 함께, 그분들을 대신해서 한나절이라도 돌봐주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법과 제도 때문에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 대해서 교회가 관심 가져야 한다. 결식아동, 자녀와 몇십 년 전에 헤어져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기록상에 올라 있는 것 때문에 도움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많이 있다.

사회사목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런 분들이 더 이상 많이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개정하는 것까지도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우리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더 적극적으로 보완해 입법 과정도 해야 한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농민회’ 활동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추곡 수매가 투쟁을 많이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농촌, 어촌 생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여서 소득을 높일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대기업에도 당신들이 FTA로 많은 이익을 얻고 있는데, 그 이익의 일부라도 떼어서 농촌, 어촌의 소득을 올릴 연구소, 냉동창고, 가공식품을 위해 출연해 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한 적도 있다.

광주대교구 농민회는 그런 것을 생각하면서 조그마한 사단법인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 실질적으로 농민, 어민이 자기들이 생산한 것을 부가가치 높여 가공식품화하면 좋겠다 싶어서, 몇 년 전 농민회 지도자들과 함께 일본을 견학한 적도 있다. 일본인들이 그것을 잘 한다. 예를 들면 멸치로 만든 술안주, 과자 가공품이 있다. 포장도 예쁘다. 광주, 전남에서도 그런 시도를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또 하나 저의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광주에서 ‘시민정치학교’를 해 보고 싶다는 것이다. 막연히 정치적 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우고, 양성할 수 있는 학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심각한 현안 하나가 낙태죄 폐지 문제다. 낙태죄 폐지 문제가 구체적이고 강경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대치 상황, 세 싸움 같은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 교회의 생명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반복되는 용어와 구호만이 아니고, 사회에서도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새롭게 말해야 할 필요성은 없나? 구체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방법의 변화 등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 - 생명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태아의 생명을 부모가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확대해석하면 자녀의 생사여탈권을 부모가 가진 것이 정당하다는 말이 된다. 확대해석하면 우리에게 불편을 주는 장애인도 사회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된다.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에 우리가 빠져들게 된다.

(이 문제가) 생명에 대한 도전이라고 본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전에는 개인이 감당할 일로 생각했는데, 이제 이 모든 것을 사회와 국가가 분담하자는 생각이다.

독일에 있는 친구의 아들이 자폐아였다. 독일 정부는 장애인들에 대해 정밀검사를 시킨다. 물론 모든 비용을 정부가 다 댄다. 장애인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그래도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겠는지 그것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검사 결과, 그 자폐아는 절대음감이 있다고 결과가 나왔다. 정부가 모든 돈을 다 대고 자폐아가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한 번 들은 음은 잊지 않고 그대로 재현한다. 피아노를 꽤 잘 친다고 들었다.

이와 같이 더불어 함께 사는 공동체성 회복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우리는 (나이를 셀 때) 서양보다 한 살 더 많게 말한다. 태아도 태어나면 한 살로 친다. 동양의 전통적인 생명존중 사상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점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슬람교도들이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우리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이슬람 사회에서는 낙태는 상상할 수도 없다. 그들은 알라 신께서 주신 생명은 우리 것이 아니라 신의 것이며, 신의 소유를 인간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여긴다. 이는 우리 가톨릭도 마찬가지다. 생명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고, 일단 태어난 생명은 하느님의 소유이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김희중 대주교(천주교 광주대교구장)가 총대리 옥현진 보좌주교 등이 배석한 가운데 12월 21일 교구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 나누고 있다. ⓒ강한 기자

- 5.18 특별법, 국민의당 등 광주, 전남의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눠 달라.

김 - 5.18 특별법은 당연히 되어야 된다. 되리라고 생각한다.

(국민의당에 대해서는) 역사인식의 가치관 공유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우려하는 점이 없지 않다.

(종교인으로서) 정치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어려운데, 우리(광주, 전남)의 정서가 있다. 5.18, 남북관계 등 문제가 있는데 그건 정서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5.18 관련 시위 때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노래 중 하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면서 남북관계도 회복하자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투옥된 법의 근거가 국가보안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의 근거는 남북 간 대치다. 이 법은 아직도 살아 있고, 원하면 어떻게든 (위반자를 감옥에) 넣을 수 있다. 축구 시합 때 북한 선수가 넘어지면 남한 선수가 일으켜 주던데, 이건 북측 사람을 이롭게 한 것이니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것이다.

그런 법을 우리가 아직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보수가 반대한다고 해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 국민의당에 대한 의견을 조금 더 자세히 말해 달라.

김 - (국민의당이) 5.18 특별법에 반대하거나 남북한 대화를 달갑지 않아 하는 세력과 합한다면 우리 정서와 맞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 전에도 그런 이야기는 많이 회자됐다.

- 국가보안법 폐지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최근 김 대주교를 비롯한 종교계는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기 전 국회의원을 비롯한 이른바 ‘양심수’들의 석방을 촉구해 왔다. 그런데 우리 사회와 언론 일부에서는 특히 이석기 전 의원은 ‘양심수’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김 - (이석기 전 의원 등은) 실제로 무력 봉기를 한 게 아니고 자기 의견을 말한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에 어떻게 돼 있나?

또한 법원과 당국이 사건 관련 정보를 국민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 국민들은 정부가 그 당시 발표한 대로 반역, 대역죄처럼 생각해 버렸다. 헌법의 정신이 무엇인지, 실제로 그들이 한 게 무엇인지, 발언은 무엇인지.... 녹취록이 이렇게 되어 있다고만 말했지, (그것을) 다 풀어서 말한 적이 없다.

정당 해산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것인데, 그건 아니다.

이석기 전 의원 구속, 통합진보당 해산에 반대한다는 것은 헌법적 가치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헌법의 가치에 의하면 그렇게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당시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당신들은 참 비겁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에는) 법률 전문가도 있는데, 법적 요건도 충족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는 것은 기회주의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나왔나? 법적 요건을 다 판단했지만, 그 요건이 채워지지 않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석기 및 통합진보당 사건에 대해) 확실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기자들을 못 봤다. 두루뭉술하게 둘러말했다. 그건 아니라고 말했어야 하는데, 정권이 바뀌니 물어뜯으려 하는 것은 비겁하다고 본다.

- 지난 촛불시위 뒤 우리 사회의 변화와 희망에 대한 의견은?

김 - 촛불시위는 우리나라 민주주의, 시위 문화가 한 단계 성숙하는 아주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민이 힘을 합하면 이렇게 큰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것이 큰 소득이다. 시위를 하더라도 시위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폭력, 질서 있는 시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교육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촛불시위 이후, 우리 사회 여러 영역에서 많은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을 위해 나아가는 데 좌고우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옳다고 생각하는 데 대해서는 조금 더 밀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현 정부도 다소 부담은 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이 개혁이 혁명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인데, 혁명적인 변화는 원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혁신과 개혁을 통해 법과 제도가 보완되고 정착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보다 충격을 덜 받고 정리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점진적인 변화, 쇄신, 혁신, 개혁의 단계를 통해 정착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상적 법과 제도가 반드시 이상적 사회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이상적 법, 이상적 제도의 근본 취지와 제도를 충분히 인식하지 않고, 그냥 따라 하기만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그런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는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나라다운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이렇게 정상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성숙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국정철학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경제에 있어서도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기득권을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경제, 대기업을 위한 경제, 이것은 아니다.

옛날에 우리에게는 나눔 문화가 집에서부터 있었다. 잔칫집 가서 떡 한 덩어리, 고구마 하나라도 얻어 오면 아이들에게 ‘나눠 먹으라’고 했다. 쪼개서 갈라 주지 않고, 너희가 나눠 먹으라고. 요즘은 네 것, 내 것이 가려져 있다. 자기 것은 철저히 지켜야 하고, 주지 않고, 받는 것은 좋아한다.

나눔 문화가 확산되면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지구에 재화가 부족해 굶어 죽는 게 아니라, 한정된 사람들이 독점하기 때문에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교황님도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데, 가톨릭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적 사회주의’다. 경제 제도로서의 사회주의는 서로 나누자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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