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김선규 수사 공소 순례기

“공소는 마룻바닥이고 겸손한 미사 집전 의자가 있다. 성모상은 페인트칠을 했는데, 얼굴은 하지 않아서 얼굴만 검게 보인다. 흰 벽에 걸린 십자가와 제대 모두 안정적인 구도다. 분심 들지 않고 집중하게 한다. 하느님과 담판짓고 싶으면 여기가 좋겠다. 홀로 며칠간 피정할 수 있는 곳이다.” (다물도 공소에서)

“하나하나 손때 묻은 집기들이 정겹다. 이것들이 없어지거나 잊혀져 갈 때, 한 시대의 신앙생활도 잊혀지고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다. 신앙은 내가 존재함으로써 기려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라지기 전, 신앙은 내가 존재할 때 생활하는 것이다.” (홍도2구 공소에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김선규 수사가 꼬박 8개월간 520개 공소를 매일 순례하며 적은 기록의 일부다.

종신서원 20주년 기념으로 수도회가 준 1년의 안식월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 결정한 것은 자전거로 전국의 공소를 순례하는 것이었다. 올해 초 두 달간 캄보디아에 다녀온 뒤, 3월 1일 시작된 순례 여정은 다시 5월 중순부터 두 달간 캐나다 횡단을 다녀온 기간을 빼고 12월 9일까지 이어졌다.

제주도에서 민통선 공소까지 520개 공소, 거리로는 9324킬로미터다. 2017년 12월 현재 한국교회의 공소는 모두 559개. 처음에는 모든 공소를 들를 예정이었지만 중간에 인사발령이 나면서 아쉽게도 원주와 춘천교구의 공소를 들르지 못했다.

한국교회 통계자료로 보면, 1990년대만 해도 공소는 약 1900 곳이었다. 그 뒤로 해마다 급격히 줄어 2015년 말엔 740곳, 현재는 559곳이다. 김 수사가 순례하는 동안에도 숫자가 달라졌을 정도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김선규 수사는 공소의 여러 모습을 가감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 기록을 정리하지 못해, 공소 이름은 정확하지 않다며 사진을 보내 왔다. (사진 제공 = 김선규)

“너는 하느님을 믿느냐?”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여정

특별히 오래전부터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1년의 안식년을 받았을 때, 문득 자신이 나고, 자라고 살았던 그 공소생활의 기억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너는 하느님을 믿느냐?”라는 물음 하나와 공소 위치를 표시한 지도 한 페이지, 텐트 한 동과 함께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숙소는 공소 인근에 친 텐트, 아침과 저녁은 직접 장을 봐서 간단히 마련하고, 점심은 인근 식당을 이용했다.

“공소 출신이어서 그 정서가 지금도 남아 있어요. 배티 성지 전 백곡 공소였는데. 순교자들이 숨어 살던 마을이라 6.25전쟁도 모르던 외진 곳이었어요. 산속 오솔길을 따라 늘 공소회장이었던 아버지 심부름을 다녔죠. ‘공소 생활’이라는 말을 기록하면서도 계속 썼는데, 공소는 신앙생활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 그냥 삶 자체였어요. 집과 마을에서도 공소는 최우선이었고 학교에서도 공소 행사로 빠지는 것을 허락할 정도였죠.”

“너는 하느님을 믿느냐?”는 물음은 원론적이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물음이다. 김 수사는 논리와 이성으로 따져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 공소생활 시절 삶으로, 피부로 숨 쉬듯이 느꼈던 그런 하느님을 찾고 싶다는 깊은 바람이 담긴 질문이라고 했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신앙을 키워 낸 공소의 개인적 체험 외에도 공소는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고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 낸, 한국교회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나눔과 돌봄이 중심이었던 초기 교회공동체의 모습도 깃들었다.

공소가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에서 김 수사는 어떤 공소는 자신이 마지막 목격자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진으로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고 했다. 공소가 줄지어 있는 어느 곳에서는 하루에 10 곳을 들르기도 했고, 짧은 거리지만 산길을 온종일 넘어야 하는 곳은 하루에 한 곳도 빠듯했다.

공소에 들어서면 먼저 그날의 복음을 읽고, 묵상을 하고, 공소의 지난 세월과 현재 모습을 담아내고 느끼고 기억했다.

어느 공소에서는 오랜 창문으로 드는 햇빛만으로도 충만했고, 어느 공소에서는 어렵사리 만난 공소 신자로부터 매일 함께 모여 미사하고 조과와 만과를 바치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 수사는 “공소의 대부분은 양지바른 곳에 있고, 신자들이 스스로 짓고 가꾸던 곳이기 때문에 지금 비록 망가진 모습이라도 지난 세월 신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곳에서 살았는지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소에서 얻었던 따뜻한 하느님 체험으로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는 것, 어려울 때마다 그 기억으로 버텼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며, “그것은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모인 이들이 보여 준 따뜻한 인간미다. 그런 정서에 둘러싸여 산다는 것, 나눔과 돌봄의 삶이 바로 하느님나라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기도 했다. 허물어져도 더 이상 손볼 사람이 없는 공소도 그랬고, 오히려 규모가 커서 문이 잠긴 공소를 보고도 그랬다.

그는 몇몇 공소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 쓰이는 곳이 있었다면서, “누구나 들러서 쉬고, 차를 마시거나 묵상을 할 수 있도록 열어 두는 것이 새로운 공소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며, “마을마다 있는 노인정을 공소가 제공해도 좋을 것 같다. 비용 문제는 지자체와 연계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공소라는 공동체의 흐름을 체험하고, 이번에 공소의 4계절을 다시 보면서 그는 “아무리 누추한 곳이라도 단순하면서도 단정한 공소가 주는 따뜻함이 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번에 소임 이동을 하고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지만, 다녀온 공소의 기록을 정리할 예정이라고 했다. 원래 계획은 공소 순례와 사진전으로 안식년을 마칠 생각이었지만, 인사 발령으로 사진전은 뒤로 미뤄야 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후속작업을 할 생각이다.

순례 내내 김 수사의 숙소는 텐트였다. 공소 안에는 절대 텐트를 치지 않았고, 마을 어른들이 걱정할까 길가나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사진 제공 = 김선규)

520개 공소를 돌아 다시 제자리로, “결국 이 자리에서 모든 질문의 답을 얻어야”
공소, 그 마지막에 어떻게 존재하고 남을 것인가

김 수사는 공소 순례 중에 5월 중순부터 두 달간 동료 신부와 캐나다 횡단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캐나다 여행도 “너는 하느님을 믿느냐?”는 질문의 답을 찾는 연장이었다.

김 수사는, “캐나다에서 접한 대자연 앞에서 흔히 말하는 먼지와 같은 나의 존재를 보면서, 창조주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다시 돌아온 대도심에서는 인간관계 속에서 구세주 하느님을 찾게 되더라”며 웃었다. 그는 “내가 살던 자리, 인간관계 속에서도 창조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년의 여정을 지나 다시 돌아온 곳은 결국 제자리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모든 질문과 답은 있는 지금의 자리에서 체험하고 깨달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했다.

“공소의 흥망성쇠가 우리네 인생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젊고 생기 넘쳤던 시절의 공소는 가고, 앞으로 노년의 공소를 어떻게 남길 것인가, 소멸이 아니라 나이든 그 모습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지혜로운 어른처럼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종탑 하나만 남더라도, 이곳에 공소가 있었고, 삶이 있었고, 신앙이 있었다는.”

그는 공소마다 제각기 생겨난 이유와 세월이 있고 그것은 또한 우리 교회와 신앙의 역사라면서, “지금 공소를 어떻게 남길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남길 수 없을 것 같다”고 조금 쓸쓸하게 말했다.

텐트 속에서 잠시 휴식. (사진 제공 = 김선규)

다시 수도원 제자리로 돌아와 새로운 소임을 준비하는 그는, “지난 1년의 경험은 어떻게든 내 삶에 영향을 미칠 테지만, 어떤 영향일지 미리 작정하거나 결론지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그는, “앞으로 내게 오는 모든 것들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일 것 같다. 달라진 그 모습을 또 알아가야 할 것이다. 내 삶의 매 순간마다 지난 순례의 흔적이 살아날 것이고, 오래 더 진하게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순례에서 돌아온 8일 뒤, 김선규 수사는 새로 받은 소임을 위해 제주 피정센터 ‘면형의 집’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공소 순례에서 만난 것들을 정리하며 새롭게 마주할 시간이 흐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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