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 - 박병상]

밤에 켜 놓은 불빛들 때문에 지구는 전에 없이 환하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1970년대 초반, 마음 선한 고교 물리 교사는 승강기 타기를 방학숙제로 냈는데, 그 후 한 세대가 지나 어떤 대학 강사는 학생에게 깜깜절벽을 경험해 보라고 방학숙제로 냈다. 물론 숙제검사는 없었지만, 은하수를 경험하지 못한 학생에게 무리한 요구였는지 모른다. 우리의 밤은 지나치게 밝다.

이제 몽골 울란바토르 여행은 즐겁지 않다. 10년 전 칭기즈칸 공항을 빠져나가자마자 살짝 코를 자극하던 매캐한 냄새가 낮춤장치 없는 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다는 얘기에 답답한 마음이었는데, 그때 하늘에 별은 총총했다. 화력발전소가 4기로 늘어났다는 요즘, 울란바토르에 별은 뜨지 못한다. 매캐한 냄새는 자동차가 더 쏟아낸다.

울란바토르에서 30분 자동차로 이동하면 만나는 구릉지의 초원은 여전히 별이 총총하고 밤하늘은 우유를 뿌린 듯 은하수로 뒤덮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은하수는 보기 어려운 존재가 된 지 오래다. 밤이면 고요했던 1970년대 초는 달랐다. 별이 총총한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은하수가 포근했다. 요즘 천문대 주변은 별이 선명할까? 은하수도 포근할까? 사실 조명을 끄면 도시 하늘도 총총한 별을 선사할지 모른다. 은하수를 가로막는 미세먼지도 옅어질 텐데.

커피 전문점이 많아 그런가? 녹차 소비는 크게 줄었고, 보성 녹차 밭은 녹차 재배보다 입장객의 수입에 관심이 높은 듯한데, 잎이 떨어진 겨울철은 관광수입이 없다. 그게 아쉬웠을까? 2004년부터 ‘보성차밭 빛축제’를 연다며 언론에 보도자료를 돌린다. “은은한 차향 머금은 보성의 겨울밤을 찬란한 희망의 불빛으로 아름답게 수놓을 예정”이라고 홍보한다.

“차밭 빛 물결, 은하수 터널, 빛 산책로, 디지털 차나무, 차밭 파사드 등 아름다운 빛 조형물로 겨울밤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주말과 공휴일에는 파이어판타지, 가든판타지와 같은 화려한 빛과 불의 공연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겠다는데, 그렇게 겨울밤을 요란하게 밝히는 빛 축제가 전국 30여 곳에서 절찬리에 진행되는 중인 모양이다.

연말연시를 맞은 도시의 밤은 바쁘고 화려하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센터는 물론이고, 이름 있는 호텔과 건물 앞을 장식하는 조경수마다 작은 LED 전구가 두툼하다. 휘황찬란한 야경으로 행인들을 유혹할 책임을 지는 나무는 괜찮을까? LED라 열은 거의 없다지만, 밝기는 늘었다. 낮처럼 환한 조명 때문에 유방암 발생률이 24.4퍼센트 늘었다는 연구가 있는데, 여성만의 문제일 리 없다. 농촌 방범등 아래의 벼는 이삭을 제대로 달지 못한다는데, 우리가 모를 뿐, 이맘때 야경을 뒷받침하는 나무의 스트레스도 크겠지.

여름밤 근린공원은 시끄럽다. 조명을 받는 나무에서 자동차보다 더 크게 울어 대는 매미 때문인데, 그게 민원이 되었는지 어떤 아파트는 수종을 일제히 바꿨다. 나무도 생명인데, 죽인 것이지만 이듬해 매미는 여전했고 민원도 여전했다. 민원 중 빛에 문제를 제기한 경우는 없었는지 근린공원은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 청소년들의 일탈을 염려한다지만 그들의 일탈의 근본 원인은 조명과 무관한데.

지구는 전에 없이 환하다. 미국과 유럽만이 아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환하고 중남미의 주요 도시가 환하다. 덕분에 인구가 대폭 늘어난 지구촌은 더욱 바쁘다. 경쟁하느라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만큼 약 소비가 늘어난다. 경쟁에 밀릴까 불안한 사람들은 밤낮 없는 돈벌이에 초주검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비밀번호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비트코인이 탐탁지 않다. 빛 홍수에서 쉴 곳을 찾지 못한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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