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목사와 만나는 두번째 김정식 이야기 마당, 잔잔한 감동으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두번째로 개최한 <김정식과 함께 하는 이야기 마당>에는 이현주 목사가 초대되었다. 지난 6월 4일 오후 7시30분부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이 대담에서, 이현주 목사는 우리시대의 슬픔을 둘러싼 탁견을 편안하게 들려 주었다.      

이현주 목사는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감리교신학대학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64년 조선일보에 동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감리교신학대학에서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교수에게 신학과 인생을 배웠으며 무위당 장일순 선생과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15년간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누구 부탁이든 거절하지 않으려고 해

이현주 목사는 전날 광주에 다니러 갔다와서 피곤해서, 라는 핑계를 댔지만, 실상 아내와 맺은 약속 때문에 처음엔 이 대담을 뒤로 미룰까 생각했다는데, 충주에 있는 집에서 외출은 한 주일에 한 번으로 제한하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식 씨의 말마따나 '인간성이 좋아서' 이번 제의를 거절하지 못한 것일까. 그건 나름 혼자만의 약속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 신춘문예에 동화로 당선되었을 때, 그후 한 일 년 동안 원고청탁을 하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아무도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은 것이다. 이 사정을 듣고 어느 분이 부추겨서 잡지사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왔는데,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후론 사람들한테 어떤 청탁이 들어오면 양심에 가책이 되는 나쁜 일 빼고는 다 받아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진행을 맡은 김정식 씨가 성직자의 사회참여에 대해 물으며, 오체투지하는데 문규현 신부 등 천주교 신부와 수경 스님 등 불교 스님이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한 각을 이루는 개신교 목사로 참요할 의향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현주 목사는 "난 개신교라는 의식이 별로 없다. 오체투지에 가끔간 것은 거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다. 어디서든 내가 필요해서 요구하면 거절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다만 본인이 일 만들어 초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좋은 사이, 권정생

이현주 목사는 아동문학가 고 권정생 씨와 생전에 가까이 지냈는데, 한번은 생명평화결사 순례단이 조탑동 권 선생 집에 왔다고 한다. 이 때 권 선생 왈 "그렇게 걸으니 생명이 살아나더냐. 동물들이 놀라서 달아나지 않더냐. 그냥 가만 있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했다는데, 이현주 목사는 "저는 오체투지, 잘한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소신이 있어서 하는 것 아닌가. 권선생이 그리 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냥 농으로 트집을 잡은 모양이라는 것이다.

예전에 이현주 목사가 권 선생과 절집에 다니러 간 적이 있었을 때였다. 늘 하던 대로 이현주 목사가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인사 드리고 나오자 권선생 왈 "방금 법당에 들어간 사람들은 아래 냇가에 가서 손을 씻고 법당에 들어가던데...넌 그냥 들어갔다"는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엔 이렇게 씹어대는 재미도 있다는 말로 한바탕을 웃었다.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지난번 용산참사 현장에서 열린 드림예배에 대한 질문도 터져 나왔다. 당시 이현주 목사는 예배 중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사람들에게 고요히 절을 올리고 껴안아주었을 뿐이다. 

"왜 한마디도 하지 않았나요?"
"나도 이상하더라고. 말할 것은 속으로 준비해 갔는데...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김정식 씨는 이 참에 김민기가 불렀던 '저 부는 바람'이란 노래를 청중에게 들려주었다. 

"누가 보았을까
부는 바람을
아무도 보지 못 했지
저 부는 바람을

누가 들었을까
부는 바람을
아무도 듣지 못 했지
저 부는 바람을

누가 알았을까
아픈 이 마음을
아무도 알지 못 했지
이 아픈 마음을 

이현주 목사는 이 노래를 듣고 일제시대의 이용도 목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예수처럼 살다 예수처럼 죽기를 갈망하던 사람이었는데, 교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가 황해도 인근에서 집회할 때 하얀 두루마기를 입고 단상에 올라가 한참을 아무 말 못하고 서 있다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도들이 전부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 심정 이해 간다고 이현주 목사는 말했다.

드림실험교회와 성직자 

이번 드림실험교회 이야기가 나왔다. 이현주 목사가 교회당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예배하는 교회다. 드림교회는 '드리다'에서 가져온 말이라는데, 이현주 목사는 "저는 대안교회란 말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교회죠." 했다.

김정식 씨가 예수동아리교회가 지난 석탄일에 화계사에서 108배를 한 것에 대해 "너무 튀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소개하자, 이 목사는 "그분은 그렇게 보였나 보다"고 하면서 "드림교회 역시 그런 말 하는 사람 있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한다"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남들 눈에 튀어 보일 수 있겠으나, 튀어 보이려고 일부러 뭔가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문제라고 했다. 

"그럼 성직자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성직자는 일이나 직종에 딸린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가는 것이다. 농부도 성직자일 수 있고, 목사라도 성직자가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김정식 씨가 농으로 신부와 조폭이 닮은 점 다섯가지를 말했다. 검은 옷을 입고, 똘마니를 몰고 다니며, 자기 구역이 있고,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말하고, 술마시고 밥 먹을 때 돈을 안 낸다는 것이다. 한번은 신부, 스님, 목사가 식당에 갔는데 서로 눈치를 보는 바람에 결국 식당주인이 밥값을 냈다고 했다. 그러자 이현주 목사도 질세라 한마디 거들었다.

종교인 모임에서 랍비는 캐딜락 타고 오고, 신부는 택시 타고 오고, 목사는 버스 타고 왔단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이야기하는 중에 나온 말. 헌금 쓰는 방법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개신교 목사는 원을 그리고 돈을 던져서 금 안에 들어간 돈만 먹는다고 했다. 신부는 줄을 긋고 가운데 서서 돈을 던져 왼쪽에 떨어진 놈만 먹는다고 했다. 랍비는 아무 금도 안 긋고 하늘로 동전을 던지며 말한다. "하느님, 당신이 필요한 만큼만 잡으시고 나머지는 제게 주세요."

가톨릭과 맺은 인연 

이현주 목사가 특별히 가톨릭교회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건 의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팔자라고 해야 하나. 천주교 신부 몇 분을 알고 지내다 보니 <생활성서>에 연결되고, 천주교 출판사에서 책을 내다 보니 그리 된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이현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천주교 비판 한마디도 안 해요. 실력도 안 되고, 하고 싶지도 않아요. 언젠가 고명한 성철 스님이 기독교 비판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건 기독교의 한 면을 비판한 거지, 기독교 자체는 아닌 거죠.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틀렸다 어쨌다 이야기하는 건 잘못이라고 봐요. 우리가 예수 이야기만 하면 천주교고 개신교 문제가 안되죠."
"그럼 내가 비판하지 않으면 남에게 비판받지 않는다고 해도 될까요?"
"성경에 그렇게 나오지만, 살아보니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난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도 나를 비판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어느 개그맨 말대로 '그건  네 생각이고...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하느님 '엄마'라고 불러야  

이현주 목사는, 하느님이 아버지라면 세상 사람 누구나 형이요 누나라고 말한다. 신앙 안에서는 "엄마도 누님"이라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온갖 사물과 짐승들도 형제요 자매라고 불러듯이 말이다. 언젠가 교리시간에 "예수는 누구냐?'는 질문에 "내 오빠"라고 답한 사람이 있단다. 아버지가 같은 분이니 예수도 내 오빠라는 것이다. 우린 몸뚱이를 갖고 있어 구분하지만, 그게 '나'가 아니라 물 담은 컵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린 그 물처럼 영적으로는 모두 한 형제자매라는 것이다.

이야기는 하느님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로 계속 번져갔다. 어느 신부에게 한 학생이 어릴 적 상처가 있었는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고 하자, 그 신부가 "그럼 오빠라 부르라"고 했단다. 이때 이현주 목사는 "나라면 하느님 엄마라고 부르지"하였다.

김정식 씨는 변선환 목사 유고시 이현주 목사가 조시를 썼는데, 그때 말마디마다 '어머니이신 하느님'이라고 했던 걸 기억해냈다. 그러자 이현주 목사는 "난 가끔 '엄마'라고 한다. 그러면 하느님이 더 가깝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그걸 넘어서 있는 분인데, 아마 성경이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온 것이라 하느님을 아버지라 불렀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란 말 안에는 이미 어머니를 포함하고 있다. 앞으로는 점점 하느님을 어머니라 부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부터 한번씩 '하느님 어머니'라고 불러보자"고 했다.

슬픔의 문, 감성이 회복되어야

김정식 씨는 삼척성당에서 사순특강을 하러 갔다가 이현주 목사를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 이 목사가 직접 적어준 '두물머리에서'라는 시를 소개했다. 이현주 목사는 자신도 모르고 있었다면서.. 나중에는 김정식 씨를 끌어안았다.

바다 그리워 푸른 바다 그리워
남한강은 남에서 흐르고
북한강은 북에서 흐르다가
흐르다가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북한 강을 만나고
북한강은 남한강을 만나는데
아아, 두물머리 너른 들에서
남한강은 남을 버리고
북한강은 북을 버리고
한강 되어 흐르는데
한강으로 흐르는데

-두물머리에서 부르는 노래

이어 언젠가 이현주 목사 시에서 "슬픔은 달랠 수 있는 슬픔과 달랠 수 없는 슬픔이 있다고 하셨는데, 슈베르트의 곡이 대개 슬프다고 한다. 슈베르트는 밤마다 눈을 감으면서 내일 아침엔 눈을 뜨지 못하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모양이다. 그러면서 슈베르트는 슬픔은 정화된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내가 부른 '바람속의 주' 등을 작시한 유경환 씨 말로는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장르는 노래밖에 없다'고 했다"고 말하면서, 이현주 목사의 '슬픔의 문'이란 시를 가지고 자신이 직접 작곡한 노래를 영상과 함께 들려 주었다.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지 슬픔의 문을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눈물 뒤에 침묵 뒤에 노래 뒤에
다시 영원한 아픔의 노래

들어가 보지 못한 사람은
알 수가 없지
-슬픔의 문(이현주 시/김정식 곡)

사람이 슬프면 눈물을 흘리고, 더 슬프면 침묵하고, 정말 슬프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다.

감성과 동화와 예술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현주 목사는 자신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좀 감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동화를 쓰지 못한 지 근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최근에 와서 다시 써보고 있다고 전했다. 늘 마음은 있는데 잘 안 된다는 것이다.

김정식 씨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을 때 40만 명이 조문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엔 400만 명이 조문했다는데 모두 정치인들이라고 말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전 국민적 추모를 받는 문학가나 예술가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이제 예술인을 애도할만한 국민들의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민중가요도 모두 군가풍(軍歌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의 경우에 혁명 때 나온 노래 중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게 '기러기' 같은 노래라면서 부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몸으로 하느님 깨닫는 게 중요 

이번엔 김정식 씨가 임락경 목사의 세째딸 들래의 결혼식에서 한 이현주 목사의 축사를 가져왔다. 그 날 이 목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한 번 배워보라고 이 땅에 보냈다”며 “결혼과 가정은 그런 사랑을 배우는 참 좋은 학교”라고 설교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사랑을 하면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고, 사랑이 없으면 지옥”이라며 “사랑이라는 감옥에 가두지도 말고, 자유라는 광야에 내버리지도 말고, 이해는 깊게 하고, 배려는 자상히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정식 씨는 이어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해 교회에서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자꾸 강조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 하느님 자체는 살고 죽는 것과 무관한데 사람들이 불안하니까 자꾸 '살아계신'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하느님을 깨달음의 차원에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현주 목사는 "하느님을 깨닫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하는 것"이라면서 "아, 정말이네. 하고 그 다음엔 말을못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맞네. 엇말 아니네. 살아보니 참말이네"하고 느기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하느님에 대해서 백날 논증해 봐야 입만 아프다는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도 평생 그걸 하느라 보냈는데 말년에는 침묵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써온 게 지푸라기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말년에 아퀴나스도 참 하느님을 그제야 깨달은 것 같다" 면서 이현주 목사는 "깨달음을 얻으면 말이 없어지고, 다만 가사 없는 소리로 나올 수는 있다"고 했다. 소리도 일종의 침묵이라는 것이다.

이어 "어둠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말도 어둠과 빛이 따로 있어서 충돌하는 게 아니라, 어둠이란 빛이 없는 상태이므로 없는 것과 있는 게 싸울 수 없다고 말한다. 이현주 목사는 개신교 찬송가를 훑어보면 거의 다 어둠과 싸워 승리한다는 이야긴데,  "어둠과 죽음, 지옥과 마귀는 그저 없는 것"이며 "선의 부재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일을 하면 그뿐이라고 말한다. 악과 싸우려 하지 말고 선을 창조하라는 전갈이다. 그래서 "이명박은 국민을 부엉이바위로 몰지 말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아직도 그 사람에게 뭘 기대하느냐"고 물었다. 다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스승으로 모시고 따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내게 스승이 계시니 걱정 없다. 그분이 가르쳐주실 테니, 우린 그대로 해보자"고 제안한다. "순수하고 순박하게, 머리를 좀 비우고 가슴을 좀 알아주면서...그러다 보면 새로운 기독교의 모습이 나올 것"이라고 한다.

이미 충분하다, 드리며 살자

이현주 목사는 "우리는 이미 충분히 다 받았으니 드리며 살자"고 한다. 무너져가는 집 버려두고 새 집을 짓는다는 마음으로 살자면서, "한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다른 나라가 서고 있다는 뜻"이라며 이명박 정권에게 기대하지 말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그 나라가 이미 우리 안에서 지금여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마치는 노래로 김정식 씨는 '혀 짤린 하나님'을 청중과 함께 불렀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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