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추모열기 어떻게 봐야 하나?" /정수근

H형, 안녕하십니까?
그간 별고 없었는지요?
오랜만에 안부를 여쭙습니다.

카페 게시판에 올린 제 졸문 “pd수첩을 보니, 노무현의 슬픔이 보인다”가 계기가 되어, 오랜만에 이렇게라도 안부 인사를 드리면서 인간구실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우선 반갑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형의 진정어린 답신은 여러 생각들을 해볼 수 있게 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너무 과도한(?) 추모열기 속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면서 제 감정을 한번 되돌아볼 수가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안부편지를 한통 보내면서 그 생각들을 한번 나누어볼까 합니다.

저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노무현을 비판해왔던 한 사람으로서 지금의 이런 추모열기가 너무 비이성적인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가진 적도 없지 않습니다. 마치 몇해 전의 ‘황우석 사태’에서처럼 사기꾼인 그와 언론이 만들어낸 이상한 애국심이란 포장에 놀아난 우리사회 전체가 큰 홍역을 치룬 바로 그때처럼 말입니다. 그때도 그의 비윤리적인 실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하나 같이 묻혀버렸지요.

그런 것처럼 비교 대상으로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언론에 의한 과도한 이미지 조장은 늘 경계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노무현의 비극적 죽음을 불러온 것에는 언론의 책임 또한 적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까요.

노무현에 대한 변명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우를 떠나 이 추모의 열기 속으로 사람들이 거세게 동참하는 연유는 무엇일까요? 노무현과 그동안 치열하게 싸워온 진보진영의 수많은 인사들과 논객들이 형이 이야기하는 노무현의 그 과(過)를 몰라서, 잊어버려서 그런 것일까요?

물론 각론의 여러 세목에서 그가 보여준 것은 실망감과 배신감 이런 것을 불러온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완성이란 측면에서 그가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이행단계의 큰 징검다리가 되었다는 점을 공히 인정하고 높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인 그가 어떻게 비주류 정치인이 될 수 있느냐고 하시지만, 그의 세력이란 것이 얼마였던가요? 대통령이라지만 정치는 혼자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역주의에 기반한 민주당 일부 세력과 이제 정계에 갓 입문한 신출내기 참모들 속에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참여정부 초기 그의 경제수석이었던 이정우 교수에 따르면 말도 안되는 새만금개발계획 같은 것도 많은 반대 의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각 안의 성장주의자들에게 밀렸다는 표현을 하더군요.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선택을 중시하는 그가 어떤 선택을 했을지 이해되지 않을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소위 ‘진보’나 ‘생태주의’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기준을 놓고 그 기준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비난을 한 지점이 없지 않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인 그가 최대한 갈 수 있는 지점이 서유럽의 ‘사민주의’의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을 때, 진보와 생태주의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가 오지 못한다고 해서 과연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를 중도주의자(어떤 분은 심지어 보수주의자라고까지 하더군요)라는 잣대로 볼 때 그의 여러 세부정책은 크게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진보’인양 규정짓고 그를 우리들의 입맛으로 해석하고 그를 평가한 지점이 있지 않습니까?

비주류에다, 신출내기 참모들, 검찰과 보수언론과의 전쟁 등 무수한 장벽들이 그에겐 가로놓여 있었던 것인데 그때 우리는 애써 그것들을 장벽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부푼 기대만 가진 채 그를 비난하기에 바빴는지도 모릅니다.

▲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 앞에 지켜서 있는 경찰들과 MBC취재차량.(사진: 한상봉)

성숙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그런데 그런 그가 죽었습니다. 스스로 생을 비극적으로 마감을 했지만 그것은 정치적 타살임을 세상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수백만이 넘는 자발적 추모의 저 물결은 그런 그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의 발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죽으면서 우리에게 남겨준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성숙된 민주주의의 열망이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가라않지 않는 추모열기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땅의 시민들이 노무현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성숙된 민주주의인 것입니다.

MB정권 하에서의 역행하는 민주주의라는 배를 되돌려 놓으려는 열망이지요. 제가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pd수첩을 통해 본 이 정권의 작태는 군사독재시절의 그것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말도 안되는 현실이 노무현의 추모열기를 식을 줄 모르게 하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노무현에 대한 이 과도한(?) 추모열기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 바로 이명박 정권이지요.

작년 ‘촛불’ 이후 국민들과 소통하겠다고 하고선 도리어 더 높은 철옹성을 둘러치고 있고, 국민들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다루는 이 정권, 그리고 용산에서 자국민을 불태워 죽여 놓고도 넉달이 지난 아직까지 그들의 억울한 죽음과 유족들의 슬픔을 방치하는 이 정권 하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그 상식적인 세상이었지요.

현실이 이러한데 지금 사람들에게 지난 노무현 정부의 과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도리어 어불성설이고, 우습게 들릴 수 있는 것이지요. 지금은 오히려 노무현에 대한 추모열기가 더욱 거세지고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열기란 다름 아니라 민주주의를 향한,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열망이기에 그 열기에 편승해서 이 오만한 정권을 심판을 하고 싶은 열망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열기가 오히려 더 증폭되길 바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오만한 정권이 국민 앞에 그리고 망자 앞에 석고대죄하는 그런 시기가 온 연후에 노무현의 과를 논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노무현의 과에 대한 비판은 거창하게 정세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나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지요.

그가 저 석양 너머로 날아간 지 열흘 남짓한 지금, 사람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것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따뜻한 감성인가 봅니다. 그래서 그를 이성이 아니라 가슴으로 추모하는 물결이 계속해서 일고 있는 것일 겁니다.
다시 한번 고인의 명복을 빌어봅니다.

제가 생각하는 지점은 여기까지입니다.
혹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고견을 들려주시길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정수근과 H형과 주고받은 글(전문)

-PD수첩을 보니 ‘노무현의 슬픔’이 보인다 /정수근

지난 참여정부를 뒤이은 이 MB정부 들어 나타난 변화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변화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다. 국민이면 누구나가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지난 참여정부까지가 마지노선이었던 모양이다.

이 MB정권은, 지난 참여정부가 놓아버렸던 그 ‘권위’란 것을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인가? 그들은 지난 참여정부가 국민들에게 너무나 많은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그래서 버르장머리 없는 국민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말 잘 듣는 '모범시민'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사탄의 무리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그들만의 하나님'의 크나큰 은혜의 장으로 불러갈 수 있도록 사탄의 무리에서 격리시키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세계로 인도해야겠다는 사명을 갖고 있는 셈인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의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그들의 노력이 눈물겹다. 눈물겹다 못해서 안쓰럽다.

지금 그들이 지하벙커에서 밤잠도 못 자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성난 민심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저 민심이 폭동으로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좌불안석, 초조불안해 하고 있을 저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저렇게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싶은 것인가? 저토록 권력의 단물이란 것이 좋은 것이란 말인가? 이미 국민들의 민심은 떠났는지 모르는데, 아니 국민들과 그들 스스로가 저렇게 등을 지고 있는데 무슨 소통이고 국민통합이 가능한가 말이다. 노무현이 죽어가면서까지 바랐던, 노무현의 유산 중에 하나인 국민통합, 사회통합은 애시당초 저들에겐 먹혀들어갈 발상이 아니었다.

이 개명한 21세기에도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서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인간들이니 말이다. 어디에다 레드딱지를 붙여서 '마녀사냥'을 해볼까 하는 궁리를 지하벙커 한쪽에선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제 방영된 MBC PD수첩 “봉쇄된 광장, 연행되는 인권”편 보고 나니 이런 생각들이 마구 올라온다. 참으로 너무 한심하단 생각이 앞을 가린다. 관광 온 일본인마저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연행하는 이 미친 정부는 과연 국민들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참 말이 안 나온다.

집회의 자유를 허하라! 그래서 국민의 요구가 진정 무엇인지를 경청하며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라!
누른다고 가만히 있고 고분고분할 국민들이 아니다.

수많은 열사들의 희생 위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수준은 저 산꼭대기에 있는데, 청와대에 앉아서 국민들 보고 내려오라고 손가락질만하고 있는 정부, 허긴 최근에는 그 산에다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된다는 발상까지 쉽게 하고 있으니(?) 도대체 이 오만한 정권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pd수첩을 보고난 밤 공연히 우울하다. 저 철옹성 같은 벽의 깜깜함,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깜깜함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진다. ( 이 깜깜함은 고인이 이명박에게 보낸 서신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인은 가고 이제 저 국민들 앞에 놓여있는 깜깜한 철옹성을 무너트리는 일은 우리들의 몫으로 온전히 남아있다. 저 장벽을 깨부수지 않으면 우리들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여러가지 심경이 교차하는 밤이다.


PD수첩의 오늘 방송은 “역시 PD수첩답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집회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고, 위험수위가 극도에 이른 공권력의 부당한 행태를 그대로 공개했다. 그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한다. 아무리 이 정권의 탄압이 계속된다 해도 ‘눈을 가진’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결코 그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PD 수첩 파이팅!!!
PD수첩 바로가기 - http://www.imbc.com/broad/tv/culture/pd/vod/index.html

-H형의 댓글

노무현에 대해 인간적인 애도를 표하는 일이야 인지상정인지라 더 말씀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만,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애써 구별하려는 시도는 본의 아니게 사태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을 비판하는 사람들조차 쉽게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인간 노무현'은 훌륭했는데, 여러 여건상(국민들의 수준, 정치환경 등등) 노무현의 개혁정치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한계에 부딪혔다는 것인데요... 저는 이런 생각에 결코 동의 할 수가 없네요.

노무현이 보여준 현실정치인으로서의 긍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인정하지만, 그가 지니고 있었던 근본적인 한계 또한 얼버무리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그의 사상과 가치관의 한계가 결국 동북아허브, 혁신도시, 삼성 편들기, 천성산, 노동자, 농민시위폭력진압, 평택미군기지, FTA 등등....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반민중적 정책으로 귀결한 것입니다. 그는 '진정성'이 있었는데, 그 '진정성'을 몰라 준 국민들 때문에 실패했다고 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참 가관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무능해서인지 저는 앞서 열거한 그러한 정책 그 어느 곳에서도 노무현의 진정성을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시민들은 기성정치현실에서 악전고투하던 한 정치인을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탄핵의 위기에서도 그를 구원한 것은 시민들의 힘이었습니다. 할 만큼 한 것입니다. 진정한 '진정성'을 발휘했어야 하지 않았나요? 천류불식님께서는 인간노무현과 한미FTA가 매치되지 않으신다 하셨는데, 한미FTA는 수구들에 의해 코너에 몰린 노무현이 자구적으로 선택한 정책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고안하고 추진해서 수구꼴통들에게조차 칭찬을 받은 정책입니다. 한미FTA를 추진한 노무현과 인간노무현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가 철저한 비주류였나요? 일국의 대통령까지 한 사람을 철저한 비주류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노무현의 죽음을 애도했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애도는 그가 남긴 유산을 제대로 이해하며 평가하는 데서 출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功만이 아닙니다. 過도 그가 우리에게 남긴 소중한 유산입니다. 죽음 앞에선 숙연해지고 過를 들추지 않아야 하는 게 도리입니다만, 그는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었고 우리의 지나간 역사의 한 페이지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음이 아프겠지만 그가 남긴 過를 들추어 개선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애도가 아닌 찬양의 배설을 뿌리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넘쳐납니다. 그의 죽음을 욕되게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에 대한 진정한 애도가 아니라 자기위안에 넘치는 과잉감정과 인터넷이나 TV가 만들어내는 무수한 상징조작 속에서 '진짜 노무현'을 건져내야 한다고 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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