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 122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는 대북화해협력의 시대가 끝나고, 일촉즉발의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면서 새롭게 수립된 대북정책은 냉전 시대 대결구도의 이해에 기초해 있고, 거기에 대북 무시정책이 더해지면서 대화조차 없는 대결시대가 되었습니다. 평화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이겨야 한다는 대결의 논리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평화를 위해서 일할 사람을 찾게 되듯이, 평화에 대한 두려움을 멀리하는 것에서 평화가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평화를 두려워하는 당신들에게도 평화가 함께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화를 위해 작지만 큰 걸음을 희망합니다.>
남녘땅에서 갈수 있는 순례길은 이제 임진각 망배단까지 약 6km. 순례단은 지난 2008년 9월 지리산 노고단 하악단을 출발하여, 2009년 3월 신원사 중악단을 경유하고, 올 6월 15일 묘향산 보현사 상악단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천제를 거행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수차 말씀드린바와 같이 상악단 중악단 하악단은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이 국가적 재난과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마음과 역량을 하나로 모아 통합하고 나아갈 바를 하늘에 묻고 고하는 천제를 거행하던 장소입니다.

이에 대립과 갈등을 넘어 희망을 찾기 위해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 순례단은 올 6월 묘향산 천제를 통해 순례 전체를 마무리할 계획을 수립하고 공지한바 있습니다. 이는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 것은 대화와 합의조차 없는 대결의 시대가 아니라,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을 경주마식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접하며 한반도 운명공동체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진정으로 작은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부터 실천적으로 교류해야 할 시기라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평화를 두려워하며 미사일과 대포를 사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마주서서 평화를 기원하는 작은 인사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순례단은 올 3월 공주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출발 이후 묘향산 천제에 대한 희망을 북측에 전달하였고, 마침내 북녘에서는 최근 오체투지 순례단의 묘향산 오체투지 순례 및 천제에 협조하겠다며 순례단 27명에 대해 초청장을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묘향산 오체투지 순례 및 천제 거행과 관련하여 온전히 남녘땅에서 결정할 일이 남았습니다. 순례단은 지난 6월 1일(월) 통일부에 방북신청을 한 상태입니다. 순례단은 통일부와의 면담 자리에서, 지금과 같은 남과 북의 긴장도를 낮추고 평화를 위한 민간교류협력의 적극적 확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순례단 역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작은 단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습니다. 한반도 생명공동체에 평화의 씨앗을 심는 것은 복잡한 정치논리가 아니라, 서로를 이기겠다는 대결과 증오의 논리가 아니라, 아주 여린 실천적인 평화의 마음을 교환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남녘땅에서의 결정만 남았습니다. 순례단은 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전쟁불사 논리가 아니라면, 신뢰회복 차원의 인도적 종교적 경제적 민간교류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정책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 믿기에, 순례단은 이제 정부의 결정을 지켜보겠습니다. 부디 묘향산 기도순례 및 천제를 통해 평화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발걸음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시민여러분께서 함께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이고~ 삭신이 쑤시네요>
문산 시내 초입에서 시작한 순례길. 통일공원에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순례 마무리는 여우고개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제 여기 여우고개를 넘어 하루 일정을 진행하면 2009년 순례 마무리 행사가 진행되는 임진각 망배단을 마주하게 됩니다.

3일 남은 일정. 하지만 여전히 하루의 출발은 새롭기만 하고, 하루 하루 만나는 순례자들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오늘은 숙소에서 나서는 첫 발걸음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순례단은 현재 파주시 교하지역 한 수녀원에 머물고 있습니다. 수녀원을 나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모두 공사판입니다. 건너편 아파트 단지 신축공사부터 시작하여 수녀원을 둘러싸고 있는 곳은 온통 공사판이더군요. 신도시 공사를 하면서 산을 하나 허물고 그 곳에는 신축 건물들과 도로가 놓일 계획이라 합니다.

옛말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지만, 요즘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강산에 적응하기도 힘든 세상입니다. 농지였던 곳을 택지로 개발하면 무수한 개발이익을 남기는데, 언론보도를 한국토지공사는 여기 파주교하 지구에서 1조 249억원을 들여 택지를 조성해서, 1조2,492억원에 팔아 2,243억원의 이익을 취했다고 합니다. 이익률이 17.9%였다고 하네요. 참 많이 남는 땅 장사를 하신 모양입니다. 요즘 가장 유망한 산업이 땅 파고 시멘트 바르고 건설하고 부수는 사업이라 하더군요.

공사장을 지나 아침 출근 차량에 떠밀려 순례 장소에 도착하니 어제의 악동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기다립니다. 이 꼬마들 참 재미있습니다. "어제 좋았어?"라고 묻는 진행팀의 질문에, 어제 신부님의 억지에 끌려왔다 대답한 개구쟁이 답변이 재미있습니다. "아이고, 삭신이 쑤시네요". 몸의 근육과 뼈마디를 뜻하는 '삭신'이라는 말이 여기서 사용될 줄 몰랐습니다. "오늘은 삭신이 쑤셔서 반배만 할려구요"

삭신이 쑤신다고 말한 꼬마. 어제도 유달리 좋은 말재주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시하더니, 오늘도 아침부터 참가자들을 유쾌하게 합니다. 함께 참여한 하늘씨앗살이학교 교장 신부님을 비롯하여 학생들은 일직부터 출발장소에 도착하여, 오체투지 절에 대해 이야기하고 몸에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은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합니다.

생기 넘치는 학생들 덕분에 오전 순례 역시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변 풍경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북녘과 가까운 지역이다 보니 곳곳에 군사 관련 시설들이 보입니다. 오늘 순례단이 지난 도로에는 이중으로 육중한 시설의 전차 방어 시설이 있더군요. 큰 광고판으로 가려져 있지만, 그곳을 지나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였습니다. 이런 시설로 시대의 평화가 만들어진다면, 전 국토를 시설로 도배라도 하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군사 시설과 설치물보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신뢰의 말 한마디와 몸짓 하나가 더 필요한 시대일 것입니다.

순례단의 오전 일정은 문산 초입에 있는 통일공원에 도착하여 마무리되었습니다.

<내가 먹고 살 만큼 정도의 소유, 그것이 진정한 행복>
오늘 점심은 천주교교정사목위원회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천주교교정사목위원회의 이영우 신부님과 관계자분들은 순례길 중반부터 순례단에 자주 참여하셨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맛난 음식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오늘은 무려 9가지 종류의 나물이 들어가 있는 비빔밥을 준비하셨는데, 맛을 본 참가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너무 맛있이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교정사목위원회의 최형규 신부님은 “제가 신앙인이라기보다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동화되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게 되었다”고 하시고 “오체투지 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분들을 위해 더 정성껏 기도 했다”고 합니다.

최 신부님은 “모든 문제는 생명경시현상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 정부의 소통 부재 등도 생명에 대한 존재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하시고 “정치인들도 말은 공인이지만 ,생명에 대한 경외감은 없고 개인적 삶에서의 권력, 명예를 위해 일하고 있다. 정말 오체투지를 해야 할 사람들은 정치인이다”고 꼬집어 말씀하시더군요. 최 신부님은 “키가 큰 사람, 작은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모두 함께 발맞추어 갈 때 진정한 사람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순례길은 다양한 사람들이 단 하나의 지심(至心)으로 모여 그물코처럼 엮어서 사람의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점심식사 이후 통일공원을 출발한 순례단은 문산역을 지나 여우고개에 이르는 구간을 진행하였습니다. 오늘도 역시 뙤약볕 더위입니다. 피부가 따가울 정도의 더위가 몸을 관통하고, 발 갈음 한발 두발 내딛는 사이 콧등과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갑니다. 더위에 입은 반팔은 아스팔트 열기에는 무용지물이고, 무릎보호대를 팔에 둘러보아도 열기를 막기 어렵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그늘 한줌에 몸을 맡기고 시원한 생수로 목을 축여봅니다. 혹여 바람 한줄기 부렁와 몸을 감싸주면 이보다 좋을 것이 없습니다. 아침부터 참여한 학생들이 오늘 얼마의 거리가 남았는지 쉬는 시간마다 확인하는데, 덥다고 멈출 수 없는 순례길입니다.

파주에서 오신 서명석 님은 “이 나라가 잘못 되 가고 있는데, 오체투지는 바르게 가야 한다는 의미로 알고 있다. 그래서 적극 뜻에 도모하고자 왔다”고 합니다. 서 선생님은 “이 나라가 잘못 가고 있다는 것은 첫째, 화합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책에는 크게 찬성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실 이 문제는 정치적 보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하시고 “둘째, 어쩌면 이 나라의 총체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4대강 하천정비사업을 말하고 싶다.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에 왜 운하가 필요한지... 굽이치는 강에 물길을 내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하십니다. 또한 “사람의 길이란 남을 도와주고 봉사하면서 사는 것이고, 생명의 길이란 이웃과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것이며, 평화의 길이란 욕심을 버리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고 하십니다.

멀리 백령도에서도 오체투지 순례길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오신 분들이 있습니다. 백령도의 몽운사의 지명 스님과 신도들이 오후 일정에 함께 하였는데, 지명 스님은 "순례 취지에 충분히 공감한다. 신도님들도 이번 계기로 취지에 공감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왔다.”고 합니다. 스님은 "이 시대는 아픔이 많다. 남북분단, 자본주의 체제, 물질만능주의 등 인간의 본성은 황폐해지고 있다. 특히 정치는 시대착오적 정권이 자행하는 민주독재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고 합니다. 스님은 “내 스스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구조로 궁극 이기심이 생기고 있습니다. 항상 배려, 존중하는 마음을 간직하기를 바란다.”고 하십니다.

하루 하루가 지나면서 더위의 강도가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순례길이 한여름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불볕더위에도 시민의 그림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파하는 사회적 약자의 그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뭇 생명의 아픔을 달래주는 바람 한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갈라진 남과 북의 오작교가 되어 평화를 전해주는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희망 한줌 없다 시름하는 국민의 마음에 작은 촛불이 되겠습니다.

더위에 지치듯이 마음 돌아보는 일이 어렵습니다. 하늘보다 높고 광활한 대지보다 넓고 바다보다 깊은 것이 마음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마음 돌아보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선인들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이 마음의 산물)라는 가르침 따라 세상을 바라 보기 앞서 내 마음을 먼저 살펴봅니다.

'발바닥 아래 있는 지렁이 밑에 위치해야 하심이 되며,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다'는 말씀도, "행복(幸, 다행 행 福 복복), 이중 복(福)을 풀이하면 복(福) = 示(보일시) + 一(한 일) + 口(입구) + 田(밭전)이다. 즉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밭 그것이 보인다. 이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즉 내가 먹고 살 만큼 정도의 소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뜻이다'는 참가자의 귀한 말씀들이 오래 오래 여운으로 남는 하루였습니다.

흐르는 땀방울과 힘겨운 숨소리 들리지만, 넓디 넓은 마음은 평온해집니다. 하루 평화로운 순례길이었는지 묻는 마무리 질문에 '너무 더워서 평화롭지 못했다. 죽을뻔 했다'는 꼬마들의 씩씩한 답변으로 하루가 무사히 마무리되었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6월 05일(금) : 여우고개사거리 200m 전 - 운천역 - 임진강역 500m 전(운천교 부근)
● 6월 06일(토) : 임진강역 500m 전(운천교 부근) - 임진각 망배단 - 2009년 마무리 회향행사

* 공지 : 2009년 순례 마무리 행사 : 6월 6일(토) 오후 2시 임진각 망배단(우의. 모자 지참 요청)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6. 04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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