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엔 가난하고 배고프고 헐벗은 이들이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의 결핍은 대개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의 결과로 생긴다. 계층별, 계급별 차별의 요소 안에서,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 안에서, 그리고 정치적, 군사적 폭력 안에서 차별과 불평등은 양산된다. 

이런 결핍은 ‘사회적 관계’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듯하다.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결핍’의 다양한 형태, 곧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은 ‘필요한 것’을 얻어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대변한다. 예컨대, 헐벗은 이를 가리키는 ’굼노스’는 옷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옷을 필요로 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언가 필요함을 갈구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 이것은 종교적 제도나 가르침을 뛰어넘는 인류 보편적 삶의 원리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존재로서 ‘알맞은 협력자’로 살도록 불리움을 받았으나, 그 불리움을 도외시한 순간 제 참 모습을 잃고 스스로를 유폐하기에 이른다.(창세 2,18; 3,1-8)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34절) 그 나라는 사회 속 결핍의 자리를 민감하게 살펴보고, 결핍을 나눔으로 해소하는 이들에게 열려져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주님, 주님’ 외치면서 제 신앙생활과 제 삶의 안온함에 치중한 채, 성당 밖,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결핍과 차별, 그리고 갈등의 자리에 침묵으로 방관한다면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는 주어지지 않는다. 세상 어디엔가 무엇이 모자라고 무엇이 필요한지 되묻고 그 결핍과 필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책임을 통감하는 자들이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를 얻어 누린다. 

사실 오랫동안 오늘 복음에 나타나는 목마르고, 헐벗고, 배고픈 이들을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로 이해해 왔다. 고쳐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을 잘 챙겨 주는 이가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는다는 논리로 오늘 복음을 이해해 왔다. 그러나 ‘가장 작은 이’들로 대변되는 ‘고통받는 이’들을 두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호교론적 연민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복음의 초점은 ‘고통받는 이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나눔과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있다. 실천이 의인을 만들고 의인은 제도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한 이들만이 아니라 주님을 모르더라도 고통에 함께 동참하는 이들, 고통에 중립을 지킬 수 없어 자유로이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가르친다. 

하느님의 가르침은 본디 ‘모든 인간의 조화와 연대’로 집중된다.(창세 1장 참조) 조화, 배려, 화합, 평화는 제 눈에 필요하고, 정당하다는 것을 챙기고 외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제 눈에 들지 않더라도, 그래서 낯설더라도(오늘 복음에서 ‘나그네’로 번역된 크세노스는 사회-정치적으로 낯선 그룹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사회-정치적 그룹'을 나그네로 맞아들여야 한다는 것, 중요하다) 함께하겠다는 형제애적 관계의 회복에서 가능하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신다고 고백하는 오늘, 낯설고 불편하고, 때론 모질게 아픈 관계가 있다면,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는 일로 하루를 마감해도 좋으리라. 우린 부족하고 부족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니까.  

박병규 신부(요한 보스코)

대구대교구 성서사도직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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