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121일차 생명평화 오체투지 순례

오늘 일정을 끝으로 이제 남녘땅에서의 남아있는 순례길은 10km 남짓 남았습니다. 지리산을 출발한 이후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본 우리 사회의 모습은 다사다난하다는 말밖에 없을 듯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다워지기 위해서는 생명의 가치가 온전히 지켜져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였습니다.

<아니 누가 이런 것 만들었어요?>

어제 저녁에 인터넷을 이용하여 날씨를 알아보던 진행팀원의 얼굴 표정이 어둡습니다. “왜 이리 날씨가 오락가락하나?”하면서 한숨을 쉬더군요. 얼마 남지 않은 순례길에 비소식이 2번이나 있다면서 준비를 잘 해야 하겠다고 하더군요. 아침부터 비님이 오신다기에 그동안 순례단이 머물렀던 일산동성당을 출발하기에 앞서 이런 저런 준비를 부지런히 하지만, 하늘은 흐리기만 하여 혹여나 했습니다.

하지만 순례 출발장소로 이동하는 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군요. 비가오는 날의 순례길이 참 어렵습니다. 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비가 온 이후의 풍경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지만, 순례길에 맞는 비는 곤혹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나름대로 비옷을 단단히 입지만 구석 구석 들어오는 빗물은 감당하기 어렵고, 빗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차량소리는 더욱 크게 들립니다.

출발장소인 월롱역에 도착하니 여러 차가자들이 순례단을 기다립니다. 그 중에서 오늘 단체로 참여한 학생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김포하늘씨앗살이학교의 김영근 신부님과 학생들이 하루 순례길에 참여했습니다.

‘하늘씨앗살이’는 ‘우리의 존재가 하늘로부터 왔다는 의미를 잘 살피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합니다. 올해 8명 정도의 중고등학생으로 창립을 하였으며 주로 생명·평화 교육과 체험위주(생태환경, 평화, 비폭력대화, 성 평등, 지역사회의 난민을 돌보는 봉사활동)의 교육을 실시한다 합니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오신 하늘씨앗살이학교 교장 김영근 신부님은 “저희 학교에서는 매주 화요일 평화수업을 실시하는데, 처음 자신의 평화, 이후 서로간의 평화, 마지막 세상과의 평화에 대해 교육을 합니다. 마침 오체투지 순례가 3가지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여 잘 음미해 보고자 왔다”고 하시고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은 고요해지며, 생명·평화에 대한 의미들이 조용히 연상된다”고 하십니다.

김 신부님은 “생명·평화의 길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여야 길이 열린다. 이안에서 우정도 싹 틀 것이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사회는 권력자와 비 권력자, 부자와 가난한 자, 경쟁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등 점점 더 양극화가 되어가면서 소통의 부재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남북 간도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이해를 못하고 긴장과 대치국면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하시며, 이를 극복하고 서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런 중요한 말씀을 하시는데, 어디나 그렇지만 여기도 당돌한 개구쟁이가 있나 봅니다. 한 꼬마가 전종훈 신부님을 붙들고, “아니 누가 이런 것 만들었어요? 비오는 날 왜 이런 것 하죠?”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이 신기하였던 전 신부님이 “아니 왜? 하기 싫으면 오지 않으면 되는데? 어떻게 왔어?”라고 묻자, 꼬마 답변이 더 재미있습니다. “우리 신부님이 가자고 해서 억지로 끌려 왔어요” 그 답변을 듣고 전종훈 신부님 웃음을 터뜨립니다.

억지로 왔다는 꼬마. 처음에는 쉬는 시간마다 전종훈 신부님한테 달려와 “누가 이런 것을 만들어서 비오는 날 고생해요?”라고 묻습니다. 그 모습이 참 당돌하면서도 때 묻지 않아 좋습니다. 잠깐의 휴식 시간에 순례단 진행팀에게 오체투지 순례의 의미를 설명 들은 꼬마. 이내 동무들과 함께 순례길에 자신의 몸을 낮추어봅니다. 친구들 역시 비옷을 입었지만 모양새 냈던 외모는 금방 사라지고, 이제 휴식시간이면 비옷 입은 상태로 도로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내리는 비를 시원하게 맞습니다. 그래도 좋은지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순례에 참여하고 노는 모습이 즐거운지 수경스님과 전종훈 신부님은 가드레일에 기대어 아이들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봅니다.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철없는 어린 학생들이지만, 이 학생들은 커가면서 자신의 몸을 낮추어 세상을 품었던 소중한 경험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경험한 동무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오늘 김포하늘씨앗살이학교의 학생들이 기도하고 희망하는 세상. 그것은 “국민의 평화(현종수), 법에 어긋나지 않는 것들만 존재하는 세상(이찬기), 평화로운 세상(주훈혁), 모든 것이 공평해졌으면 (박다빈), 모든 사람들이 가난해 지지 않기를(김제민), 평화롭고 진실 된 세상(강태윤), 전쟁이 없는 세상, 아스팔트가 아닌 나무와 흙이 많은 세상(김진덕), 생태가 존재 세상(김현태)‘입니다. 아이들의 말씀 하나 하나가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큰 숙제로 다가옵니다.

오전 순례가 종료되고, 파주역 주차장에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던 학생들에게 식사가 맛있는지 물었더니 “아.. 피로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말 맛있어요”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오늘 학생들은 오후 마무리 과정까지 모두 함께 순례에 동참하였습니다.

멀리 군산에서 오신 강철영 선생님. 아침 출발장소에서 순례단을 기다리고 계셨는데, “제 자신이 교만해 지지 않고 반성하고 싶어 왔다. 힘은 들지만 조금씩 마음은 편해진다.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랬다”고 합니다.

강 선생님은 “현 정부는 오만과 독선이 문제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이 편하자고 삽질 하다가는 결국 인간도 죽는다. 거짓으로 4대강 하천정비 사업을 한다고 하지만 100% 운하사업 아닌가?. 자연도 숨 쉴 정도의 상처만 내야 인간이 공존하는 것 아니냐”며 꼬집어 말씀하십니다. 강 선생님 역시 하루 순례를 무사히 함께 하였습니다.

속절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진행된 오전 순례길. 파주역 인근에 도착하여 마무리되었습니다. 다행히 비는 멈추었고, 파주역 공터에서 천주교교정사목위원회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맛있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점심 식사 이후였습니다.

<불인지심(不忍之心)의 마음으로>
하루 날씨가 변화무쌍하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오전에 비가 내리더니 오후부터는 다시 뙤약볕의 날씨가 순례길을 더디게 합니다. 점심시간에 도착한 천주교교정사목위원회 신부님과 관계자, 도법 스님을 비롯한 실상사 스님들과 신도, 그리고 전주 평화동 성당의 신자 등 많은 분들이 오후 순례길에 동참하였습니다.

오후 순례길에 나서니 점심시간 뙤약볕에 달구어진 도로의 열기가 한껏 올라옵니다. 한 구간의 순례를 마치자 오전 빗속에서 진행한 순례와 달리 참가자 대부분이 땀을 흘리고, 목을 축이기 위한 물을 찾습니다.

실상사 화엄학림 학장이신 법인 스님은 “법당에서는 부처님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만나고 여기서는 땅을 통해 사람이 발 딛고, 농사짓고, 숨 쉬고, 욕망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만나니 이것이 부처가 되는 과정”이라 하시고 “모든 생명은 낮게 엎드릴 때 자세히, 멀리, 그리고 핵심이 보인다. 우리는 높은 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려고만 했으니 길을 찾기 어려웠다”고 하십니다.

법인 스님은 “불편하더라고 베풀고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데 더 많이 가지려 하니 괴롭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사고를 고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시고 “모든 생명에 대한 경건함, 평등함을 가져야 한다. 제가 어렸을 때는 소변을 보아도 거름이 되게 논에다 보라고 했고, 국수를 끓여도 생명이 죽을세라 뜨거운 물은 식혀서 버렸다. 이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남의 마음을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함께 참여하신 실상사의 혜진 스님(실상사)은 “법당에서 하는 절은 스님과 불자들이 신심으로 하는 것인데, 여기서 하는 오체투지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하는 것이고, 또 내 자신을 낮추니 수행자로서 거듭나는 느낌이다”고 하십니다. “요즈음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 사고와 독단으로 살고 있는 것이 문제”하며, “내 자신을 낮추고 모든 생명을 섬긴다는 마음이 있으면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살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국정 운영과 관련하여 새겨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만일 부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자기 자신이 소중한 만큼 남도 소중히 하라고 했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오늘 오후 순례길에 젊은 군인들을 만났습니다. 도로변에서 작업 중이던 군인들은 징소리 울리며 도로를 기어가다시피 하는 순레단이 신기하였는지, 작업을 멈추고 일부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더군요. 순례 마무리 즈음에는 부대로 돌아가는 길에 순례단 옆을 지나가는데, 한 진행팀원이 ‘어. 저 군인들도 오체투지 순례하러 온다’고 소식을 전해 모두를 웃게 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총을 들고 누군가의 생명을 죽이기 위해 상대방을 겨눠야 하는 대결의 시대가 아니라, 이 땅의 평화와 생명의 소중함. 그리고 사람의 중요성을 서로가 서로에게 알리는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길 기원해봅니다.

순례 마무리 시간. 도법스님의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을 보냈다.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선가 길을 잃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오체투지는 우리가 잃었던 길을 되찾는 지극한 몸짓이다. 참여한 분들의 하나하나 발걸음과 몸짓에서,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잃었던 길을 되찾아 가기를 바랍니다. 모두 끝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하시기를 바란다”는 말씀으로 빗속과 뙤약볕을 오갔던 하루 순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일정 안내 - 변동 가능>
● 6월 04일(목) : SK주유소 앞 - 통일공원 - 여우고개사거리 200m 전방 부근
● 6월 05일(금) : 여우고개사거리 200m 전 - 운천역 - 임진강역 500m 전(운천교 부근)
● 6월 06일(토) : 임진강역 500m 전(운천교 부근) - 임진각 망배단 - 2009년 마무리 회향행사

* 공지 : 2009년 6월 6일(토) 오전 9시 출발, 오후 2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순례 마무리 행사(우의. 모자 지참 요청)

* 순례 수정 일정과 수칙은 http://cafe.daum.net/dhcpxnwl 공지사항을 참고 바랍니다.

2009. 6. 03
기도 -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진행팀 문의 : 010-9116-8089 / 017-269-2629 / 010-3070-5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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