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하늘나라 음악회 (이미지 출처 = Flickr)

위령성월 음악회

- 닐숨 박춘식

 

미루나무는 이른 봄부터 줄곧

하느님께 매달려 끙끙 애원합니다

새처럼 노래 부르게 해 달라고,

 

뜨거운 여름 어느 날

하느님께서 미루나무를 피아노로 연주합니다

이파리 건반을 신나게 두드립니다

미루나무는 춤을 추고 새들은 놀라 떨어집니다

 

늦가을, 건반이 내려앉아 시무룩해지자

하느님께서 솔바람으로 활대를 만드시어

미루나무 첼로를 껴안고 연주합니다

묵직한 음향이 하늘나라에 울려 퍼지니까

연옥에 있는 혼들이 몰려와 눈물로 감상합니다

때마침 이승의 기도가 북받쳐 올라와 합창하자

위령성월의 음악회는 하늘과 땅을 흔듭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11월의 바람이 망자를 생각하면서 점점 차가워집니다. 더 맑은 정신으로 기도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북반구의 11월은 죽은 이들의 일기장같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어머니가 옹기 적삼으로 땀 흘리시는 마당에, 고집이 센 할아버지께서 고함치며 야단치시던 그 마루에, 울며 돌아가던 누나의 뒷모습에, 숨 거두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에, 우리 마음은 울컥하면서도 11월 하늘처럼 맑아지기도 합니다.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이 가장 바라는 것은 기도라는 사실을, 귀 따갑게 들었지만 진정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였는지 반성하는 달이 11월이며 아울러 망자를 위한 기도 습관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도 11월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을 위령성월이 되시기 빕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