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지식인, 색 바랜 훈장 묻어버려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김유철

1. “노무현”의 “자살”

지난 20년 간 한국 민주주의는 이른바 “1987년 체제”를 이뤘습니다. 알다시피, 1987년 체제는 1987년의 6월 민주화운동과 그 뒤의 개헌에 따라 형성된 정치 체제입니다. 대통령 5년 단임으로 대표되는 이 체제는, 오랜 장기 독재 기간에 쌓인 “집권 예비 세력의 신속한 소화”가 목적입니다. 김영삼, 김대중이 대표적입니다. 사실상 1987년 체제는 김대중의 집권으로 역사적 사명을 다했습니다. 여기에 노무현은 김대중의 연속선상에 있으면서 1987년 체제의 변화를 보입니다. 노무현 집권 시기에 노무현 자신의 입으로 4년제 중임 개헌론이 나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4년 중임제 개헌이 이뤄지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바로 정치의 제도화입니다. 인물 중심이 아니라 정당이라는 제도 중심으로 정치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노무현이라는 개인 인기 중심의 정치는 과거의 그림자입니다. 새 시대의 비전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일부에서 유시민을 제2의 노무현으로 기대합니다만, 그가 자신의 인기를 체계화된 정당 정치로 승화시켜내지 못한다면, 설사 그가 제2의 노무현이 된다고 해도 그 한계 또한 답습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이 보여준 탈권위주의 등에 주목하다 보면, 그가 과거의 그림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새 시대를 열던 도전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체계화된 정당 정치가 개인 중심의 정치보다 더 민주주의적이며 발전된 형태라는 데 동의한다면, 노무현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그는 당선될 때부터도 소속 정당인 민주당의 힘으로 당선됐다기 보다는 개인의 힘으로 당선됐습니다. 그리고 탄핵 이후 친위 세력인 친노파를 중심으로 국회 과반수를 장악했습니다만, 그 국회는 국가보안법조차도 철폐하지 못할 정도로 개혁에 무능했습니다. 삼성은 노무현 때 전성기를 누렸지요.

사람들은 왜 열린민주당이, 그러니까 친노 세력이 국회를 차지하고도 왜 그렇게 개혁에 지리멸렬했는지 의아스러워합니다. 비유하자면, 유목민에게 양을 키울 수 없는 넓은 논을 갖다 주고는 왜 그가 벼를 심어서 풍성한 추수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논농사의 고된 노동보다는 풀밭의 자유 질주를 즐기면서, 농사가 안 되는 것은 들쥐떼 탓으로 돌렸습니다. 유시민이 2002년에 100년 정당을 내걸고 창당했다가 개인 노무현 지지를 목표로 몇 달 만에 사라진 개혁당은 이미 노무현 정권의 운명도 보여줬던 것입니다. 그들은 겨우 5년 만에 그토록 증오하고 경멸하는 한나라당에게 정권을 내줬습니다. 아니 갖다 바쳤지요.

2. 친노 세력- 유령선의 선원들

동물적으로 정치감각이 명민한 노무현은 4년제 중임 개헌을 통해 한나라당이 이명박 파와 박근혜 파로 분열되도록 시도했습니다. 당연히 한나라당이 반대해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무의식적인 또다른 장기 승전 전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당의 주인이 바뀌면 이름도 바뀌는 것이 인물 중심 1987년 체제의 한 특징입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1997년 선거 직전에 이회창이 이름을 바꾼 뒤 지금까지 10년 넘게 같은 정당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작 이회창 본인은 자유선진당이라는, 여전히 1987년 체제식인 정당을 만들어 나갔는데 말이지요.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안정된 정당 정치로 발전하지 못한 친노 세력에 비해서는 선진 정당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1962년에 박정희-김종필이 창당한 민주공화당이 당시 인물 중심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보수 야당에 비해 훨씬 선진적이고 안정된 정당 정치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친노 세력이 지금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어쨌거나, 지금 보수 야당인 민주당은 정세균이라는 경제관료 출신 정치인을 중심으로, 하지만 그만큼 조직적이고 제도화된 정당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친노 세력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정착하지 못한 몽골 기병들처럼 유랑하고 있구요. 정동영이나 유시민이 몽골 얘기를 좋아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 보이는군요.

제도화된 정당으로 뿌리 내리지 못하는 방랑자 친노 세력은 유령선의 선원과 같습니다. 유령들이 탄 유령선이 아니고, 존재 하지 않는 유령 배에 탄 선원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에 분노하고 모든 것을 희망하지만, 그리고 많은 이들이 바로 여기에 매력을 느끼지만, 그들을 목적지에 태워달 줄 배는 실체 없는 유령입니다.

한편으로는 아주 소수파이지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좌파 쪽에서 정당 정치의 제도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에 이어 두번째 장수하고 있는 정당입니다. 진보신당은 작년에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해 나왔는데, 보수 정당의 분열과 달리 인물 중심이 아니라 명확한 이념적 차이 때문에 분당했다는 점은 오히려 발전적입니다. 두 정치세력의 분열은 현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와 진보신당의 민주적 사회주의가 한 정당 안에서 공존할 수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현재는 소수이지만 정당 정치의 제도화라는 새 시대의 역사적 존재를 앞서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입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가 케케묵은 북한 정치체제의 좀비라는 점은 차치하고 말입니다.

3. 노무현의 김구화

정당 정치의 제도화라는 것은 이념 정당으로의 발전을 뜻합니다. 박근혜 세력이 이명박 세력과 그렇게 갈등하면서도 한 정당을 유지하는 것은 두 세력의 이념적 지향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친노 세력이 노무현 사망 이후 민주당과 다른 별도의 정당으로 분립할 만한 여지가 아직은 적어 보입니다. 한미 FTA를 발의, 추진했던 노무현의 친노 세력과,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묵인하는 정세균의 뉴 민주당 플랜 사이에 도대체 무슨 큰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FTA 국회 비준을 추진하는 한나라당하고도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겠군요. 다 같은 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인 것이지요.

노무현, 그러니까 친노 세력의 딜렘마는 그들이 서민을 대변하는 진보세력을 자임하면서 그들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서민을 더 못살게 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서민을 개미지옥에 밀어 넣고는 그 개미지옥의 주인인 개미귀신 벌레에게서 그 개미를 보호하는 호민관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친노 세력이 스스로를 한나라당과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지금이라도 한미 FTA를 추진했던 잘못을 인정하고 공개 반대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같은 노무현 추모 열풍 속에서 그것이 가능할까요? 이것이야말로 친노 정치세력의 딜렘마입니다. 그것은 친노 세력의 자기 부정, 분열을 의미합니다. 독자적 정치세력, 진보적 정당으로 발전하려면 스스로 노무현을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아니면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형용 모순을 만들어냈던 노무현을 그대로 이어받아 1987년 체제의 연장 속에서 인기 정치인 중심의 정치 생명을 현재의 민주당 안에서 더 유지하거나 하겠지요.

이제 1987년 체제의 청산은 노무현의 급작스런 자살로 더욱 더 절박해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제2의 김구처럼 될 가능성이 높은 노무현 열풍이 지속되면, 친노 세력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자기 분열은 어려워집니다. 친노 세력은 그런 용기와 비전, 그리고 정치 능력을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별로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4. 좌우 정당 정치가 시대적 사명

1987년 체제의 청산은, 독재와 민주의 구도를 넘어 가진 자 위주의 경제, 사회구조를 발전시켜온 더 큰 정치체제, 곧 1945년 체제의 후반부 청산입니다. 전반부는 이승만-박정희 (그리고 전두환) 독재였지요. 그것은 지난 60년간 쌓인 빈부격차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1945년 체제를 벗어나 빈부격차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새 정치 체제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노동자, 민중의 이익을 분명히 내거는 좌파의 발전 없이 이 새 체제가 가능할까요?

이 시점에서 자칭 진보적 지식인들은 자신이 지금 역사의 어디에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정서적으로만 민중적이고 투표는 부르조아 정당을 지지하는 이른바 진보적 지식인의 시대 또한 1987년 체제와 함께 저물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 계급과 직접 결합한 유기적 지식인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이른바 1987년식 진보적 지식인들은 자신의 자살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다 알지만,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그들의 정치적 오만함도 또한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색 바랜 훈장과 함께 묻히겠지요.

그런데, 당신은 스스로 분열할 준비가 돼 있습니까? 자살을 피할 약으로 말이지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박준영/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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