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 - 박춘식]

가을 (이미지 출처 = Pixabay)

어느 수녀의 가을 기도

- 닐숨 박춘식

 

지난 가을에 말씀하셨지요

교만에게는 여름 겨울뿐이라고.

그래서 가을을 만나려고 봄부터 저는

겸손과 어울려 소곤거렸습니다

 

상큼한 가을의 하느님

 

씨앗을 힘껏 안고 있는 강아지풀도

코스모스 줄기도

어떤 바람이든 허리 굽혀 절을 하는데

목덜미 세우지 말라고 몇 차례 일깨워 주셨지요

나는 교만과 악의 길을, 사악한 입을 미워한다.(잠언 8:13) 라고

 

이번 가을은 가벼운 입을 다물고

하늘을 심호흡하면서 색색 낙엽으로

묵상 방석을 만들어 드리려고 합니다

 

<출처> 닐숨 박춘식 미발표 시(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가을의 기도 또는 가을의 추억 등 아름다운 시들이 많고 빛 가득한 사진도 많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는 계절은 하느님의 또 다른 형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계절이나 자연에 대한 사물의 쉬운 비유로 하느님의 사랑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가을의 정서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편적으로 수확 결실 마감 낙엽 촛불 쓸쓸함 반성 노년 성찰 고독 황갈색 홀로 울적함 여행 기다림 등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가을은 계절의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뵈옵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느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나 하느님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나 하느님에게 따지고 싶은 생각 등등,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하느님을 뵈옵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집니다. 무엇보다, 시인의 생각으로는, 가을은 겸손을 자세하게 보여 주는 그리고 겸손을 뜨거운 마음으로 강론하는 위대한 스승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가을을 즐기시면서 가을을 깊이 묵상하는 신앙인, 가을 하늘 같은 신앙인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닐숨 박춘식
1938년 경북 칠곡 출생
시집 ‘어머니 하느님’ 상재로 2008년 등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