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재개발, 성지도 깍아 내려...당고개 성지 순교자 현양탑은 어디로?
당고개 성지는 용산 전자상가에서 도보로 불과 5분거리인 작은 언덕 위에 있다. 당고개 성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서울 시가지가 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요즘은 그 당고개 성지에 오를 수 없다. 당고개 성지 360도 둘레에 개발 붐으로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둘러싸는가 했더니 급기야 용산 재개발로 당고개성지 조차 허물어 내려버렸다. 현재 당고개 성지는 옛 모습은 간데없고 택지를 조성하는 모습이다.
당고개 성지는 홍병주, 영주 형제를 비롯한 9명의 성인이 순교한 곳이다. 모진 박해 속에서도 꿋꿋이 신앙을 지키며 순교해 온 풍산 홍씨 일가 후손들이 당고개 성지의 훼손 위기를 확인한 것은 2006년 3월 경이었다. 순교 선조들이 물려준 빛나는 신앙 유산이 당고개 성지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홍유한 후손들은 서울대교구는 물론 용산구청, 서울시청, 문화재청, 청와대 민원실 등에 민원을 했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매번 같았다.
이에 후손들은 풍홍순교자 현양회를 만들어 교회사가들을 찾아 자료를 찾는 한편, 한국 교회 최초의 수덕자이자 내포의 사도로 알려진 이존창, 권철신 등에게 천주학문을 전했으리라 추정되는 홍유한 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있는 안동교구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곳이 바로 안동교구 우곡성지다. 안동교구는 우곡성지에 홍씨순교자 묘역 조성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했고, 교구 설정 40주년을 기념해 순교자 현양비 축복식도 가졌다.
물론 서울대교구 당고개 성지는 용산재개발과 더불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것이다. 하지만 후손들이 그처럼 염원했고, 또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보존을 희망했던 옛 모습으로 복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고개(堂峴, 원효로 2가의 문배산 자리)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2가 만초천(蔓草川)변의 옛 이름이다.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던 곳으로 1839년 기해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참수된 곳이다.
당고개 순교지는 서소문 밖 네거리, 새남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성인을 탄생시켰다. 1840년 1월 31일과 2월 1일 양일에 걸쳐 10명의 남녀 교우들이 순교했고, 이들 중에서 박종원, 홍병주·영주 형제, 손소벽, 이경이, 이인덕, 권진이, 이문우, 최영이 등 9명이 성인품에 올랐다. 당고개에서 순교한 최경환 성인의 부인이며,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는 당시 시복 조서에서 제외돼 성인품에 오르지 못했으나 124위 시복시성 추진 대상자에는 포함되어 있다.
어디서나 순교 성인과 순교자를 현양하고, 기도한들 어떠랴만, 이왕 성지로 개발되고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진 성지라면 교구차원에서 보호하고 보존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당고개 성지 주변이 개발된 후 새롭게 성지를 조성할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발 논리에 함몰돼 죽음으로까지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의 얼이 서린 곳을 뭉개버린 것은 못내 안타깝다. 당고개 성지의 높이 솟은 둔덕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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