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백승덕] 강인철, "종교와 군대", 현실문화, 2017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포교를 하려는 사람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종로 거리를 혼자서 걷을 때 누군가 다정하게 부르면 십중팔구는 ‘도를 아십니까?’ 묻는 전도사들이다. 주택가 초인종을 제일 많이 누르는 사람들도 ‘좋은 말씀’ 전한다는 전도사들이다. 종교를 전하는 사람들은 주로 외로워 보이는 사람들을 공략한다. 혼자 걷거나 집에 혼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선교 대상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가가호호 돌아다니는 방식으론 품만 많이 들 뿐 성과가 크게 남지 않는다. 많은 개신교회들이 학습지 판매하는 것처럼 큰길가에 파라솔을 치고 행인들에게 사탕을 나눠 주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오히려 신자들이 줄어들어서 문 닫는 교회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강인철, "종교와 군대", 현실문화, 2017. (표지 제공 = 현실문화)

딜레마에 빠진 군종제도

위기에 몰리면 황당한 주장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도 나타난다. 19대 총선 당시 개신교 정당들이 내건 주요 공약 중에는 한국교회의 은행 이자를 2퍼센트 인하하겠다는 것이 있었다. 김진호 목사에 따르면 그 무렵 교회가 금융권에서 대출받은 금액이 무려 4조 5000억을 넘었는데 교회의 대출 연체율이 대기업과 가계에 비해 2-3배에 달했다. 매년 6000개 교회가 파산하고 경매에 넘어갔고 대형교회 시설들까지 경매시장에 나왔다고 한다.

개신교 정당의 이자 인하 공약은 그런 위기감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미국에서 신복음주의자들이 위기에 맞서 동성애 혐오를 들고 나왔던 것처럼 최근 한국교회 엘리트들 역시 미국의 선례를 따라서 반공 대신에 동성애 혐오를 들고 나오고 있다. 김진호 목사는 이를 ‘혐오 동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한국의 ‘혐오동맹’은 확실하게 믿을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징병제다. 한국 개신교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 수백만 명의 ‘20대 남성’ 신규 입교자들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군종제도였다. 공관병에 대한 갑질 논란이 일었던 육군 제2작전사령관 박찬주 대장이 한 교회에서 간증 연설을 하면서 ‘초코파이로 국민 3700만 명을 기독교인으로 만들겠다’라고 큰소리 칠 수 있었던 것도 군종제도 덕분이었다. 한국교회에게 군대는 든든한 가두리 어장이나 다름없다.

군종제도는 이처럼 ‘혐오동맹’을 뒷받침하는 보험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군종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은 뿌리 깊게 이어져 왔다. 군대와 종교의 울타리 바깥 사회에서 군종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 방치돼 왔다.

종교사회학자 강인철이 쓴 "종교와 군대"는 군종제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첫 번째 연구서다. 저자는 한국의 군종 연구가 ‘과잉 관심’과 ‘지독한 무관심’으로 양극화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군종 관계자들은 군종제도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은 채 군종 관련 연구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이 군종제도를 비판적으로 연구하려고 시도한 경우는 찾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한국의 군종제도는 그들만의 리그에 갇혀서 성장할 뿐이었지 성찰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무성찰성’이 한국 군종의 대표적인 특성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군종제도를 옹호하는 교단 관계자들은 군종이 신자들의 종교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간 개신교, 가톨릭, 불교 같은 일부 종교만이 군종을 운영할 권리를 특혜처럼 누려 왔을 뿐이다. 원불교는 2006년이 되어서야 군종제도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다. 원불교 측은 그 과정에서 대통령면담을 비롯해서 항의기도회, 1인 시위,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서 제출, 행정심판 청구 같은 실력행사를 통해 총력을 기울였다. 불교 역시 개신교나 천주교에 비하면 20년이나 늦게 군종에 참가할 권리를 얻었다. 1960년대 말 동남아시아의 불교국가들과 외교가 중요해지고 베트남 파병이 추진되던 때였다.

각 교단이 군종에 참여하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정치적 결정들이 있었다. 저자는 군종제도에 대한 무성찰성을 넘어서기 위해서 ‘종교-군대 간의 본질적인 긴장 관계’를 보여 주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역사사회학적 접근에 충실하면서 두 가지 접근방법을 시도한다.

첫 번째는 비교연구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의 군종제도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특성들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군종의 모델이었던 미국 군종이 베트남전을 계기로 ‘군대 안의(within) 존재’에서 ‘교단-군대 사이의(in-between) 존재’로 변한 반면에 한국 군종은 ‘신앙전력화’ 같은 표현을 여전히 고수하면서 군대와 강하게 통합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두 번째는 조직-제도적 접근이다. 군종은 군대 안에서 종교지도자인 동시에 참모장교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적 역할’을 가진다. 저자는 군종들이 군대와 교단 조직으로부터 구분되는 또 하나의 독립된 행위자라고 분석한다. 군종들은 군대와 교단 양측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의 영향력을 확장시키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종교와 군대"에는 이와 같은 방법론에 따라서 구분된 여러 행위자들이 등장한다. 한국과 미국 군종제도를 비교하는가 하면 한국 군종에 참여하고 있는 개신교, 가톨릭, 불교, 원불교 등의 교단들이 황금어장을 두고 어떤 각축전을 벌여 왔는지 다룬다.

저자는 각 교단들이 군종이라는 특권을 지키기 위해서 경쟁하는 동안 군종제도가 법적, 신학적, 윤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은 장병들에게 종교를 강요하거나 소수종교의 군종 참여를 막는 행태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또한 군종장교가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도 크다. 예컨대 제주 강정해군기지에 발령이 난 군종사제는 부대 바로 옆에서 열리는 해군기지 반대 미사에 참가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저자는 군종이 스스로의 딜레마를 해결할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기대한다. 군종이 군대와 교단과 구분되는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보니 군종장교 개개인은 개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집단은 군종신부와 군종승려다. 이들은 개신교 군종장교들과 달리 병역의무를 이미 마쳤거나 면제받은 이들이기 때문에 군 당국에 대해 너무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군종장교 출신으로 평화운동이나 인권운동에 헌신하는 천주교 사제들의 존재가 이러한 기대를 뒷받침한다.

군인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 (사진 출처 = 군종교구 홈페이지)

너무 늦게 나온 책

"종교와 군대"는 군종제도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뒤늦게 출간된 감이 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한국에서 군대와 종교는 인문사회과학 연구자들에게 제각기 외면 받아 온 주제들이었다. 일단, 군대는 민주화 이후에도 민간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없는 성역처럼 남아 있었다. 국민 대다수가 ‘군대는 당연히 가야지’라고 생각하는데 병영 담장마저 높다 보니 군대는 민간연구자들이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이와 달리 종교는 비판적으로 취급하지 않아도 자연히 사라질 대상으로 치부됐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회학자들은 근대성이 발전하면 사회가 ‘세속화’가 되어 종교가 쇠퇴하거나 ‘인민의 아편’이라는 속성이 까발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사라질 운명인 대상은 연구하는 것도 무의미했다.

그러나 군대는 여전히 선거개입이나 병영폭력 같은 논란을 일으키면서 민주적 통제가 절실한 대상임을 확인시키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종교는 민주화의 최전선에 나서거나 종교분쟁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서구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종교와 정치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주목받고 있다. 9.11테러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침공 이후로 군사적 폭력에 대한 연구들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군대와 종교에 대한 연구가 너무도 적었다. "종교와 군대"의 저자는 이런 풍토에서도 종교, 정치, 국가에 대한 역사사회학적 연구를 지속해 온 선구자다. 군종제도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첫 번째 연구서가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선구적인 연구이다 보니 앞으로의 연구과제도 남겼다. 이 책에서는 군종제도를 조직과 제도로만 접근하다 보니 군종에 참여하는 성직자들이나 선교 대상이 되는 장병들 개개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군종장교 개개인은 군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까? 초코파이를 받아먹은 장병들이 경험한 군종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그들에게 군대에서의 종교활동은 어떤 의미로 다가가고 있을까? 저자의 선구적인 연구가 군종에 대한 문화학이나 인류학적 연구로 이어진다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승덕(미카엘)
징병제 연구자. 서울대교구 가톨릭대학생연합회에서 부의장과 교육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용산참사, 쌍용차파업 진압에서 국가폭력이 맹위를 떨쳤던 해였다. 출소 후 징병제 연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양대 트랜스내셔널 인문학과에서 ‘이승만 정권기 국민개병 담론’에 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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