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인천교구 한 성당에서 미사 드리는 모습. (사진 출처 = TV노아가 유튜브에 올린 '천주교인천교구 설정 50주년기념' 동영상 갈무리)

<한겨레신문>에 서울교구 전종훈 신부(전 정의구현사제단 대표)의 긴 인터뷰 기사가 났다. 아, 한동안 소식이 끊겨 궁금하더니 벌써 4년째 지리산에 가 있는 걸 몰랐구나. 반가운 마음에 기사를 읽다가 한 대목에 나의 시선이 머물렀다. “교회도 누군가의 지적으로 제자리로 가야 한다.”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박 전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국정원에게 셀프 개혁을 주문한 것이 소가 웃을 일이었다면 ‘거룩한’ 교회도 외부의 지적 없이 스스로는 제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걸 전 신부는 꿰뚫었다. 그는 “네가 교회의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고 윽박지르는 윗분의 압력을 견디기가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왕에 교회의 주인이란 말이 나왔으니 본당의 분할 신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자. 지난해까지 14개 본당을 전전하는 동안 나는 본당이 나눠지고 신설되는 것을 수차례 보았다. 내가 신품받던 당시에 30개였던 본당이 지금은 130개에 육박한다. 교세의 성장은 바람직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본당의 분할 신설 과정에서 보인 인천교구의 처사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아마 다른 교구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교구장의 의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정작 그 지역에 살며 매 주일 성당에 나가는 주민 신자들은 철저하게 배제된다. 심지어 본당신부조차 모르게 결정하여 일방적으로 통보만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교구나 본당에서 사목회(또는 평신도협의회)의 역할이란 교구장이나 주임신부의 심부름 정도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사전에 본당 신자들의 여론을 묻는 설문지를 돌렸다는 이야기를 나는 들어 보지 못했다. 본당을 나누고 성당을 신축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선가? 그에 따른 막대한 건축비는 누구의 지갑에서 나오는데 결정은 누구 마음대로 누가 하는가? 신자는 언제까지 시키는 대로 돈만 내는 봉 노릇을 참아 줄까? 언젠가 평양에 갔을 때 보았던 현수막이 생각난다. “수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 그래도 북한의 공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다수 민중이 주권자로서의 권한을 실제로 행사하는 것이 가능할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녹색평론> 156호)는 김종철 대표의 말은 지당하다. 한국교회가 민주적이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나? 하느님의 뜻, 예수의 복음정신은 민주적인 교회 체제나 운영방식으로는 선포가 불가능한가?

김종철은 또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향후 5년의 임기 동안 권력자가 아니라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국민의 일원’임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음을 기억한다. 특히 주교와 사제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임기도 없는 교구장제도는 여전히 염려스럽다. 하늘의 섭리에 대한 믿음의 부족일까?)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의 지적으로만 가능하다는 전종훈 신부의 충언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된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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