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곡성지에 성 홍병주, 영주 등 순교자 13위 모셔

안동교구 40주년 기념 "농은 홍유한 후손 순교자 현양비" 축복식이 5월29일 11시 봉화군 우곡성지에서 거행됐다. 이날 행사는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 두봉 주교와 사제단, 대구대교구와 안동교구 신자들, 풍산 홍씨 일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교구장 권혁주 주교의 주례로 봉헌된 미사, 풍산 홍씨 순교자 13위 가묘 이장, 순교자 현양비 축복식 등으로 이뤄졌다.

우곡성지는 한국교회 최초의 수덕자로 알려진 홍유한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계곡에 조성된 성지로 이날 이곳 가묘에 이장된 순교자 13위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5명,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6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2명의 순교자다.

이날 미사 중 강론을 통해 권혁주 주교는 " 신앙은 은총이며 축복" 이라고 전제한 후, "홍유한 선생은 성경도 없었던 그 시대에 책으로 접한 것을 그대로 실천한 수덕자였고, 달레 천주교회사에도 그 분의 행적이 나온다"고 면서 "오늘은 그신앙의 씨앗과 열매가 한 자리에 모인 뜻깊은 자리"라고 순교자 가묘 이장과 현양비 축복식의 기쁨을 말했다.

"홍유한 선생은 천주교 서적을 접한 후 다른 공부를 버리고 기꺼이 종교생활을 실천했습니다. 7일마다 축일이 온다는 것을 알고 7일, 14일, 21일, 28일을 경건하게 보냈고 본성의 탐욕에 빠지지 않고 좋은 음식을 멀리했습니다. 일례로 말을 타고 가던 그가 노인을 보고 말에서 내려 노인을 태우고 자기는 걸었다고 합니다. 13년 동안 호젓한 곳에서 지내면서 수계생활을 했다니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충분히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기도, 금육, 금욕, 절제로 생활했고 희생과 사랑의 삶을 실천한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두봉 주교는 축사를 통해 "순교자의 유해는 없더라도 그 분들이 순교한 자리의 흙을 담아 묘소를 만들어 순교자의 현양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느님의 손"이라면서 "안동교구 설정 40주년에 우곡성지가 새로이 단장돼 새 역사를 쓰게된 것은 하느님의 크신 손길과 은총" 이라면서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 중 홍씨 문중에서 준비한 홍씨 순교자 13위의 순교지 흙을 담은 항아리를 옮겨 가묘에 이장한 후 순교자 현양비 제막식을 가졌다. 농은 홍유한 선생의 묘소는 우곡 성지가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있으며, 묘소까지 십자가의 길을 할 수 있게 조성됐다.

한편 안동교구는 이날 행사 외에도 "안동교구 40주년의 해" 를 기념해 "기쁘고 떳떳하게"를 주제로 행사를 하는데, 오는 9월20일 감사미사를 봉헌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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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가톨릭 수덕자 홍유한 선생 후손 순교자 13위


1. 순교자 홍정호 (?~1801)
홍필주(필립보)와 가까운 친척으로 가족과 함께 주문모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 교 했고,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돼 7월2일(음 5월22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 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2. 순교자 홍낙임 (1741~1801)
영의정 봉한의 아들이며, 혜경궁 홍씨의 동생이자 정조 임금의 외삼촌. 윤행임의
권유로 입교,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돼 제주도로 유배됐으나 곧 사사됐다.

3. 순교자 홍낙민 루까 (1751~1801)
1776년 권철신(암브로시오)의 제자가 됐다. 1839년 기해박해 순교자 홍재영(프 로타시오)의 아버지.1801년 4월8일(음 2월26일) 51세 나이로 서소문 밖에서 참 수형.

4. 순교자 강완숙 골롬바 (1760~1801)
한국 최초의 여성회장. 홍지영의 아내이며 1801년 순교한 홍필주(필립보)의 어머 니. 1796년 을묘박해 때부터 중국인 주문모 신부를 모셨으며 1801년 7월2일(음 5월22일) 그녀 나이 41세 때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함.

5. 순교자 홍재영 프로타시오 (1780~1840)
순교자 홍낙민의 아들이며, 1866년에 순교한 홍봉주(토마스)의 아버지. 신유박해 로 체포돼 전라도 광주로 유배 후 사면됐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돼 1840년 1월4일(음 1839년 11월30일) 숲정이에서 참수형.

6. 순교자 정소사 (?~1840)
홍재영의 아내이며 신유박해 순교자 정약종의 맏형인 약현의 딸. 기해박해 때 남 편과 함께 숲정이에서 순교. 그의 아들 홍봉주도 병인박해 때 순교했다.

7. 순교자 홍필주 필립보 (1774~1801)
홍지영의 아들. 1790년 경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 어머니 강완숙의 열심 한 덕행을 모범으로 삼았고, 주문모 신부의 복사를 했다. 1801년 10월4일(음 8 월27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 치명했다.

8. 순교자 성 홍병주 베드로(1798~1840)
성 홍병주는 순교자 홍낙민의 손자이고 홍재영의 조카. 성 홍영주 바오로의 형.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돼 42세의 나이로 1840년 1월31일 서울 당고 개에서 동생보다 하루빨리 순교했다. 1925년 7월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 복됐고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의해 시성됐다.

9. 순교자 성 홍영주 바오로 (1801~1840)
성 홍영주의 아버지 홍기영은 1801년의 지긋지긋한 난을 치르고 나서 충청도
내포의 서산 고을 여사울에서 살았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체포돼 형과 함께
당고개에서 순교했다.

10. 순교자 홍봉주 토마스 (?~ 1866)
순교자 홍봉주의 아버지 홍재영은 신유박해 때 전라도 광주로 유배돼 그를 낳았 다. 홍봉주는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교리를 배웠다. 1855년 초매스트르 신부가 홍봉주에게 베르뇌 장 주교를 입국시키는 임무를 맡겼는데, 베르뇌 주교, 푸르티 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를 상해에서 모셔왔다. 1866년 2월23일 베르뇌 주교 와 함께 체포돼 서소문 밖에서 참수됐다.

12. 순교자 심조이 바르바라 (1813~1839)
홍봉주의 아내. 옥중에서 한 살 된 막내 아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옥중에서 죽어 가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고통이었다. 순교한 날은 1839년 11월11일이었고, 그 녀가 죽은 후 몇 시간 후에 아들도 숨을 거두었다.

13. 순교자 홍베드로 (1852~1867)
순교자 홍봉주의 아들로 홍낙민, 홍재영, 홍봉주에 이어 4대째 순교했다. 그는
15세 되던 해인 1867년 가을 전주천변에 있는 초록바위에서 같은 또래인 성 남 종삼의 아들과 함께 산 채로 수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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