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부터 바쁘게 이어진 택시 운전이 한숨을 돌리려나 싶어 보니 점심이 한 참 지난 뒤다. 매일 그런 게 아니라서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이어 일이 계속 될 땐 흐름을 따를 수밖에.

이제 빠듯해진 몸과 맘을 풀 시간이다. 자연스레 향하는 쉼터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물을 쭉 들이키니 속이 시원하다. Chicken on rice, 타이 음식이 참 먹음직도 하고 봄직도 하다. 음식값은 $ 7.50, 부담 없는 가격이다.

Asian Food Court, 대중 음식점. 나에겐 고국의 기사 식당같이 편안한 쉼터다. 닭고기 덮밥이라고 할까, 기름에 볶은 쌀밥 한 종기를 그대로 엎어 놓은 모양으로 큰 접시에 담고, 그 옆엔 잘 익혀진 닭고기, 신선한 야채 샐러드로 채우고 별도의 달걀 스프 그리고 간장 류 소스와 고추장 류 소스들이다. 이 음식에 맛들여지는 데 한 몫을 해주신 Tom신부님이 그때 그 모습으로 떠오른다.

뉴질랜드 이민 초창기엔 한국인 전용 성당이 없어 kiwi(현지인) 성당에 다니게 됐다. 그러다 교민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성당을 빌려 교민 대상으로 신앙 생활을 하면서 전담 kiwi 신부님께서 사목을 담당하시게 되었다.

일요일 교중 미사 한번 뿐이었다. 그래서 일주일에 두어 번씩은 사무장과 신부님이 만나 공동체 일에 대해 이야기도하고 새로운 계획도 세웠다. 그러니까 어언 10년 전쯤의 일이다. 그 날도 택시 운전하다 성당에 들려 성체 조배를 드리고 나오던 중 사무실에 들렀다.

Tom 신부님과 사무장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잠시 뒤 식사를 하러 택시에 모시고 Asian Food Court로 향했다. 그 즈음 내가 즐겨 먹던 한국 음식을 함께 드셨으면 해서 여쭤보니 Tom 신부님께서 즉석에서 “ Chicken on rice, Thai Food ” 하셨다.

그 음식이 그렇게도 입에 맞아서 가끔씩 들르면 드신다고 사무장이 귀띔해 주었다. 그 음식을 3인분 시켜 나오자 신부님께선 곧바로 밥에 닭고기와 소스를 섞으셨다. 비빔밥처럼 드시는데 참 맛있어 보여 함께 따라서 그렇게 해보니 그 또한 맛이 별미였다.

그 뒤부터 자주 Thom 신부님처럼 들게 되는 습관이 배이게 된 것이다. 음식 값을 내려고 하니 신부님이 내 손을 가로 막았다. 오늘은 내가 손님이란다. 그리고 그날 음식 값은 사무장이 낼 차례란다. 다음번은 신부님께서 살 차례니 내고 싶으면 그때 와서 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참 유머 감각도 좋으시지….

한참을 웃고 나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음에 꼭 와서 살 거지?” 하시기에, 내 대답도 즉각 나왔다. “Yes Sir ! Of Course”

지금은 다 지난 옛 추억이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고 강산도 바뀌었다. 지금 한인 성당은 자체적으로 건축하여 독립하였고, 고국에서 부임해온 두 분 신부님께서 사목을 담당하시고 있다. 많은 교우들로 고국과 거의 다를 바 없이 한국식으로 운영되고 있어 편리하기도 하지만, 적은 인원에 kiwi 신부님 모시고 불편도 따랐던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가끔씩 있다.

Tom 신부님께선 지금은 은퇴하신 뒤 건강이 좋지 않아서 Wellington 고향에서 요양 중이라고 하시는데… 건강 쾌유를 빌며 다시 한번 꼭 뵙고 싶다. Tom 신부님께서 머물고 간 자리, 창가에 앉아 혼자 같은 음식을 드노라면 어김없이 Tom 신부님이 옆에 앉아 계신 것 같다. "프란치스코, 많이 들어", "이렇게 비벼서 먹어봐, 더 맛있지?", 일하느라 수고 했겠다며 배고플 텐데 더 먹으라고 드시기 전에 음식을 덜어 주기도 하셨던 신부님….

우리 생활 속 ‘예수님’을 만나는 자리라서 오늘도 이 창가 낡은 의자에 몸 붙이고 맘 붙여 보고자 발길이 이리로 향한 듯싶다. 그 당시 미사 강론 때 참 가슴이 찡하게 울린 적이 많았다. 키도 크시고, 몸집도 건장한 분이 하얀 수단 자락 바로 잡으시며 제대 앞, 교우들이 앉은 앞좌석 중앙통로 자리까지 나오셔서 손바닥 만한 메모지 한 장 들고 쩌렁쩌렁, 또박또박, 천천히 쉬운 예를 들어가며 강론 말씀을 해 주실 때 우리들의 시선은 모두 신부님 눈과 입이었다.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가까이 땅에 내려 오신 것처럼, 신부님께서도 제단 위에서 우리들 가까이 내려오셔서 말씀하시니 더욱 하나 될 수밖에….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초기 이민자들의 눈높이로 내려 오셔서 하나 되고자 하시는 강렬한 눈빛, 카리스마 배인 목청이었다. 영어 한 마디라도 더 현장감 있게 알아듣게 하시려고 우리들 가까이 다가오셨던 신부님!

“여보, 여보, 나 오늘 신부님 강론 말씀을 지난주보다 더 많이 알아들은 것 같애, 그 의미가 전달이 되네.”

미사 후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기한 듯 기쁜 얼굴로 이야기하는 아내를 보며 같은 느낌으로 다시금 신부님께 감사가 올려졌던 순간들이다.

Kiwi 성당에서 다른 Kiwi 신부님 강론 말씀은 도통 무슨 말인지 들어오질 않는데 웬일로… 순진한 어린양들을 말씀의 물가로 인도해 주시던 목자의 모습, 그 마음이 절절하게 전해 졌으니… 그러니 모든 교우들이 다음 주에 가는 주일미사 시간이 기다려 질 수밖에. 영어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알아듣도록 쉬운 예를 들어 또박 또박 말씀하시니 그게 바로 예수님 방식이 아니었던가. 그러기에 영어로 강론 중인데도

까르르, 깔깔깔, 호호호, 하하하…

어린 양들의 웃음도 자주 함께 어우러져 서로 하나 된 미사 봉헌이 이루어 졌으니, 바로 그 자리가 주님께서 임하신 자리일 수밖에… 천국은 바로 그 자리에, 기적은 바로 그 순간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같은 눈높이가 되며 하나 되는 마음, 그 곳에 정녕 평화가 함께 있게 마련임을 배우게 된다. 받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시금 섬김으로 올리는 마음에도 역시 평화가 있음을 되 새겨 보는 시간이었다. ‘Tom 신부님, 늘 우리 곁에 계시네요.’

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보내며 들려오는 그 분 함께 하시는 기쁨의 노래를 듣는다.

JESUS IS RISEN !
예수님 부활 하셨도다
JESUS IS ALIVE !
예수님 살아 계시도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백동흠 2008-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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