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자 1020호 <평화신문>과 2649호 <가톨릭신문> 비평

한 성직자가 교회가 운영하는 방송의 대담프로그램에서 말했다. “그는 냉담자였다”고. 이어서 그는 냉담자에 대하여 교회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성직자로서 판결했다. “그는 가톨릭 신앙을 버렸다”고. 이미 시작된 말이라 그 성직자는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가톨릭신앙을 실천하지 않았으며 이것을 냉담이라 한다”고 청취자에게 경쾌하게 유권해석을 내렸다. 진정 그 성직자가 하고 싶은 한마디가 결국 첨가되었다. “그는 자살했기에 조용하게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몰라도 공개적으로 미사를 올리고 이러는 것(조문 분향)은 하지 않는 것이 가톨릭교회의 전통이다”라고 했다. 그 성직자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한 한 억울한 영혼을 위한 주교회의 의장인 강우일주교의 분향소 참석과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추모미사 등에 대하여 우회적으로 나무란 것이다. 이상은 노무현 16대 대통령의 영결식 하루 전 날인 5월 28일 <평화방송>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박홍신부가 한 말이었다.

<평화방송>은 본란의 비평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머리에 그 방송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한 것은 오늘 주제를 여는 하나의 텍스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3일 새벽 노무현 16대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벼룩시장>류의 정보지를 제외한 모든 언론이 다양한 각도에서 다루었다. 물론 놀랍게도 교계신문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고인이 천주교 세례를 통한 인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계신문은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의 죽음이후 교계신문의 첫 보도인 5월 31일자에서 <평화신문>은 사설과 함께 관련기사 없는 1면 톱으로 소식을 전하면서 ‘교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소식에 깊은 애도’라고 제목을 달았다. 애도에 대한 기사 내용은 주교회의 의장이자 제주교구강인 강우일주교의 제주 서문본당 강론에서의 언급과 정진석추기경의 메시지에 이어 인천교구 김병상몬시뇰, 서울교구 허영엽신부의 말을 달았다. 사진으로는 명동 가톨릭회관에 내걸린 서거소식 현수막을 실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 정도였지만 ‘깊은 애도’라 표현함은 과장이거나 부당했다. 한편 <가톨릭신문>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를 일이지만 5월 31일자에 ‘노무현’으로 시작되는 기사는 단 한 줄도 없었다.

한 나라의 전직대통령이 퇴임 15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도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투신으로서 말이다. 불과 얼마 전 천주교회와 온 국민의 애도 속에 스스로 ‘바보’라 부르던 김수환추기경을 우리는 멀리 보냈다. 이번에는 많은 이들에게 ‘바보’라 불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일부의 냉소와 함께 동시에 많은 이들이 애도하며 그의 하늘 길을 배웅했다. 그 일부의 냉소에 한국천주교회와 천주교회의 기관지를 자임하는 두 신문이 포함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자살’과 ‘냉담’과 ‘교회법’에 대한 해석을 여기서 논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것은 일부 신학자와 일부 성직자들과 교회언론이 알아서 해석하고 “적어도 우리만큼은 하느님 앞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위안을 받으시라. 그것을 세상 사람들은 자위행위라 부른다. 20년, 혹은 30년 전 교계신문의 자료를 들이대면 <가톨릭신문>이 늘 그 당시 혼자였기에 불리하고 불편하겠지만 어쩌랴, 그것이 나이 먹은 자의 책임인 것을.

1979년 11월 4일자 <가톨릭신문>을 보면 5,6,7,8,9대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죽음을 맞아 1면 톱에 주교단의 추도미사를 전해주고 있다. 기억하시는가? 그는 질펀한 유흥 도중에 부하의 손에 총을 맞았었다. 더욱이 그는 영세를 받을 일도 없으며 로마교황청을 방문하거나 교황을 만난 적도 없으며 임기 내내 한국천주교회와는 대립상태였다. 그럼에도 주교단은 그를 위해 ‘공식적’으로 미사를 드렸다.

이제는 모두 하늘 길을 떠난 두 ‘바보’가 살아있을 때 한 분은 퇴임한 추기경으로서, 한 분은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로서 만났던 일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톨릭신문>이 2002년 6월 30일 보도했다. 당시 기사 내용이다. “노후보는 이날 특별히 자신이 1986년 부산에서 송기인 신부로부터 「유스또」라는 세례명으로 영세했음을 밝히고 『그간 프로필에 「무교」라고 적은 것은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지 못하고 신앙생활도 건실하지 못한데 신자처럼 대우받는 것이 미안해서였을 뿐, 영세한 것을 부인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김추기경이 『하느님을 믿느냐』고 묻자 노후보는 『희미하게 믿는다』고 답했고 이에 대해 김추기경은 『하느님은 이미 노후보를 잘 알고 계신다』며 『어려울 때 매달리고 하느님 뜻에 따를 것을 다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노간지’라 불리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공과는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질펀한 유흥을 즐기지 않았고, 독재자가 아니었고, 인권변호사로 어려운 이들을 돌보았고, 동서남북의 화합을 위해 헌신했고, 천주교 영세를 했으며, 로마에서 교황을 만났고, 한국천주교회와는 대립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진정으로 가슴으로 품어줄 주교단의 미사와 교계신문의 보도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두 ‘바보’가 없는 곳에서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사시는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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