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10월 1일(연중 제26주일) 마태 21,28-32

올해 연중 제26주일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10월 1일)과 겹칩니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의 강론집에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대축일 강론이 없으므로 연중 제26주일 강론을 올립니다. - 편집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길을 보여 주신다.

의로움의 길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다. 그분의 메시지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적의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오늘의 비유는 단순하고도 도전적이다. 그분 자신이 비교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청취자들의 의견을 묻는다. 결정할 사람들은 그들이다.(마태 21,28)

다만 두 아들들의 행동이 묘사된 순서가, 큰아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하고 둘째 아들은 교회라는 해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마태 21,28-30) 문제는 시기 순이 아니다. 시기 순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더 영속적인 것이 믿는 이의 삶 속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간결하다. 우리는 두 가지 형태의 행동이 어떻게 나왔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 단순히 그냥 묘사되었을 뿐이다. 처음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마태 21,29) 그는 말로는 싫다고 했지만, 그의 행동은 ‘예’로 끝난다.

반대로 둘째 아들은 거짓말쟁이다. 그는 말로는 받아들이지만 행동으로는 거부한다.(마태21,30) 그는 일관성이 없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느님 앞의 우리 운명을 결정하는 실천의 문제다. 행하는 것이 말하는 것에 앞선다. 예수님의 질문은 도피구가 없다. 그리고 분별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첫째 아들”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충분치 않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도전받고 있음을 알았다. 둘 중의 누가 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것이 의로움의 길이라고 생각하느냐?

(사진 출처 = pixabay.com)

우리 자신을 비우기

똑같은 질문이 우리에게 던져진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주님께 예라고 대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마태 7,21) 사람들에 속하는가? 형식에 따르는 것은 그것이 종교적인 형식이라도, 나름대로의 혜택이 있다. 사회의 지배적인 규칙들을 따를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문제들을 피하고 괜찮은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하는 정의는 이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보다 율법의 가장 큰 위반자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이 먼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대담한 선언을 듣는다. 그들은 세리와 창녀들, 그리고 공적으로 죄인이라고 규정받는 사람들이다.(마태 21,31)

이 선언은 주님의 가장 엄격한 선언들 중의 하나지만, 우리는 여기에서 하느님 나라가 요구하는 정의의 영역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모든 사람, 특히 가장 결핍되고 무시받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에제키엘은 우리에게 말한다.(에제 18,27)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라고. 우리 모두는 하나도 예외 없이, 생명인 이 의로움으로 끊임없이 돌아서야 한다.(에제 18,28) 이 명령은 우리 삶의 판관이다. 이러한 사실 앞에서, 오직 오만함만이 우리가 “의롭다”고 믿게 할 수 있으며 우리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과 믿음에 의심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의 길을 보여준다.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셨다.”(필리 2,7) 주님은 모든 특권을 버렸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조건, 교회 안에서 우리의 책임감은 우리를 “자만심, 허영심”(필리 2,3)과 오만함으로 이끌지 말고 연대로 이끌어야 한다. 이 길을 통해서만 진정한 “성령 안의 친교”(필리 2,1)가 이루어질 것이다. 필리피의 이 아름다운 찬가는 역사 속의 침례가 하느님의 아들께서 우리를 그분의 벗들로 삼기 위하여 취한 길임을 상기시켜 준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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