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민주화-근본적 정체성 회복의 길 7

역사의 흐름 속에서 교회는 복음화의 일환으로 시대에 따른 다양한 메시지(교서, 담화문)를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메시지가 생명력 있는 가르침인지, 아니면 그저 형식적인 언어의 유희인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

199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희년을 앞두고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교서 <제삼천년기>(Tertio Millennio Adveniente)를 반포했다. 여기에는 새천년을 맞으면서 과거 교회의 잘못한 과오를 참회하면서 새로운 희망의 교회 모습을 점검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요한 바오로 6세는, “과거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도록 도와주는 정직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고 “오늘날의 유혹과 도전에 직면하도록 우리를 각성시키고 이를 극복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 교서 발표이후 교황청은 갈릴레오 재판, 진화론 단죄, 루터의 개혁안 반대, 나치 학살에 대한 침묵 등 과거 교회의 역사적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모습을 온 세상에 알렸다.

그 후 한국교회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성찰과 함께 2000년 12월 3일 주교회의는 <쇄신과 화해>란 반성 문건을 발표했다. 그 내용은 200년 교회사 흐름에서 외부세력에 편승 야합하면서 민족의 안정과 평화에 이바지하지 못했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인권 신장과 보호를 등한시 했고, 성직자들이 그릇된 권위의식과 물질 팽창주의에 빠졌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배타시 했다는 반성이다. 앞으로의 교회는 참회를 하면서 모든 사람의 보다 나은 삶, 정의와 평화, 인권 신장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 후 구체적인 쇄신방법을 추구하는 심포지엄도 열렸고 교회의 언론도 진지한 모습으로 보도하였다. 이 심포지엄에서 정치, 사회, 문화 등 민족현실에 대해 교회는 예언자적인 응답을 해야 하고, 교회 내의 문제로 교구간의 벽을 허물어야 하고, 중앙집권화 된 교계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교회가 전세계를 복음화 하려면 끊임없는 회개와 쇄신으로 교회 자체가 복음화 되지 않으면 안 된다”바오로 6세,「현대복음선교」(Evangelii Nuntiandi, 1975) 15항.고 하였다. 회개와 쇄신은 불가분의 관계다. 회개는 과거의 잘못을 대상으로 하며, 쇄신은 과거 과오를 반복하지 않음은 물론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면서 세상과 교회에 기쁨과 희망을 주는 것이다.

주교단 메시지에서만 언급되는 회개, 개선된 모습 없어

한국교회가 보여준 진정한 회개의 몸짓은 구체적 어떠했는가? 주교단의 메시지에서만 회개가 언급되고 있을 뿐, 새천년이 7년이 지난 오늘의 교회 모습은 여전히 변화되고 개선된 모습을 보기 어렵다. 오히려 과오를 저질렀던 제도교회를 벗어나 민중의 아픔을 나누며 투신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격려는커녕 여전히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2000년 이후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운동, 불평등한 소파(SOFA) 개정투쟁, 민족의 분단과 평화를 가로막는 영구 미군기지 이전을 위해 강제철거 감행에 대한 평택 대추리 투쟁, 생명과 환경을 위한 새만금 보호투쟁… 등등의 참된 평화 쇄신운동에 투신하는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에게 냉대했던 한국 고위성직자들의 무관심은 이제 회개의 대상이 될 것이다.

결정권이 있는 고위 사목자들은 제도교회 보호-확장의 의지만 있지, 민주화-복음화에는 관심도 없고 회피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근래에 제도교회를 떠나는 신자(냉담자)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은 없고 기존 틀과 의식 안에서 안타까운 표정만 짓고 있다. 교황청 문헌의 세상 복음화를 단지 제도교회 보존 내지 확장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시대의 징표를 잘 읽어야

“천당에 가기 위해, 개인의 구원을 위해 신앙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선교 정신은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골동품 같은 소리이다. 세상 전체와 교회가 통교 내지 일치하는 가운데 복음화는 진행되어야 한다. 그나마 한국교회가 분단된 조국에서 선교의 폭이 넓어지고, 국민들이 신뢰를 얻어 전교율이 높아진 이면에는 사회정의, 민족통일, 인권회복, 사회복지에 투신하는 물결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최고 교권자들은 이런 시대의 징표와 흐름을 인식하고 현장에서 투신하는 이들에게 격려와 후원과 기도를 해야 한다. ‘화해와 쇄신’이란 주교단의 메시지가 체면유지를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면, 지난 7년간 있었던 사회와 민중 구원 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에게 감사와 용기를 표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참된 회개와 쇄신, 개혁은 기득권을 가진 자에게서 일어난 적은 거의 없다. 민중의 함성, 그들의 고뇌와 부르짖음 속에서 쇄신과 개혁은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다. 이 기회에 주교회의 메시지는 사제, 평신도, 수도자에게 살아 생생히 움직이는 실천을 내포하는 교도권으로 이해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안승길 200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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