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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참 좋은 계절, 탈핵을 생각하며[시사비평 - 박병상]

아직 한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걸으면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이맘때 하늘이 참 파랗다는 거 새삼스레 느끼고 도시 주변에 푸른 산이 드리워 있다는 사실이 고마워진다. 그 사이사이 육식동물 송곳니처럼 솟은 고층 아파트들이 볼썽사납지만.

파란 하늘이지만 그 둘레는 여전히 뿌옇다. 대기오염이겠지. 자동차와 산업 단지에서 쏟아내는 대기오염 물질에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단지마다 적잖은 오염물질을 보탤 텐데, 화력발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막대한 석유와 전기를 소비하는 한 오염물질은 하늘을 더럽힐 수밖에 없는데, 핵발전소는 과연 대기오염 물질 배출이 없을까? 그리 주장하는 이 없지 않지만 사실과 다르다. 발전소 건설과 폐기 과정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도 대단하지만 핵연료를 채굴, 정제, 가공, 폐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염물질은 막대하면서 치명적이다.

이 가을 ‘생명탈핵실크로드’ 대장정을 걷는 이원영 선생은 어디쯤에 있을까? 지난 13일 라오스를 지나 14일 타이로 들어갔다고 하니 아직 타이 땅을 걷고 있을까? 거긴 제법 더울 텐데. 베트남을 걸을 때 무척 고생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타이가 아열대 지역이지만 가을로 접어드니 걷기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지난 5월 3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세종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고유제를 지낸 ‘생명, 탈핵 실크로드 추진위원회’는 2019년 4월 19일 바티칸에서 회향할 예정으로 첫발을 뗐다. 그날 서울 일정을 함께 걷고 돌아선 나는 그저 성원만 할 뿐인데, 동갑인 이원영 선생은 오늘도 걷는다.

1960년대 청년이던 사티쉬 쿠마르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꿈꾸며 홀홀단신 무일푼으로 인도를 출발, 2년 8개월 동안 유럽과 러시아를 지나 미국까지 걸었다. 평화를 염원하는 녹색 순례였다. 그 과정에 핵무기를 보유하는 국가의 권력자들은 애써 모르는 체했지만 패권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민중은 달랐다. 차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사티쉬 쿠마르에 차 상자를 내주며 아래처럼 마음을 보탰다.

“이 차들을 소련 서기장과 프랑스 대통령, 영국 총리 그리고 미국 대통령에게 전해 주세요. 만약 핵폭탄 발사 단추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면 잠깐만 모든 행동을 멈추고 이 차를 한잔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차를 마시는 동안 폭탄 아닌 빵, 죽음 아닌 삶을 원하는 평범한 우리들을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을 하늘과 고층 아파트 (이미지 출처 = Flikr)

5월 3일 이원영 선생이 읽은 고유문은 “오늘 저희는 ‘생명, 탈핵의 깃발을 들고 서울에서 바티칸까지 스물여섯 나라, 1만 1000킬로미터를 걷는 도보순례의 장정을 출발하려 하나이다”라며 천지신명께 알렸다. “생명존중, 탈핵안전의 믿음 하나에 나선 저희 순례단의 한 걸음 한 걸음에 힘과 용기를 주시옵소서” 덧붙이면서. 한 사람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큰 울림으로 세계의 민중의 마음에 스며들 게 틀림없다.

탈핵을 희망하는 도보 순례는 핵발전소가 위험스레 운전되고 있는 영광에도, 새로 들어서려는 핵발전소를 막아 내려는 삼척에도 진행되었고 탈핵을 염원하는 시민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다음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를 이 땅에서 몰아내야 하는 절박한 마음의 발로다. 그 순례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에게 고맙고 함께 걷지 못해 죄스럽다.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애국가 3절이다. 그렇게 높고 깨끗했던 우리 가을 하늘은 시방 실종되었다. 잠시 청명하더라도 예전만 못하다. 게다가 요즘은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배달된다. 하지만 미세먼지는 우리 땅에서 더욱 많이 나와 코와 폐를 자극한다. 어떤 마스크도 완벽하게 차단하지 못하는 초미세먼지는 화력발전소 굴뚝에서 걷잡을 수 없게 쏟아진다. 전기를 지금처럼 과다하게 쓴다면 결코 피할 수 없다.

하늘이 청명해지면서 결혼식이 많다. 하루 세 차례 얼굴을 내밀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곧 새 생명이 태어나겠지. 태어난 생명에게 우리는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를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 생각을 담고 오늘도 동네를 걷는데, 중국발 미세먼지가 발목을 잡는다. 내년 봄 이후가 벌써부터 걱정이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 환경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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