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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소설 - 만약에서 현실로[몽글이의 과학다반사]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은 공상과학소설과 구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래 세계, 우주 공간 그리고 외계인과 같이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내용들이 들어가면 과학소설은 공상소설(fantasy)과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가지 차이점을 느끼기 위해 예를 들면 스타워즈는 공상소설 장르지만 스타트랙은 과학소설에 포함된다. 다양한 소설과 영화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 작품들도 있기도 하고 한 작품 안에서도 과학소설의 요소와 공상소설의 요소가 섞여 있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과학소설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보려 한다.

개인적으로 과학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작품으로 "익스팬스"(The Expanse,)란 작품을 소개하고 싶다. 미래 세상에 지구와 식민지 화성 그리고 자원을 얻기 위해 소행성에 사람들이 살게 되지만 오랜 식민지 형성을 통해 개별 자치 정부를 만들게 된다. 그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을 다루는 내용이다. 만약 지구의 사람들이 화성에서 살거나 태어난다면 화성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신체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만약 화성인들이 지구에 방문하게 된다면 어떤 물리적 생리적 변화를 경험하게 될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과학소설은 만약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만약 기술이 발달해서 화성을 식민지로 만들 수 있게 된다면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변화를 과학적 근거를 통해서 설명하고 그리는 것이다. 스타트랙도 만약 우주 공간에서의 이동 기술이 발전한다면 가능한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게 된다. 화면에서 보는 순간이동이나 워프 공간이동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 보기도 하지만 소립자 세계에서는 양자 순간이동을 실험하기도 하고 우주론에서는 우주 공간에서의 빠르게 이동하는 가능성에 대해서 불가능이라 말하지 않는다. 반면 스타워즈는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이 힘든 ‘포스’의 존재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과학소설이라 쉽게 부르기 어렵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좋은 내용이다. 만약 복제 인간이 존재하게 된다면, 만약 어떤 이가 5분 뒤의 미래를 계속 예측할 수 있다면, 인간의 세상이 사실은 소프트웨어의 조정에 의해 이루어진 허상의 세상이라면, 그 모든 가정이 비현실적이지만 절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생명체의 복제 기술은 현실화되어 가고 유전자 편집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인간은 없지만 인간 심리 및 다양한 대규모 데이터를 통해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려고 한다. 또한 물질의 구성이 없이 소프트웨어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의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영화 '임포스터'(2001) 스틸이미지. (이미지 제공 = 태원엔터테인먼트)

과학소설의 많은 내용들은 기술의 발전과 그 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다양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된다. 외계인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지금 외계인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기술이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할 수 있다. 처음이 어렵지 누군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세상이 그려지면 과학소설은 기술이 발전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세상이 된다.

많은 과학소설 작가들이 있지만 필립 K 딕이란 작가를 통해 과학소설의 의미를 찾아보고 싶다. 필립 K 딕의 책은 잘 알려지지 않아도 그 책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 제목을 열거하면 한두 개쯤은 모두 알게 된다. '토탈 리콜'(1990, 2012), '임포스터'(2001),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 '넥스트'(2007), '페이첵'(2003), '스캐너 다클리'(2006), '컨트롤러'(2011) 그리고 새롭게 개봉하는 '블레이드 러너'(1982, 2017) 등이 있다. 

필립 K 딕은 인간의 기술이 어떻게 인간을 소외시켜 가는지 보여 주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두 좋은 기술이라고 인정하는 기술들이 있어도 그 기술에 의해 피해당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인류를 위한 기술이 인간의 정체성을 사라지게 하고 반대로 인간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들을 보여 주기도 한다. 과학소설 안에는 인류를 위해 기술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이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의 선하지 못한 목적으로 결국 인간을 파괴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부분 아직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기술들이지만 만약 가능해진다면 생각할 수 있는 변화된 모습을 과학소설 작가들이 대신 그려 준다.

좋은 과학소설은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좋은 청사진을 보여 줄 수 있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술의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을 항상 보여 준다. 그래서 자연의 모습을 가장 잘 설명하려는 과학의 영역보다는 과학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을 응용해 만든 기술을 통해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보여 주는 과학소설은 오히려 과학기술소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 같다. 과학소설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과학기술의 상상을 하게 한다. 기술이 발전하며 스마트폰은 어떻게 변할지 컴퓨터는 어떤 모습이 될지 달에 사람들이 산다면 달과 지구 사이 통신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필립 K 딕의 과학소설은 잘 알려지지 않아도 영화로는 많이 알려졌다. (포스터 제공 =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컨트롤러',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페이첵', CJ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보여 주는 미래 세계의 기술이나 제품들이 하나둘씩 현실에서 만들어질 때 오히려 영화의 장면들이 동기부여가 되어 만들어진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은 설명의 학문이다. 자연에서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하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상상의 영역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상상한 내용이 지금 알고 있는 과학의 내용과 맞지 않다면 상상에서 끝내 버릴 수 있지만 만약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좀 더 알아보는 것이다. 그때 가정을 과학은 좀 더 있어 보이는 용어로 가설(hypothesis)이라 한다.

가설을 세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가설에 잘못된 증거들이 나오면 가설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은 과학의 의무다. 과학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이 중요하지만 그 가능성이 과학적 설명에 부합되지 않아 갑자기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소설이 결말지어지면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결국 허구의 소설이어도 과학소설이기 때문에 과학의 논리가 이야기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마르 7,27-29)

예수님조차 자신의 가설이 틀리면 바로 인정할 줄 아는 분이셨다. 신앙도 자신의 가설이 잘못되면 인정하고 고치는 것이다. 억지로 자신의 생각에 과학을 끼워 맞추려는 것은 망상일 뿐이다. 

 
 

몽글이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컴퓨터를 통해 통찰하고 싶은 
과학을 사랑하는 
곰 닮은 과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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