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교회로 가는 길 - 호인수]

오늘부터 격주 화요일에 호인수 신부의 '열린 교회로 가는 길'이 연재됩니다. 40년 원로사제로서 가진 교회에 대한 성찰을 사제들과 나누고자 정의구현사제단의 <빛두레>에 실은 글을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허락해 주신 호인수 신부와 <빛두레>에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과연 교회가 버리거나 바꿔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요? (지금여기 자료사진)

<빛두레> 편집자의 전화를 받고 사전을 뒤적여 쇄신이란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편지 한 장을 쓰더라도 단어의 뜻이 애매하거나 아리송하면 사전부터 찾는 저의 오랜 습관입니다.

쇄신 : 그릇된 것이나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롭게 함 (표준국어대사전, 실용국어사전)

<빛두레>가 왜 굳이 지금 ‘교회쇄신’을 말하려 하는지 그 의도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우리의 다난한 역사는 때때마다 위기요 기회가 아닌 적이 없었지만 지난해 촛불로부터 시작되어 오늘까지 이어지는 가히 혁명적이라 할 변화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절호의 기회라는 믿음을 한번 더 갖게 합니다. 장미대선 직후에 누군가가 나라가 바뀌는 데 하루면 되더라고 한 말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 바뀐 게 변화라면 변화의 전부인데 이렇게 대다수 국민들의 표정과 거리의 분위기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까지 했습니다.

새 대통령에게 내린 촛불민심의 명령은 나라를 새롭게 바꾸라는 것이었습니다. 바꾸는 것은 기존의 그릇되고 묵은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적폐의 청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 정부 출범 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며 응원하고 있지만 그 작업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오랜 관습과 관행들이 알고 보니 적폐였음을 스스로 인정하는(이것이 회개요 회심입니다.) 순진한 개인이나 집단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지탱해 준 기득권을 미련 없이 포기하는 착한 수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는 지금 청산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의 목숨 건 전장이 되었습니다. 협치와 일치를 구실로 개혁과 쇄신의 고삐를 놓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교회입니다. 스스로를 수구라고 내세우는 사람 외에 교회쇄신의 필요성과 절박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고여 있는 것은 필히 썩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인들의 열렬한 환호와 지지를 받는 교황은 전례 없이 강한 어조로 교회의 변화와 쇄신을 거듭 강조합니다. 뿐만 아니라 몸소 시범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우리의 교회는 도무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으니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과연 교회가 버리거나 바꿔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요? 깊은 성찰 없이 당연시하거나 무심했던 전통과 관습은 어떤 것들일까요?

교회는 수평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교리서는 교회공동체는 모두 평등한 하느님의 백성이라 가르치지만 현실의 교회는 분명 수직적인 조직입니다. 성직자는 명령하고 평신도는 복종합니다. 보다 더 큰 책임이 성직자에게 있습니다.

저는 40년을 일선의 말단 성직자로 살아왔습니다. 제게도 책임이 있음을 통감합니다. 저의 하찮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껏 우리가 버리지 못하는 그릇되고 낡은 것들을 나름 찬찬히 짚어 보려 합니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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