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주화 운동 배우겠다", 홍콩 정평위원 20여 명 방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고 배우러 왔습니다.”

홍콩 천주교회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20여 명이 지난 8월 19일부터 25일까지 한국을 방문하고, 한국의 주요한 민주주의 역사 현장과 평신도 단체를 찾았다.

19일 오전부터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 안산 세월호 합동 분향소와 기억교실, 위안부 수요집회 현장과 정의평화민주가톨릭행동 주최 광화문 세월호 미사,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을 방문한 이들은 빼곡한 일정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홍콩으로 돌아갔다.

이들의 한국 방문은 오래전부터 제안됐다. 정평위원들과 동행한 홍콩 콰이청 세례자요한 성당의 협력사제 공성식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는 “홍콩 사람들은 비교적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홍콩 상황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한국에 가서 배우고 싶다는 제안이 있었고, 촛불시위 이후 본격 추진됐다”고 설명했다.

올해 7월 1일 중국 반환 20주년을 맞은 홍콩은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다. 8월 20일에는 2014년 이른바 ‘우산혁명’ 이후 최대 인원이 모인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민주화 열기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우산혁명 뒤 약 3년 만에 시위가 시작된 것은 8월 16일 홍콩 고등법원이 우산혁명을 이끈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네이선 로 주석, 알렉스 차우 전 홍콩전상학생연회 비서장에 징역 6-8월의 실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2014년 ‘우산혁명’으로부터 현재의 상황은 중국정부가 1984년 반환협정 때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84년 12월 영국과 맺은 홍콩반환협정에서 홍콩에 자치권(고도의 자치) 부여, 50년간 자본주의 유지, 2017년 행정장관 직선, 독립적 사법제도 보장 등을 약속했다. 1997년 홍콩에 반환된 뒤에는 이에 따라 1인 1표 선거제를 시행했지만, 2014년 일방적이고 노골적으로 친중파만 출마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홍콩 선거는 1인, 1표의 보통선거가 아니라 간접, 직능대표제로 이뤄진다.

행정장관 직선제 시행을 앞두고 이를 압박하기 위한 시위가 2014년 7월 1일 반환 17주년을 맞아 시작됐지만 중국 정부는 2014년 8월, 2017년 행정장관 선출 투표는 하되, 후보는 중국이 추천하는 인사로 제한하고, 판사도 중국이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시민들의 저항은 거세졌고, 급기야 9월 중순부터는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동맹휴업으로 새로운 동력을 만들면서, 홍콩행정청 앞 광장을 점거했다. 총으로 무장하고, 고무탄을 쏘는 경찰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 내며 약 79일을 이어갔지만, ‘우산혁명’은 12월 15일 사실상 끝을 맺었다.

▲ 천주교인권위원회에서. 이들은 한국에서도 "구속자 석방"을 외친다. (사진 제공 = 홍콩 정평위)

공 신부는 현재 홍콩 상황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명박 정권에서 노태우 정권 시절로 가는 셈이라면서, “정치적으로도 어렵지만 그 때문에 정 많고 평화롭게 살던 홍콩 시민들의 삶이 극단적 자본주의와 독재로 경제적, 정서적으로도 각박해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중국에서 파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른바 ‘흑경’들이 시위하는 시민들을 폭행, 연행하고 시위대 속에서 ‘프락치’처럼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교란시키고 있다며, “앞으로 홍콩이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이지만,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홍콩 정평위 전 간사 웡윅칭 씨는 “정부는 민주화세력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갖고 있다. 예전 한국에 보도지침이 있었던 것처럼 홍콩에서도 자본력(투자)을 동원해 언론을 장악하고 지침을 내리고 있다”면서, “우산혁명 뒤부터 중국은 다양한 수단으로 홍콩 사회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화 인사들은 계속 법정에서 실형을 받고, 구속되고 있으며, 시위는 언론이 갈등을 조장해 어렵다”고 말했다.

정평위원 곽취아 씨는 “이번에 한국 현장을 돌아보며 크게 반성한 것이 있다”며, “영국과 중국이 반환협정을 할 때, 중국이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한 약속을 너무 쉽게 믿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입법회 의원 선출과 행정장관 직선제 선출을 보장하고 국방과 외교 외에는 일국양체제를 인정하겠다고 했지만 현재는 모든 것을 중국이 다방면으로 장악하고 있다”며, “홍콩 시민들은 여러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감, 중국 정부에 속았다는 분노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평위원으로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말하며, “수적으로 적기 때문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다른 시민단체와 연대하고 있지만, 교회는 민주화와 시민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그리고 비폭력, 평화적 방법을 지킬 것”이라면서 홍콩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교회의 복음 정신을 녹이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또 교회 차원에서 현 하치싱 보좌주교가 협력하고 있고 은퇴한 젠제키운 추기경은 특히 많은 지지와 도움을 주고 있다고 했다. 젠제키운 추기경은 영국 지배 시절부터 인권운동에 앞장섰으며, 우산혁명 때에도 참석해 시민들을 독려했다.

▲ 방문 둘째 날, 정평위원들은 안산 세월호 합동분향소와 기억교실을 찾았다. (사진 제공 = 홍콩 정평위)

홍콩 정평위 현 간사 재키 헝 씨는 “홍콩의 사회, 정치 환경이 망가지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10년 전까지도 시위나 사회운동을 이유로 감옥에 가는 일은 없었는데, 지금은 20-30명이 이미 잡혀갔고, 50-60명이 더 잡혀갈 것으로 보인다”며 걱정했다.

헝 씨는 “시민들은 평화적인 방법을 지키면서 민주화와 직선제를 한목소리로 외쳤지만 정부가 듣지 않아 특히 젊은이들이 실의에 빠졌다”며, 그 중 일부는 정부의 폭력적 진압에 폭력으로 대응하기 시작했으며, 급기아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정평위를 비롯한 시민들은 끝까지 평화적으로 싸울 것”이라며, “홍콩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알려 달라. 홍콩을 외롭게 두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홍콩 교회는 8월 31일 시국미사를 열고 홍콩의 민주화와 구속자 석방을 촉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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