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식의 포토에세이]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 72주년 경축사에서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고통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강제동원의 실상이 부분적으로 밝혀졌지만 아직 그 피해의 규모가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은 그것 대로 풀어 나가고, 미흡한 부분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마저 해결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해방 뒤에도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이 많습니다. 재일동포의 경우 국적을 불문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고향 방문을 정상화할 것입니다. 지금도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곳곳에 강제이주와 동원이 남긴 상처가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과도 동포의 정을 함께 나누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처음으로 광복절 경축사에서 사할린 동포를 언급한 것입니다.
사할린 동포들의 이주의 역사는 19세기 말에 이뤄졌습니다. 이들은 대개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에서 살다가 북사할린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것은 1930년 말입니다. 사할린의 노동력을 위해 일제의 강제 이주 정책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할린 동포들은 조선에서부터 기차와 배를 타고 사할린에 도착하여 비행장과 벌목장, 탄광과 도로공사 등의 강제 노역 장소로 끌려갔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은 혹독한 추위와 차별 그리고 높은 노동 강도, 굶주림과 싸워야 했습니다. 노역장에서 병들거나 부상을 당하면 굶어 죽을 때까지 특별한 장소에 가두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시신은 수습하지 않고, 방치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종전이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본토에서 보낸 배를 타고 귀환했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은 남사할린 코르사코프항으로 몰려왔습니다. 자신들을 태우고 조국으로 싣고 갈 배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배는 오질 않았습니다. 동포들은 코르사코프 항구 언덕에 올라 4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홋카이도를 바라보며 자신들을 싣고 갈 배를 기다리다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정신병자로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숨져 갔습니다. 동포들은 이 언덕을 ‘망향의 언덕’이라고 불렀습니다. 홋카이도 신문에 의하면 1945년 8월 15일 현재 한인들은 4만 명이 넘게 사할린에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할린 동포들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것은 일본의 무책임과 조국의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인들이 본토로 귀국하자 사할린에서의 노동력이 절대 부족한 탓에 소련 정부가 한인들을 ‘무국적자’로 분류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련은 1938년 국적법을 개정하여 소련 영토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그가 외국인임을 입증하지 않으면 무국적자로 간주하는 것으로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였습니다.
광복 72주년이자 동시에 분단 72년을 맞았습니다. 분단은 한반도의 제 모순의 뿌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뿌리 속에는 일제 강점기 때 강제 동원된 동포들의 아픔이 녹아 있습니다. 특히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사할린 동포들의 아픔이 녹아 있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사할린 동포들의 슬픈 유민의 역사를 기록하고, 그들의 피 맺힌 한을 풀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역사적 책무인 것입니다.
장영식(라파엘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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