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 모든 창조물에 담아두신 치유의 힘을 축복하며 구원의 희망을 일깨운다

▲ 그리스도의 육화와 승천과 같이 어머니 또한.... (이미지 출처 = 동방정교회 이콘)

연약한 인간의 삶에 하느님의 사랑, 온전함을 향한 희망을 보여 주는 날, 성모 승천 대축일은 동서교회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축일이다.

451년 칼체돈공의회 이전부터 동방교회에서는 몸이 그대로 하늘에 들어 올려지신 성모님의 축일을 지냈고, 서방교회에서는 7세기 이후부터 전해져서 1950년 11월 1일에 교황 비오 12세께서 믿을 만한 교리로 선포했다.

이 성모님의 축일은 대지와 어머니에게 감사드리는 풍습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대지를 축복하고, 약초들을 봉헌하고 축성하는 풍습이다.

예전 독일 남부에서는 8월 15일부터 9월 13일까지 30일간을 "여성의(어머니의) 30일"이라 하여 성모 마리아께 기도를 드리고 묵상하던 시기였다 한다. 오늘날에도 많은 신자들이 이 시기에 성모성지를 순례하고 있는데, 전해 오는 성담에 따르면 이 시기에 성모 마리아께서는 땅을 축복하신다. 모든 것이 영글고 거두어지는 가을을 향해 가는 시기였던 것.

▲ 성모 승천 대축일에 행하는 약초 축성 모습. (사진 출처 = 박유미)

성모 승천 대축일에 약초 봉헌과 축성이 이어졌던 것은 전해 내려오는 또 다른 성담과도 연결된다. 

마리아께서 돌아가신 지 3일 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어머니의 주검을 하늘로 모셔 가려 했을 때, 제자들이 마리아의 무덤을 보았을 때엔, 마리아의 시신을 둘러쌌던 천막만 있었을 뿐 무덤은 비어 있고 특별한 향이 가득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특별한 향이 아니라 장미향과 특정한 꽃향기들이 가득했다고 하기도 하고, 들판에 피어 있던 온갖 약초의 향으로 가득했다고 전해져 오기도 한다.

▲ 쾰른 마리아리스 성당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 약초 축성 모습. (사진 출처 = 박유미)
하지만 약초봉헌/축성은 또한 그리스도교 이전의 풍습을 그리스도교화(토착화)한 것이기도 하다.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병을 고치는 약초들을 주신 대지에 감사하는 풍습들이 있었는데, 고대의 게르만족들은 약초 채취를 주술적-우주적 신앙의 한 형태로 여겼다. 그리고 기능에 따라 각각의 약초들을 특정한 신의 보호 아래 두었었다. 해당 신께 봉헌하면서 그 약초의 효과가 더욱 강해지기를 바라며 축성하기도 했다.

'성 요한의 풀'이라 불리는 하지 무렵에 채취하는 풀, 서양 고추나물만이 거의 유일한 예외라 할 수 있을 뿐, 많이 쓰이는 좋은 약초들 대부분은 성모 승천일 즈음에 채취하게 된다. 그래서 중세 초기 유럽 지역을 그리스도교화하면서 그 시기에 있는 성모 승천 대축일에 이런 풍습을 담아 그리스도교적 풍습으로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교 이전 풍습을 그리스교화했던 약초축성제에 대해서는 이미 5세기경부터 전해지고 있었는데, 대략 9세기경부터는 이 약초축성제가 마리아축제와 연결되었다.

약초 다발은 상징적인 숫자로 묶어 만드는데, 보통 7종류의 약초를 묶어 다발을 만들어 축성했다. 때로는 9, 12, 15, 19 또는 77종류의 약초들을 묶어 만들기도 했다. 몇 종류의 약초를 묶느냐에 따라 묶는 약초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독일 중부 라인 지역에서는 어느 경우에나 '왕의 촛불'이라 불리는 우단 담배풀(모예초)을 중심에 두고 다른 약초들을 묶는다고 한다.

성모 승천일에 약초 축성과 대지의 축성례를 연결한 것은 신학적으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 성모 승천 대축일에 축성 받을 약초 다발. (사진 출처 = 박유미)
성모님은 하느님의 선택을 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티없는 분으로서 하느님(성령)을 당신 안에 받아들여 하느님 창조의 뜻에 따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창조물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도록 하셨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당신 안에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따라 평생을 사셨다. 하느님께서도 성모님이 이 세상 삶을 마치셨을 때 몸과 영혼이 분리됨 없이 온전한 인간으로 천상에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성모님은 이제 천상의 영광 안에서 땅 위의 모든 것을 천상에 중재하시고 하느님 사랑의 뜻, 그 사랑으로 세우신 질서 안에서 모든 것이 온전하게 되도록 도와주고 계신다.

이날 축성되는 약초들은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되리라는 믿음 안에서 몸과 영혼이 모두 온전하게 치유되고 온전히 구원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약초들이 그분의 모범처럼 그렇게 우리의 몸과 마음, 몸과 영혼을 치유하도록 축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들 약초들이 자라는 대지를 축복하여 이 땅의 모든 것을 축복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승천과 대지와 약초 축성은 바로, 인간인 성모님이 하느님 구원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삶으로써 죽음을 넘어 하늘에 올라 온전한 구원에 이르셨듯이, 그분의 모범 안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치유의 약초가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는 뜻이 또한 담겨 있다.

▲ 성모 승천 대축일에 약초 축성 행렬. (사진 출처 = 박유미)

그래서 옛 분들은 이렇게 곡식이 영글고 자연이 가장 화려하게 꽃피는 시기에 성모 마리아의 축제를 지내며 '꽃들의 여왕', '곡식, 과일들의 보호자', '포도의 마돈나', '알곡의 어머니', 그리고 '거룩하고 선한 대지(농지)' '들판의 꽃이요 계곡의 백합' 이라 성모 마리아를 부르고 공경했었다. 모든 창조물의 구원을 중재하신 어머니이시기에, 예수님의 삶에 함께하며 온전히 그 뜻을 이루도록 삶을 바쳤기에 인간으로서 가장 큰 영예의 관을 받으신 날, 그렇게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신 분의 길을 기억하고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범을 따를 것을 다짐한다.

자연, 생명의 힘이 파괴되는 현실에 한동안 잊혀지던 이 풍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요즘, "Laudato si, 찬미받으소서!" 자연에 담긴 하느님 사랑의 힘, 치유의 힘을 더욱 찾고 보존하도록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는 시대에,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시도록 땅 위에서 하느님을 당신 안에 받아들이셨던 성모님, 당신의 온 생애와 천상의 영광 안에서 땅 위의 모든 것을 천상에 중재하시고, 하느님 사랑의 뜻, 그 사랑으로 세우신 질서 안에서 온전하게 되도록 도와주는 어머니 마리아를 기리고 그 의미를 새기면서 성모 승천을 돌아본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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