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티에레스 신부] 8월 20일(연중 제20주일) 마태 15,21-28

마태오 복음은 곳곳에서 이 복음서가 유대의 강력한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쓰여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이교 세계와의 관계가 중대하고 의미심장한 주제로 자리 잡는다.

모든 국가들에게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나라 선포가 보편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 문제가 역사 속에서 잘 해결되어 왔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이다. 오늘 성서를 보면, 장소와 신학의 문제가 부딪치고 있다. 페니키아(혹은 가나안)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가 이교도 땅에서 진행된다: “티로와 시돈 지방”(마태 15,21)이다. 당신의 백성 울타리 바깥에 예수님이 등장하신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대화는 거칠다. 주님은 여인의 청을 거부하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15,24)이라고 대답하신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은 그 여인의 청을 받아들이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 메시지의 갑작스러운 떠밀기 전략이다. 마태오 복음서가 쓰여졌던 때를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예수님의 복음은 또한 이교도들에게도 선포되고 있다.

이러한 열린 태도가 마태오 복음서의 중심주제다.(마태 28,19) 이것은 또한 바오로 사도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서간 제9장과 11장에서 한 가지 충고를 하며 강조한 주제다. 즉, 만일 유대인들이 그들 자신이 특권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이교도들도 특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다 평등하다. 제1독서는 이미 예언자들이 지니고 있었던 보편적 관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느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사 56,7)이기 때문에, 그 집은 모든 백성들의 집이다.

마태오의 다양한 교회체험은 예수 메시지의 보편성을 확인하도록 이끈다. 점차, 마태오 공동체의 일부를 이루었던 유대인들은 이 보편적 관점에 열리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성에 관하여 우리 자신이 편협한 마음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자주 마치 우리가 복음서의 사적 주인인 것처럼 느낄 때가 많고 우리 자신의 관습과 문화들을 예수님의 메시지와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다른 문화권의 관점으로부터 복음을 사는 권리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갖고 믿는 것과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것은 두 개의 다른 문제다.

▲ '가나안 여인의 믿음', 장 제르맹 드루에. (1784)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영적 투쟁

배타주의와 보편주의 사이의 논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 사이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이 대화에는 다른 측면들이 있다. 여인의 겸손함과 비방어적 집요함에 감동을 받지 않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여인은 예수님을 “다윗의 아들”(15,22)이라고 부르면서 시작했는데, 이미 예수님에 대하여 무엇인가 알고 있는 것이다. 마태오는 그 여인이 소리치는 것을 보여 준다. 여인이 너무나 끈기 있게 외치므로 제자들은 주님께 그 여인을 쫓아 보내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며 대화를 시작하신다. 예수님의 부정적 대답은 당시 유다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통 지니고 있는 소견과 일치되는 정도였는데, 여인은 여전히 고집을 부리고 있다. 예수님은 여전히 탐탁치 않은 응수를 하고 계신다. 그러나 여인은 겁을 먹지 않고, 자신의 청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오히려 논쟁을 대범하게 이용한다.

가르치는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 예수님은 마침내 당신의 부정적인 대답에 끈질기게 응답해 온 여인의 겸손을 받아들인다. 실상, 예수님은 이교도 여인의 신앙을 찬탄과 기쁨으로 인정했다.(15,28) 주님은 이 여인을 믿는 이들에게 모범으로 제시하신다. 특히 자신들의 종교관을 함께 나누지 않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이 여인을 모범으로 내놓으신다. 만일 우리가 모든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거부한다면, 우리의 영적 투쟁은 더 이상 계속될 수 없다.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신부
1928년 페루 리마 출생. 의대를 졸업한 뒤에 사제로 살기로 결단했다. 사제가 된 뒤에는 리마 가톨릭대학에서 신학과 사회과학을 가르치면서 리마 빈민지역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목을 했다.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로 빈민의 관점에서 복음을 증거해 왔다. 주요 저술로는 "해방신학"(1971)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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