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신학과 영성 신앙생활 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소피아와 그의 세 딸 믿음, 희망, 사랑에 대한 공경[삶이 담긴 전례력을 따라 - 박유미]

그리스도의 여성적인 모습? 고통받는 여성들에 대한 위로와 보호

태양이 작렬하는 뜨거운 8월을 시작하는 첫날, 하느님을 향해 가는 삼덕, 믿음(피데스), 희망(스페스), 사랑(카리타스) 성녀들을 기리는 축일이 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지혜)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1코린 13,12-13)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영원의 상하에서 나 지혜가 온전히 인식되리라'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체화하고, 주님을 향하는 삶을 체화해서 이루도록 삼덕을 딸들의 이름으로 지었던 어머니 소피아의 지향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 소피아와 믿음, 희망, 사랑 - 모스크바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소장.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전승에 따르면 믿음, 희망, 사랑은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117-138 재위)의 박해 때 치명한 세 소녀다. 상당한 재력을 지녔던 밀라노 출신 지혜(소피아)의 딸들이다. 소피아는 남편이 사망한 뒤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고 딸들과 로마로 가서 치명했다. 135년경으로 추정한다. 당시 12살, 10살, 9살의 어린 딸들은 어머니 소피아가 보는 앞에서 순교했다. 매질과 뜨거운 물 등 모진 고문을 받았으나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자 목을 베었다고 한다. 그 이후 어머니 소피아도 딸들과 함께 천상으로 갔다. 순교를 했다고도 하고, 딸들의 무덤을 지키다가 3일 뒤에 죽음을 맞았다는 전승도 있다. 믿음, 희망, 사랑은 로마에 묻혔는데, 비아 아피아의 칼릭스투스 카타콤바에 묻혔다고도 하고, 그리스 이름 푯말과 함께 비아 아우렐리아에 묻혔다고도 한다.

소피아와 세 딸 피데스(믿음), 스페스(희망), 카리타스(사랑)에 대한 공경은 6세기경 비잔틴 쪽에서 소피아 공경이 커지고 소피아 대성당을 지으면서 퍼져 가기 시작했는데 자연과 자연신에 대한 토착민들의 신앙에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담아 전하는 인격화된 모습으로 전파되었다.

   
▲ 소피아와 믿음, 희망, 사랑. (이미지 제공 = 박유미)
어머니 소피아 축일은 9월 말에 있어 다시 한번 그 의미를 깊이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믿음, 희망, 사랑 세 딸의 축일과 구분되는 특별한 역사적 과정이 있다. 로마제국의 확장으로부터 비잔틴 황제의 활동이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축복을 주는 제사장처럼 연결해 주는 한편 그리스도의 형상이 강조되었던 그리스를 거쳐 동방 비잔틴으로 가면서 소피아-마리아의 형상화로 특히 비잔틴 자연, 창조물들의 어머니이며 안내자로서 더더욱 신자들에게 가까이 가고 공경을 받게 된 것이다. 동방 소피아 전례는 황제의 위치를 중요하게 연결하기도 하지만, 세상 모든 죄악과 고통에도 구원으로 이끄는 구원사 안에서의 하느님 사랑과 118장과 같이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찬미하였다.

동방정교의 모든 곳들, 러시아 정교, 그리스 정교, 불가리아 정교, 아르메니아 정교 등 모든 곳이 소피아 대성당의 이름으로 수도의 이름을 정하거나 이와 같은 형태의 성전을 짓고, 이콘을 그려 모범을 기렸다.

반면 중서부 유럽에서는 소피아의 세 딸 믿음, 희망, 사랑을 하나의 그룹으로 공경하는 것이 더 두드러졌다. 전승에 따르면 778년 스트라스부르의 주교 레미기우스가 이들 세 딸의 유해 일부를 알자스 지역의 에사우로 옮겨 오면서 이들에 대한 공경이 중서부 유럽으로 펴져 가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제국으로부터 신성로마제국으로 그리스도교의 확장이 이어지던 시기다. 중서부 유럽에서의 이들에 대한 공경은 로마에서 이들을 공경하던 신학적 의미와 연결되어 있었다. 샤를 대제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교황 레오 3세는 소피아 미사전례를 만들어 눈 앞에서 딸들이 치명한 것을 바라보고 3일 뒤 죽음을 맞은 어머니 소피아의 믿음과 삶을 기렸는데, 이후 위기와 고통의 시간들에 이 소피아 미사를 드렸다.

   
▲ Rosa mystica - 믿음, 희망 사랑 - 독일 쾰른 교구 바일러스비스트 성당. (사진 제공 = 박유미)
12-13세기에 확대되었던 이들 믿음, 희망, 사랑 삼덕의 성녀에 대한 공경이 16세기에 특히 널리 펴졌다. 특히 모젤 강 이북, 라인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었다. 종교개혁시기, 많은 곳에서 성화와 성인들의 유골이 모독을 당하고 파괴되던 시기. 이 시기에 부활절 월요일에 많은 이들이 이들 성덕 세 자매의 성상이나 성화 앞에 순례를 와서 참배하고 기도하였고, 30년 전쟁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던 시기에도 이들을 찾는 순례행렬이 이어졌다. 쾰른 교구에서는 대주교의 인장에 이들의 모습이 들어갈 정도로 이들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다.

초기에는 본당보다는 궁정 내 경당이나 길가의 경당, 제대 등에 이들의 성상과 성화가 들어가 있었다면 18, 19세기에는 이들 삼덕을 이들을 주보로 하는 성당들이 많이 세워졌다.

오늘날 학자들은 믿음, 희망, 사랑 거룩한 삼덕의 성녀 그룹은 로마시대 세 명으로 이루어진 거룩한 어머니들, 풍요의 여신들을 그리스도교의 신앙으로 이해하도록 토착화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우리의 삼신 할머니와 같이 어느 곳에나 생명과 생산을 풍요롭게 하고 삶을 지키는 토착화된 여성 신의 모습들을 이들 안에 담아 구원을 향한 길에 위로와 모범으로 삼았던 것이다.

   
▲ 소피아와 믿음, 희망, 사랑. (사진 제공 = 박유미)

8월 1일은 켈트족의 추수감사절이기도 했다.

한편 이들 거룩한 삼덕의 성인들에 대한 공경의 역사를 보면, 그리스도의 여성적 모습이라기보다는 전쟁과 기근, 또한 마녀사냥이 있었던 시간들에 수많은 여성들의 고통, 삶의 고통과 고문, 그리고 굴종과 죽음의 싸움을 함께 하며 어머니와 같이 걱정, 근심을 덜어 주고 구원의 확신으로 위로하고 보호하는 모습으로 더 가깝게 공경을 받았다고 알 수 있다. 그리스도를 향해 가는 길에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 특히 그 안에서 더욱 힘겹게 싸우고 불굴의 힘으로 나아가는 여성들의 문제에 맞닿아 생명을 보호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과 위로의 근원이었다.

 
 

박유미 프리랜서(수산나)
서강대 사회학과, 독일 본, Friedrich-Wilhelm-Uni. 종교사회학 전공, 가톨릭사회론 제1 부전공, '빙엔의 힐데가르트 성녀에 대한 시대별 반향으로 본 교회와 사회와의 관계 연구'. 학문과 일상생활, 교회 안의 신앙생활과 일상의 간격에 다리를 잇는 교육과 프로그램에 깊은 관심이 있으며 전례력과 성인들의 가르침에 담긴 사회적 배경 인식과 성찰을 통해서 사회교리의 보편성과 사회영성 일상화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