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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과 영성
가만히 있지 마라. 방조자가 되지 말자[삶이 되는 앎, 중세 정치존재론 - 유대칠]
유대칠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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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1  10:2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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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캄의 정치존재론 읽기 6

많은 이들은 종교인에게 더 많은 도덕적 기준을 요구한다. 경우에 따라선 정치인에게 요구하는 도덕 기준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한다. 그래서인지 종교인이 보여주는 일탈은 더 큰 실망을 준다. 많은 이들은 보이지 않는 민중의 고통, 그 고통의 옆, 왠지 쉽사리 다가가기 힘든 그 고통의 옆에 종교가 있길 기대하고 있는지 모른다. 종교에게서 사익을 위해 애쓰는 악덕 기업체와 같은 모습을 본다면, 예를 들어, 이익을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괴롭히고,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약자들의 인권도 적당히 무시하고, 심지어 정당하지 않은 돈을 받는다면, 비록 전문 지식이 없다 해도, 종교가 그 있어야 한 곳에서 벗어나 타락했다 생각한다.

중세 의사들은 치료비를 두고 고민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사의 본질이다. 의사는 건강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건강 장사꾼이 아니다. 의사들은 자신이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고 걱정했다. 종교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종교인은 구원이나 해탈 장사꾼인가? 천국열차표를 파는 장사꾼인가? 종교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이러한 물음은 자연스럽게 교회란 무엇인가로 연결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란 누구인가?

종교개혁가 루터에게도 영향을 주었으며, 스스로는 오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가브리엘 빌은 이렇게 말한다. "참된 교회는 현실적으로 실존하는 모든 신자들의 무리"다. 빌에게 교회는 신자들의 무리다. 이때 신자라고 함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신앙을 가진 사람이 곧 교회다. 교회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신앙을 가진 사람이며, 더 정확하게는 신앙을 가진 사람의 무리다. 이러한 빌의 생각은 오캄에게서 기인한다. 오캄은 ‘신자들의 무리는 하나의 양 무리’라고 했다, 신자들의 무리가 곧 교회란 말이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 보자.

“‘교회적’이라는 말은 ‘교회’로부터 파생된 것이며 교회는 교황이나 성직자의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교회로부터 파생되었고, 교회는 ‘신자들의 무리’이며, 이는 ‘성직자’와 ‘평신도’, ‘남성’과 ‘여성’으로 파악된다.”

교회적인 것, 즉 교회와 관련된 것은 교황이나 성직자의 무리로부터 나온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엄밀하게 교회적인 것은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남성과 여성으로부터 여겨지는 신앙을 가진 이들의 무리에게 파생된 것이다. 결국 한마디로 교회는 신자들의 무리다. 신앙인의 무리다. 오캄에게 교회는 누구인가라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는 교회는 신앙인을 가진 이, 더 엄밀하게는 신앙을 가진 이의 무리라 할 것이다.

   
▲ 교회는 신앙을 가진 이의 무리다. ⓒ강한 기자

그러나 현실적으로 성직자와 교황의 권력은 존재한다. 그러면 이러한 권력의 범위가 한계를 넘어서 타락하지 않기 위해 신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가만히 기도하면서 그들의 타락을 막아 달라 하느님에게 해야 하는가? 오캄의 생각은 다르다. 교황의 권력의 본성과 그 한계에 대하여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분명 누군가는 교황의 권력에 의지하여 이익을 누리고 있을 것이고, 교황에 대한 의문과 감시 그 자체가 불신앙의 모습이라 강요할 수 있으며, 입법권자의 권한이라는 법의 논리를 내세워 침묵하게 할 수 있음을 본다. 하지만 오캄은 권력에 빠진 교회의 정화와 신자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본질에 더욱더 충실하기 위해 교회권력은 감시 대상이 되고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회 체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정화를 위해 이런 의심이 장려되어야 하고, 칭송받을 일이라 했다.

교회권력에 대한 감시와 의심이 허락되지 않는 곳, 바로 그러한 곳에서 종교는 부패하고 타락하기 시작한다. 국가권력 역시 끝없이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언제 부당한 권력을 배경으로 온갖 악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국가 권력자는 국가의 주인이 아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 혹은 민중이며, 이러한 본질이 망각될 때, 감시받지 않은 권력은 사악한 힘이 된다. 교회권력도 다르지 않다. 교회권력 역시 항상 감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권력의 본성은 무엇이고, 현실 공간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지 의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감시도 조사도 의심도 없는 곳에서 정의롭지 못한 교회는 합리적 의심 없는 맹목적 신자를 양성하려 할지 모른다.

가톨릭 사제와 수녀가 구속 기소되는 세상이 왔다. 목사가 성추행과 금전으로 구속되는 세상이 왔다. 과거 민주화를 위하여 투쟁한 사제와 목사의 경우와 다르다.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행복을 내려놓은 이들의 경우와 다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더욱더 많은 종교의 타락을 일상에서 경험한다. 이때 신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캄의 조언은 간단하다. 의심하고 감시해라. 합리적 의심 속에 타락을 경고해라. 교회는 성직자의 무리이며, 평신도는 그 무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남녀노소 모두다. 평신도는 교회의 외부가 아니다. 중심이다. 그 중심에서 분노하고 감시하고 의심해야 한다. 그것은 불신앙이 아닌 능동적 신앙인, 교회를 지키는 신앙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캄의 조언, 교회에 실망하며 슬퍼하는 시대, 생각해 봄 직하다. 교회의 타락 앞에서 가만히 있지 말라, 타락의 방조자가 되지 말자.

 
 
유대칠(암브로시오)
중세철학과 초기 근대철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그와 관련된 논문과 책을 적었다.
혼자만의 것으로 소유하기 위한 공부보다 공유를 위한 공부를 위해 노력 중이다.
현재 대구 오캄연구소에서 작은 고전 세미나와 연구 그리고 번역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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