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가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북한은 미국 동부까지 사정거리에 두는 ICBM을 개발하였다고 쾌재를 부르고 있고 미국은 더 이상 북한을 중국의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며 뭔가를 보여 주겠다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은 덩달아 긴장하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갑자기 없던 상황이 생긴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술력이 제고되는 것도 다 예상했던 일이다. 미국이 북핵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새삼스레 나온 정책이 아니다. 선제 공격설만 해도 몇 번이나 나왔던가. 그저 과거와 달라진 상황이라면 북한은 김정일이 죽고 나서 권력 기반도 판단력도 미약한 김정은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그리고 미국 역시 보수적인 공화당 정권 중에서도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정도다.

북, 미를 둘러싼 기본 여건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은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위협에 맞서 결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지 오래되었다. 미국은 핵 보유를 허용할 수 없으며 확대일로에 있는 중국의 세력에 대해서는 한미일 동맹을 통해 확실히 선을 긋고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본 입장은 김정일 정권과 김정은 정권이 다르지 않고 오바마 정권과 트럼프 정권이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와 관련한 결론은 예나 지금이나 간단하다. 미국은 북한 정권을 더 이상 위협하지 않고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면 된다. 사실 그것이 거의 합의에 이르렀던 것이 1994년 제네바 합의였다. 핵발전소 문제를 경수로 건설과 중유 제공으로 해결하고 무엇보다 그것을 통해 정치경제적 관계를 정상화함으로써 장차 대사급 외교 관계 수립까지 약속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합의 직후부터 주로 미국의 내부 문제로 삐걱거리기 시작하다가 결국 2001년 부시 정부의 등장으로 파기되고 말았다. 사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휴전 이후 최악의 여건은 부시 정부의 등장이었다. 부시 정부는 2002년 1월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선언하여 북한을 기겁하게 하더니 결국 그해 11월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사실상 제네바 협약을 종료시켰다. 북한은 이듬해 1월 NPT를 재탈퇴하였다. 한마디로 부시의 미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과거의 항미 체제로 되돌아가게 만든 것이다. 왜? 그것이 미국 보수주의자들이 원하는 바 그들의 프런티어를 형성해 주기 때문이다.

▲ 사드 (사진 출처 = Flickr)
후에 민주당의 오바마 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아시다시피 오바마 대통령은 소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정책에 따라 한반도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과거 클린턴 정부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거기에는 전략적 인내도 인내지만 그 사이에 괄목할 정도로 커진 중국의 영향력에 오바마 정부도 어떤 식으로든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새로운 사정도 있었다. 오바마는 한미일 3국 동맹으로 중국의 영향력 증대에 대비하려는 일본의 구상에 동의하였고 그 때문에 한국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본군 위안부 관련 합의를 하도록 박근혜 대통령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바마 자신도 그 효용을 신뢰할 수 없었을 사드 배치를 강행함으로써 한반도의 휴전선을 대중국 전선으로 활용하는 데에 동의하였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그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주문에 고개만 끄덕였을 뿐 아무런 입장이 없었다.

그 뒤 갑작스럽게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 등의 문제에 관한 한 마치 황희 정승처럼 좋은 게 좋은 쪽으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실제적 효용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그가 일단 전임 정부가 동의해 놓은 범위 안에서 무리하게 사태를 번복하지 않으려는 뜻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가 한반도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 한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북미 간 기본 여건을 어떻게 과감히 타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한쪽은 군사적 위협만 계속하고 다른 한쪽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그에 맞서기만 할 경우 사태의 해결은 백년하청이다.

결국 동시이행의 일괄타결밖에는 방법이 없다. 이것은 이미 오래전에 지어진 결론이다. 그런데 그동안 왜 그것을 못해 왔는가? 엄밀히 말해 미국이 그것을 '진정으로' 그리고 '일관성 있게'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에는 냉전시대 나름대로 그것을 구체화하기 어려운 여건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냉전의 구도는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아시아에는 어쩌면 준냉전이라 할 만한 미중 대치 구도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미국이 몸을 도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중국의 팽창을 위협으로 느끼면서 이 준냉전 구도가 한반도로 하여금 평화의 지역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를 꿈꾸는 일본은 말할 나위도 없다. 심지어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버티며 살아남는 것이 거의 유일한 목적이었던 북한마저 김정은 정권으로 바뀌면서 과연 그 목적이 순수한지 여부가 모호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고모부 장성택을 제거한 이후 김정은은 북한 군부의 사실상 인질이 되어 현재로서는 거의 군사적으로만 존립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이 국가 존립의 수단이기를 넘어 정권 유지의 수단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미국의 좌충우돌하는 트럼프 정권에 있어서는 모-순적(矛-盾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더 깊어질 시간이 필요하고 김정은 정권에 있어서는 핵과 미사일만으로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될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언제나 그러했듯 그것은 아주 긴 시간은 아닐 것이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결국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미국이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다. 즉 미국이 북한을 더 이상 위협하지 않고 북한과 정치 경제적 관계를 완전히 회복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미국으로서는 오바마도 선뜻 동의할 수 없었던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중국의 점증하는 위세 앞에서 과연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언젠가 민주당의 힐러리마저 한반도의 대치국면은 미국에도 필요한 것이라고 언급했으니 말이다.

현재 좌충우돌하고 있는 트럼프가 남북의 접근을 꺼려 하며 심지어 은근히 위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은 큰 문제는 아닐 것 같다. 그로서도 이 만만치 않은 극동의 상황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데에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훨씬 심각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주한미군이다. 주한미군이란 무엇인가? 잘 알다시피 주한미군은 북한의 남침에 따라 긴급히 이 땅에 재배치되었던 병력이다. 전쟁이 끝나고도 주한미군은 돌아가지 않았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었던 것이 이유이기도 했지만 미국으로서는 주한미군이 냉전 체제하 세계 관리의 중요한 보루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은 준냉전 체제의 긴요한 장치가 되어 가고 있다. 미국은 이 기왕의 장치를 일부러 제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보수정권에 있어서는 거의 신주단지가 되어 있는 이 장치를 제거한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 상황 변화가 앞으로의 문제 해결에 진짜 풀기 어려운 관건으로 작용할 것 같다.

▲ 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사진 출처 = eml.wikipedia.org)

그러나 사태는 이미 전개되고 말았다. 사드 사태는 결코 임시적이거나 우연적인 상황이 아니다. 사드는 매우 대표적이자 전형적인 상황이다. 중국은 이미 화가 단단히 나 있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제재 규모는 핵개발에 따른 유엔의 대북 제재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제재 규모와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큰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사드는 그냥 사드가 아니다. 주한미군 무력의 일환이다. 주한미군이 있었기에 사드 배치가 가능했지 주한미군이 없었다면 과연 그것이 가능했겠는가? 이제 우리는 주한미군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해야 할 단계에 있다. 그것이 지금도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는가? 1950년대와 60년대에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나도 바뀌었다. 2017년의 사드는 누가 뭐라 해도 미국의 대중국 무력이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의 변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쩌다가 이 땅이 이렇게 되었을까? 주한 미군이 불필요하게 너무 오래 주둔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주한미군은 거의 철수할 뻔 했던 적이 있었다. 바로 닉슨이 베트남전을 겪고 탈아시아 정책이라고 할 소위 닉슨 독트린을 선포한 뒤였다. 그 후 지미 카터 대통령은 구체적인 철수 계획까지 발표하였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실 그때가 철수의 적기였다. 전쟁이 끝나고 이미 20년을 훨씬 넘었을 때였다. 일찍이 당나라 군대도 명나라 군대도 그렇게 오랫동안 한반도에 주둔하지는 않았다. 박정희는 격렬히 반대했고 미국 내부도 반론이 일자 결국 카터는 주둔 규모의 축소로 후퇴하고 말았다. 이후부터 주한미군은 한국의 자주국방 정신만 해이케 하는 원천에 불과하였다. 이를테면 복거일은 주한미군이 자주국방에 비하면 엄청나게 값싼 국방수단임을 강조하였다. 값은 쌌는지 모르겠지만 거기에 한 나라의 제대로 된 국방정신이 깃드는 것은 난망했을 것이다. 그런 세월이 어언 60년이 넘었다.

물론 주한미군은 우리가 돌아가라고 하면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 존재다. 그러나 스스로 돌아가겠다고 하여 돌아가는 것과 주둔국의 요구로 돌아가는 것은 모양새가 다르다. 현 정황으로 볼 때 1970년대와 같은 기회가 다시 오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왜냐하면 현재 조성되고 있는 준냉전의 상황은 소련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냉전의 구도보다 훨씬 오래갈 것이고 훨씬 심각한 갈등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 운 없는 구도에 걸려든 것 같다. 우리가 왜 중국과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결 구도에 끼어들어 일찍이 토인비가 향후 천 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예언한 저 갈등의 첨예한 현장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가 왜 저 춘추 말기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끼어 눈치를 보다가 결국 가장 먼저 망한 저 진(陳)나라와 채(蔡)나라의 운명을 걱정해야 하는가? 8월 초에 이미 트럼프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말했다지 않는가? "전쟁을 할 수도 있다. 하더라도 저쪽(한반도)에서 하는 것이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저쪽에서 죽지 이쪽(미 본토)에서 죽지는 않으니까" 그의 말을 시비 잡아 무엇하겠는가? 바로 그것이 현재 미국의 생각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주한미군. 새 정부가 들어섰다고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큼 담대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지금은 온통 부작용만 낳으면서 단지 주권 제약요인으로만 남아 있는 이 애물단지는 결국 우리 국민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무거운 짐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이수태
저술가, 칼럼니스트, 전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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