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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인간성의 이름으로인간성의 이름으로―멘델
박한선  |  editor@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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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9  10: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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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박한선의 ‘세븐’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2017년 8월부터는 ‘인간성의 이름으로―멘델’ 제하의 칼럼을 연재합니다. 유전학과 생물학의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긴 그레고어 멘델. 그는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이면서, 아우구스띠노회 성 토마스 수도원의 수사이기도 했습니다. 평생 인간의 자유를 갈구해 온 그의 삶을 통해서,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자 합니다. - 필자
   
▲ 그레고어 멘델. 경제적 형편이 어렵던 멘델은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학문적 추구를 위한 안정적 기반을 얻는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1848년 성 토마스 수도원 소속의 수사 몇 명이 ‘인간성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보냅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입니다. 탄원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의회를 향한 것이었는데, 당시 제국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죠.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헌법을 만들라는 요구가 비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혼란스러운 시기라고 해도, 수사들이 수도원 외부의 세속 의회에 탄원서를 보내는 일은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19세기 유럽은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주장하는 개혁적 사상이 전역으로 퍼지고 있었습니다. 성 토마스 수도원이 위치한 브르노 지역도 예외는 아니었죠. 브르노는 독일과 체코의 중간에 있는데,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현재는 체코에 속해 있지만, 독일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브르노 지역도 동유럽 봉건주의의 오랜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이었죠.

브르노 지역에서 성 토마스 수도원은 학문의 중심이었습니다. 수도원장 나프(Cyril Napp)는 상당히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는데(흔히 대수도원장으로 높여 부릅니다), 그는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 하나가 교육과 연구라고 믿었습니다. 수도원은 브르노 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을 운영했을 뿐 아니라, 다수의 학교 운영에도 개입하고 있었습니다. 수십 명의 수사들은 아침 미사와 기도를 마치면, 주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죠. 수업이 없는 수사들은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연구를 했습니다.

요한 멘델은 브르노 지역의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봉건 지주에게 일주일 중 3일을 봉사해야 하는 빈궁한 신분이었습니다. 멘델은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지역에서 성장했지만, 그의 신분은 여전히 중세 시대에 머물러 있었죠. 천신만고 끝에 겨우 김나지움(현재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교육기관)을 졸업하지만, 대학 입학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21살의 멘델은 한 교수의 강력한 추천을 받아, 브르노 수도원의 견습 수사로 들어갑니다. 수도원에서 새로 받은 이름이 바로 ‘그레고어’입니다. 생물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레고어 멘델’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죠. 그가 수도원에 들어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의 자유와 과학 연구를 가장 중요한 소명으로 삼은 성 토마스 수도원은, 대학교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멘델에게 유일한 선택지였습니다.

   
▲ 나프 대수도원장. 그는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가 과학 연구 및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주교의 압력을 막으면서, 수도자들의 연구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 멘델은 수도원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탄생할 수 있었다. (이미지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나프 대수도원장은 본인 스스로 학문을 좋아했을 뿐 아니라, 성서와 동양언어를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수도원 수도자의 상당수는 인근의 브르노 철학연구소와 고등학교의 교사를 겸임하고 있었고, 나중에 대학교수가 된 수도자도 적지 않았죠. 특히 수도원은 식물학, 박물학, 육종학 등에 상당한 수준의 학문적 성취를 거두었는데, 특히 육종학은 당시 과학계에서 큰 관심을 받는 첨단학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시민권을 주장하는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브르노의 주교 샤프고체(Schaffgotsche)는 정반대의 길을 강요합니다. 샤프고체는 교구 내 수도원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수도원의 생활을 보다 더 엄격하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자유로운 학문을 추구하는 나프 수도원장과의 충돌은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나프 수도원장은 이런 지시에 반발하여 로마 교황청의 직접 감독을 받겠다고 탄원하였고, 브르노 철학연구소를 수도원 직할로 해 달라는 요청도 보냅니다.

샤프고체는 수도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합니다. 수도원이 과학적 활동에 너무 열성이라면서, 중세의 수도자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죠. 명령에 따르지 않는 수도원장은 물론 수도자들도 각자 제 갈 길을 가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수도원은 강력하게 반발하였고, 주교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여러 가지 압박에도, 수도원은 인간의 권리와 학문의 자유를 추구해 나갑니다. 그레고어 멘델의 시대를 앞서간 과학적 성취는 나프 수도원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848년, 봉건주의를 타파하려는 혁명의 기운 속에서, 멘델을 비롯한 6명의 수사가 발표한 탄원서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학문에 대한 열의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수사들이 강압적인 고립을 강요받고 있으며, 일반 시민과 동등한 수준의 자유로운 시민권을 수사에게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수도자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과학 연구와 교육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죠. 멘델의 수도자로서의 삶, 그리고 과학자로서의 삶은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드디어 시작됩니다.

   
 

박한선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냈고,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대학원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 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를 썼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 등을 번역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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