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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모든 사람의 성소는 사랑이다“영적 전투 배우기”, 피델리스 루페르트, (이종한), 2017
왕기리 기자  |  bene@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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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4  15: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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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자신 말고 밖에서 전장을 찾아서는 안 된다. 그대가 치러야 하는 전투는.... 그대 안에 있다. 그대의 적은 그대 마음에서 나온다.” 오리게네스의 여호수아기 주해 중에서.(88쪽)

이 책은 독일 베네딕도회 장상이었던 피델리스 루페르트 신부가 서방 수도회 규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바탕으로 쓴 영성생활 안내서다.

   
▲ “영적 전투 배우기”, 피델리스 루페르트, (이종한), 2017. (표지 제공 = 분도출판사)
수도생활이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결단으로 청빈, 정결, 순명을 서약하고, 공동체 안에서 규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신앙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얼마만큼 자신을 버리고 하느님을 더 선택했느냐의 훈련이 있어야 하고, 영적 진보의 척도는 기도나 고행보다 하느님 안에 있는 모든 것과의 관계, 즉 나와 하느님 둘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싼 모든 존재들과 맺는 ‘다정한 관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직장, 학교, 가정, 교회, 수도회 어디서든 일어나는 싸움과 갈등은 내적 불안의 결과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자신은 억울한 피해자라고 방어하거나, 당면한 문제들을 회피하고 무책임하게 자리를 떠나 버리기도 한다. “수도규칙”에서 말한 사라바이타와 기로바쿠스같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수도승들이 이런 사람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기 두려운 나머지 ‘관계’를 내던지고 마음대로 거처를 옮겨 살다가 결코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태도는 자기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불행을 안기는데, 루페르트 신부는 “삶이 조금이라도 진척되려면 우리는 이 도전들에 응해야 한다. 회피만 하는 사람은 언젠가 그대로 무덤에 이를 것이다.”(16쪽)라고 충고한다. 조직에서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는 ‘역할’ 놀이에 익숙한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관계에 부딪히면서 자기 내면의 험하고 거칠고 메마른 광야를 보게 된다. 이것이 상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문제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하게 되고, 그럴 때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성소의 문도 열리지 않는다.”(203쪽)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정면으로 직시하고 싸울 용기를 내야 한다. 즉, 내적 전투를 시작하는 것이다. 죽을 것 같은 공포와 고통이 따를지라도, 거기서 우리는 두려움으로 뭉친 바위 같은 고집이 치유되고, 자기애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극복하며, 세상에 대한 왜곡된 인식들을 하느님 선의 각인으로 정화한다. 이 책에서는 영적 스승들이 어떻게 이 전투를 해 왔는지를 소개한다.

길고 지루한 싸움이지만 이 변화를 시작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던 삶이 질서 잡히고, 마음에 신뢰가 자람으로써 예기치 못한 새로운 것에 열릴 수 있게 되며, ‘넓어진 마음’은 세상 어디에 발붙여도 편안한 자유를 준다. 이처럼 자기 자신과의 평화에 이른 사람들은 사막 가운데서도 평온하고, 독립적이면서도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 줄 알게 되는데, 지혜로운 ‘독수도승’이 이와 같은 사람들이다.

“동료 인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영성생활로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듯이, 내적 전투를 치러야 할 이유는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다. 모든 사람의 성소는 사랑이며, 이 사랑만이 고통받는 세상이 간절히 기다리는 구원을 가져다준다. 사랑을 선택하고 사랑으로 변화하여 “완전한 사랑이 발현하면, 그 사랑은 하나이자 모든 것이 된다.”(241쪽) 옹졸하고 모자랐던 나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을 온전히 회복하면서 모든 것과 하나되어 모든 것을 사랑하는 세상의 주체가 된다.

이 전투에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이들뿐 아니라 원숙하게 늙어 가는 이들에게서 참 인간 모습을 보게 되며,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를 보게 된다. “사람들은 이들의 표정과 크고 작은 행동에서 하느님 사랑의 충만한 경지를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인이 되어 “더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더라도 ‘사랑 안에’ 존재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현존이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으로 계속 작용”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봉사가 되니.... 영적 전투에 투신하여 이 해방적 사랑에 뿌리내린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면, 이것이 우리 고령화 사회를 위해 축복이 될 것이다.”(245-246쪽)

루페르트 신부의 말처럼 참 삶을 살고자 힘쓰는 전사들과 이들에게 등대 같은 희망이 되어 줄 ‘어른’이 조금 더 많아진다면, 지상 낙원은 우리 삶에서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좀 더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예수는 이 비전의 중심에서 하느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했다. 그가 본 모든 것이 ‘선’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에 가득 차서 절대적 신뢰로 기꺼이 전투의 선두에 나선 것이다.

이성으로 궁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그 평화의 세상은 나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경험하지 못한다. 내 삶에서 ‘샬롬’을 실현할 수 있다면, 겉돌기를 그만두고 자신을 처분하여 ‘숨겨진 보물’과 ‘좋은 진주’를 사야 하지 않겠는가. 자기 안에 갇혀 옹색하게 사느니 나를 버려 모든 것을 얻는 길에서 죽는 편이 값지다. 죽은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니 말이다.

"승리자는 언제까지나 생명과 사랑이다."(253쪽)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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