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길을 묻다] "작은 비석 하나로 남겨달라"

▲ 덕수궁 대한문 앞에 서 있는 차벽에 붙어 있는 추모 게시물들을 바라보는 시민들.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가족들이 있는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은 저녁무렵이었다. 먹먹한 심경으로 내내 버스 안에서 갑갑한 속을 달래다가 사무실에 도착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먼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가슴에 돌 하나 무겁게 얹고 지낼 수밖에 없는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차벽에 가로막혀 좁아터진 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어쩌면 다행히 몸과 몸을 스치고 양보하며 조문행렬에 가담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 있을 때나 봉하마을로 내려가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방어벽 없이 지냈다. 공식 정부문서나 교회문헌에서 보는 '엄숙하고 정제된' 언어 대신에 생활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날것의 언어를 사용하며, 그 때문에 짐짓 고결한 척 하는 위선적인 언론의 포격을 받아야 했다. 

아내는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은 정치인 스타일이 아니라고. 그 말은 아내가 그에게 보내는 찬사다. '정치인'이라는 말이 우리 한국역사에서 얼마나 더럽게 기억되고 있는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 시절에 행한 정책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우익뿐 아니라 진보세력에게도 질타를 받아 왔다. 나 역시 그의 정책에 충분히 동의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은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희망에 대해 말하려고 했다. 소통의 정치를 갈망했다. 열 걸음 앞서기를 권했던 진보세력에게 한 걸음씩 가자고 했으며, 죽일 듯이 상처를 내며 달겨들던 보수세력에겐 대화를 청했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은 이상주의자였다. 그리고 이 땅은 아직 이상주의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부족했다. 이렇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버렸지만, 한편으로 완고한 한국사회에 의해 타살되었다.

아직도 날아오는 나의 꿈

▲ 아이까지 안고 찾아온 분향소. 그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의 유서는 반복적으로 '고통'에 대해 말한다. 그가 주목한 고통은 자신이 겪는 아픔이고, 주변 사람들이 겪을 수난이며, 사실상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가련한 인생들이 여전히 감당해야 할 절망적 상태였다. 그리고 이 고통은 쉽게 반전되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 슬퍼마라"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두고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남탓을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해서 집 근처에 작은 비석 하나로 남겨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우리시대의 고통을 안고 이승을 떠났으며, 우리는 앞으로 그 비석을 바라볼 때마다 그의 운명에 대해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의 소박한 꿈과 기꺼운 열정을 사람속 사이에서 호흡하게 될 것이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함형수란 시인은 비석 대신에 해바라기를 심어달라고 했다. 아마 그는 고흐의 그림을 좋아했나 보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인부락 창간호, 1936.11)

나는 그의 시신이 국립서울현충원에 묻히지 않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 영문 모르고 전쟁에서 죽은 자들을 빌미로 국가주의를 배양하는 공간이며, 이승만과 박정희가 묻힌 곳에 나란히 누워있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하고, 죽은 몸에도 소름이 돋을 일이다. 봉하마을에 비석은 새겨질 일이나, 그의 몸은 비석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그 산천에 자유로 날아 고단한 삶을 잠시 접고 쉬고자 하는 자에게나 지금 길을 걷는 자에게나 다정한 말 한자락 건넬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예의

그가 조중동을 사무치게 싫어한 것은 이유가 있다. 아마 이게 맞을 것이다. 그들의 언어가 혐오스럽고 치졸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온 백성이 죽는 것보다 백성을 위해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말한 대사제 카야파의 말은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조선일보> 4월 27일자 김대중 칼럼은 "노무현 게이트에 얽힌 돈의 성격과 액수를 보면, 그야말로 잡범(雜犯)수준이다. 정치자금도 아니고 그저 노후자금인 것 같고 가족의 '생계형' 뇌물수수 수준이다. 그래서 더 창피하다. 2~3류 기업에서 얻어 쓰고 세금에서 훔쳐간 것이 더 부끄럽다. 지금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철저수사를 주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야말로 치사하고 한심한 생각만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수천명의 시민을 학살하고, 수천억의 뇌물을 삼키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의 소심함을 비웃는 것일까? 이 후안무치한 잡설(雜說)에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없다. 

"저기 사람이 있네" 하던 그 마지막 말. "담배 있냐"던 그 떨린 목소리. "원망하지 마라"던 그 다독거리는 유언. 사람냄새 나는 그 도덕성을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은 가장 두려워 한다. 그들이 조급히 원하는 세상에서 '사람냄새'는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노씨를 버리되 철저히 버리자"고 말한 것이다. 인간 진보의 씨를 말리자는 것이다. 나는 사제(司祭) 권력자였던 카야파가 왜 그렇게 예수를 죽이고 싶어했는지, 군사독재시절 라틴아메리카에서 군부세력이 왜 성경을 불온문서로 단정지었는지 노무현을 보고 다시 확인한다. 그는 인간이 존엄한 이유를 보여주었다. 목숨보다 귀한 게 있다는 것을 웅변했다.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말이 허락된다면, 그의 죽음이야말로 '존엄사'다.

가톨릭교회에서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스스로 버리는 행위는 죄'라고 말한다. 이 교리에는 자살을 두려워하는 서구인들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아시아인의 종교심성은 이와 다르다. 역사학자인 김기협 씨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을 통해 "16세기 말 중국에 온 가톨릭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의 하나가 사람들이 쉽게 자살을 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살을 명예롭게 여긴 문화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세푸쿠(할복)', 인도의 '수티'(남편의 화장에 미망인이 함께 타죽는 풍습)은 잘 알려진 사례들이며, 불교의 윤회 사상은 죽음을 궁극적 종말로 보지 않기 때문에 자살을 비교적 관용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노무현 역시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하고 말했다. 실상 예수조차도 "한 알의 밀알이 죽지않으면..."이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죽음의 길로 접어 들어갔다. 예수는 타살되었지만 어찌보면 자살이나 진배없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글이 아래 관련기사, <애도할 줄 모르는 한국 천주교회를 곡(哭)함② "슬픔의 능력을 상실한 교회"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